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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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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Ⅵ. 맺음말

 

본고는 적어도 3세기 이전 동아시아의 세계를 하나의 역사적 단위로 파악하기 곤란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아직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국제질서가 동아시아 지역에 정립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오히려 다양한 국제질서가 중층적으로 중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후대의 동아시아 세계를 선험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국가 성립 단계까지 지나치게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또 하나의 기본적 전제는 국가의 성립을 논의할 때 고대에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본고에서는 신정국가로서의 초기국가와 영토에 대한 행정지배가 가능해진 고대국가를 나누어 논의를 진행하였다.
먼저 초기국가의 성립과 관련해서는 사서 속에 나타나는 초기 신화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학계의 경향을 소개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 부쩍 늘어나는 고고학 자료로 말미암아 과거에 위작으로 취급되었던 극히 일부 역사 기록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는 나머지 문헌기록 전반을 모두 신뢰할 수 있다는 중국학계의 분위기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신화를 역사의 일면으로 규정하기 앞서 그 신화가 만들어지는 역사적 과정과 배경, 그리고 그 서사구조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초기국가는 근대국가로 이어지는 단일한 계보 속에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기국가를 그에 선행하는 신석기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신석기문화의 다양한 공간적 분포만큼이나 초기국가의 형성 역시 넓은 지역에 다양한 형태로 발생되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사천성 지역의 삼성퇴위키백과 지도 ·금사위키백과 지도 청동기문화와 중국 북방지역의 유목문화를 들 수 있다. 삼성퇴·금사 청동기문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대륙에는 하상주로 이어지는 초기국가 이외에 문화적 양상을 달리하는 별도의 초기국가가 형성·발전하고 있었다. 유목문화 역시 역사기록에서 배제되어 왔던 것이지만,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 중원문화와는 별개의 발전 단계를 거치며 독자적인 초기국가를 형성해 갔다.
이처럼 초기국가의 공간적 범위는 주요 근거지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점차 정치조직이 커지고 이를 지탱하기 위한 각종 자원이 필요하게 되자, 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지역으로 공간적 범위를 확대해 나갔으며, 주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봉건이라는 형식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아직까지는 제사 의례가 중요한 권력 장치로 사용되었지만, 주술적 측면이 조금씩 줄어들며 관료제 등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정국가로서의 성격이 사라지고 고대국가로서의 국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시기 성행한 제자백가 중에는 합리주의와 인간 중심적 사고가 분명히 표현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씨족제 질서가 붕괴되면서 영역국가로 발전해갔다. 그리하여 기존의 혈연질서 대신 군주권을 중심으로 한 행정제도가 국가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에서는 고고학 자료와 간독 자료가 쏟아지면서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지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발굴되기도 하고, 문헌에 애매하게 적혀져 있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다만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어 왔던 역사의 보편적 이해, 이론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작성되었지만, 장차 국가의 성립이라는 큰 주제를 구체적 자료와 결부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어 본고에서 필자가 제시한 전체적 흐름과 내용도 다시 새롭게 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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