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연구현황
1. 거란 연구현황주 145
요 왕조는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황제를 칭한 때부터 천조제가 금에 투항할 때까지 9명의 황제, 210년 동안 존속하였다(916~1125).
최근까지도 거란(요)제국에 대한 연구는 한족중심적 편견과 기본 사료의 결핍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그 성과도 송, 명 등 한족왕조에 비래 크게 못 미쳤다. 198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중국학계의 거란 대외관계사 연구는 대부분 중원 한족왕조 송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주 146
현재 중국에서는 다민족주의의 입장과 전통적인 입장인 한족왕조 송을 위주로 한 입장이 큰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1980년대 이후 논문들은 전자의 경우가 많다.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입증하기 위해 한족과 북방민족과의 관계사가 중국 내부의 민족모순이라는 전제하에 송·요 간에 전쟁과 충돌이 있었지만 평화적인 교류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주 147
심지어 거란이 ‘진(秦)’의 한 갈래로서 진민족이 시거지를 벗어난 이후 그 한 갈래는 서북으로, 또 한 갈래는 동북으로 이주한 것이며, 결국, 거란민족은 진민족과 함께 모두 동이족계의 후대로서 동족관계에 있으면, 거란족이 동이의 한 갈래인 이상 그 조상이 ‘염제(炎帝)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것도 절대로 무슨 ‘가탁한 것’이 아니며 실제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주 148
다음으로 송과 요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조’ 내지는 ‘삼국정립’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송요하금 시기’등으로 표기해야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출되고 있다.주 149송과 요를 병기할 때 기존의 ‘송요’라는 표현 대신 ‘요송’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까지도 거란(요)제국에 대한 연구는 한족중심적 편견과 기본 사료의 결핍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그 성과도 송, 명 등 한족왕조에 비래 크게 못 미쳤다. 1980년을 전후하여 본격화된 중국학계의 거란 대외관계사 연구는 대부분 중원 한족왕조 송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주 146
현재 중국에서는 다민족주의의 입장과 전통적인 입장인 한족왕조 송을 위주로 한 입장이 큰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1980년대 이후 논문들은 전자의 경우가 많다.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입증하기 위해 한족과 북방민족과의 관계사가 중국 내부의 민족모순이라는 전제하에 송·요 간에 전쟁과 충돌이 있었지만 평화적인 교류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주 147
심지어 거란이 ‘진(秦)’의 한 갈래로서 진민족이 시거지를 벗어난 이후 그 한 갈래는 서북으로, 또 한 갈래는 동북으로 이주한 것이며, 결국, 거란민족은 진민족과 함께 모두 동이족계의 후대로서 동족관계에 있으면, 거란족이 동이의 한 갈래인 이상 그 조상이 ‘염제(炎帝)에게서 나왔다’고 하는 것도 절대로 무슨 ‘가탁한 것’이 아니며 실제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주 148
다음으로 송과 요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조’ 내지는 ‘삼국정립’이라는 표현을 쓰거나 ‘송요하금 시기’등으로 표기해야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출되고 있다.주 149송과 요를 병기할 때 기존의 ‘송요’라는 표현 대신 ‘요송’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 각주 145)
- 각주 146)
- 각주 147)
- 각주 148)
- 각주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