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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근대문학

7. 근대문학

메이지 초기에는 에도문학의 계통을 이은 가나가키로분[仮名垣魯文]의『안우락과(安愚樂鍋)』와 같이 이른바 희작문학이 유행했다. 유교적인 문학관이 강하게 남아있었지만 문명개화시대에 유행한 번역소설과 함께 신문, 출판업의 발달에 의해서 문학작품은 국민에게 널리 읽히게 되었다.
1880년전후부터 자유민권운동의 발전과 더불어 그 사상을 선전하고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정치소설이 유행하게 되었다. 야노 류케이[矢野龍溪]의『경국미담(經國美談)』, 도카이 산시[東海散士]의『규인지기우[佳人之奇遇]』, 스에히로 데츠쵸[末廣鐵腸]의『설중매(雪中梅)』등이 대표적이다.
1880년대 중반이 되면 서양 근대문학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 대해 예술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선구가 된 것은 1885년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가 쓴『소설신수(小說神髓)』였다. 그는 이제까지의 권선징악적 소설을 배격하고 소설은 삶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사실(寫實)적인 소설을 강조하고『당세서생기질(當世書生氣質)』을 발표하여 자신의 주장을 실천했다. 이어서 후타바 테이시메이[二葉亭四迷]는 언문일치를 주장하고『부운(浮雲)』을 저술하여 당시 살고 있는 인간의 고뇌를 묘사했지만 충분히 세상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880년대 문단의 주류를 점한 것은『다정다한(多情多恨)』,『금색야차(金色夜叉)』등을 쓴 오자키 고요[尾崎紅葉]를 중심으로 한 연우사(硯友社)의 그룹이었다. 그들은 잡지『아락다문고(我樂多文庫)』에서 풍속사실풍의 소설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문예소설을 일반서민에게 알렸다. 리로즈 류로[廣津柳浪], 이즈미 교가(泉鏡花) 등이 이 파로부터 나왔다.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도 1893년 창간된『문학계』를 중심으로 점차 커다란 문예운동으로 발전했다. 그 중심은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등으로 그들은 문예의 자립을 주장하고 그것을 공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 반대함과 동시에 연우사 문학의 저속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특히 도손은『약채집(若菜集)』을 간행하여 청년의 청순한 이상과 열정을 노래하여 시가사에 있어서 일획을 그었다. 또 같은 시기에 나온 여류작가 히쿠치 이치요[樋口一葉]도『다케쿠라베(たけくらべ)』『니고리에(にごりえ)』등에서 독특한 필치로 서민의 애환을 묘사했다. 낭만주의는 그 후 요사노 히로시[與謝野寬],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등『명성(明星)』파의 시인들에게 이어져 점차로 분방한 관능적 작풍을 보이게 되어 다카야마 쵸규[高山樗牛]는 본능적, 감각적 쾌락에 중점을 두는 미적 생활론자가 되었다. 또 쿠니키 다독포[國木田獨步]는 개인적인 내면생활의 탐구에 치중하여 자연주의로의 길을 열었다.
시단에서는 1880년대에 처음으로 도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 야타베 료키치[矢田部良吉] 등이『신체시초(新體詩抄)』를 만들어 신체시 운동을 전개하고, 가단(歌壇)에서는 1890년대 말에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가『만요슈(万葉集)』의 전통으로 돌아가 사생적 작풍으로 단가 혁신을 외치고 문하에 이토사치오[伊藤左千夫] 등을 배출했다. 시키는 배구(俳句)에 있어서도 사생(寫生)을 외쳐 1893년에 문하생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와 함께 잡지『호토토기즈(ホトトギズ)』를 발간했다.
이렇게 해서 러일전쟁 후의 문예사조의 중심은 낭만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옮겨가고 있었다. 산문으로 전환한 시마자키 도손이『파계(破戒)』『봄』,『이에[家]』을 발표하고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가『후통[蒲團]』『시골선생[田舍敎師]』을 저술하여 자연주의 문학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노골적인 현실묘사와 내면의 진실을 중시하고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신변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 보인다고 하는 사소설의 길을 걸었다. 나가츠카 다카시[長塚節], 도쿠다 슈세[德田秋聲] 등도 이러한 흐름에 동조한 인물들이었다.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는「시대폐쇄의 현상」을 써서 메이지 말기의 꽉막힌 사회적 현실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자연주의를 넘어서고자 했으나 빈곤 속에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러한 문단의 흐름 속에서도 독자적인 존재를 과시한 것은 모리 오가이[森鷗外]와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였다. 오가이는 처음『무희(舞姬)』등의 낭만주의적인 작품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고 잡지『스바루(スバル)』에서 창작과 문학이론 활동을 했는데 후에는 점차 역사소설로 기울었다. 또 소세키는『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작가생활을 시작하면서 서구의 근대적 개인주의를 수용하여 사회의 사악함을 날카롭게 비판했는데『마음』『도초(道草)』『명암』등 만년의 작품에서는 추악한 인간의 이기주의와 대결에서부터 동양적 깨달음의 윤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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