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의 역사

거란 연구현황

1. 거란 연구현황주 145
각주 145)
거란 연구현황에 대해서는 아래의 논고 참조.
윤영인(2008), 「거란·요 연구-21세기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연구』, 동북아역사재단.
조복현(2010), 「중국에서의 오대 왕조와 거란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닫기

요 왕조는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황제를 칭한 때부터 천조제가 금에 투항할 때까지 9명의 황제, 210년 동안 존속하였다(916~1125).
최근까지도 거란(요)제국에 대한 연구는 한족중심적 편견과 기본 사료의 결핍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그 성과도 송, 명 등 한족왕조에 비래 크게 못 미쳤다. 198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중국학계의 거란 대외관계사 연구는 대부분 중원 한족왕조 송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주 146
각주 146)
윤영인(2008), 「거란·요 연구-21세기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닫기

현재 중국에서는 다민족주의의 입장과 전통적인 입장인 한족왕조 송을 위주로 한 입장이 큰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1980년대 이후 논문들은 전자의 경우가 많다.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입증하기 위해 한족과 북방민족과의 관계사가 중국 내부의 민족모순이라는 전제하에 송·요 간에 전쟁과 충돌이 있었지만 평화적인 교류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주 147
각주 147)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151~152쪽.
닫기

심지어 거란이 ‘진(秦)’의 한 갈래로서 진민족이 시거지를 벗어난 이후 그 한 갈래는 서북으로, 또 한 갈래는 동북으로 이주한 것이며, 결국, 거란민족은 진민족과 함께 모두 동이족계의 후대로서 동족관계에 있으면, 거란족이 동이의 한 갈래인 이상 그 조상이 ‘염제(炎帝)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것도 절대로 무슨 ‘가탁한 것’이 아니며 실제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주 148
각주 148)
李德山·欒凡(2003),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17~221쪽.
닫기

다음으로 송과 요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조’ 내지는 ‘삼국정립’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송요하금 시기’등으로 표기해야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출되고 있다.주 149
각주 149)
孟古托力의 「宋遼“南北朝”說考論」 (「學習與探索」1990-8, 132~138쪽)은 송요 왕조가 중국 역사상 두 번째 ‘남북조’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송원명청’은 7세기에서 20세기 초 중국 역사 및 그 시간 서열의 일반적인 호칭이나, 정확한 것은 ‘당요오대송금원명청’이라고 한다.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138쪽에서 재인용).
닫기
송과 요를 병기할 때 기존의 ‘송요’라는 표현 대신 ‘요송’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 각주 145)
    거란 연구현황에 대해서는 아래의 논고 참조.
    윤영인(2008), 「거란·요 연구-21세기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연구』, 동북아역사재단.
    조복현(2010), 「중국에서의 오대 왕조와 거란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바로가기
  • 각주 146)
    윤영인(2008), 「거란·요 연구-21세기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중국학계의 북방민족·국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바로가기
  • 각주 147)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151~152쪽. 바로가기
  • 각주 148)
    李德山·欒凡(2003),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17~221쪽. 바로가기
  • 각주 149)
    孟古托力의 「宋遼“南北朝”說考論」 (「學習與探索」1990-8, 132~138쪽)은 송요 왕조가 중국 역사상 두 번째 ‘남북조’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당송원명청’은 7세기에서 20세기 초 중국 역사 및 그 시간 서열의 일반적인 호칭이나, 정확한 것은 ‘당요오대송금원명청’이라고 한다. (박지훈(2010), 「중국학계의 북송과 요의 관계사 연구동향」,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최근 중국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동북아역사재단, 138쪽에서 재인용). 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거란 연구현황 자료번호 : edeah.d_0003_001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