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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태백산성

 
 

7. 태백산성

 

지도 7 태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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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7 태백산성



성황산성으로도 불리우는 태백산성은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의 산성역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예성강가의 태백산에 있다. 성은 예성강을 끼고 솟은 태백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았으며 예성강을 자연 해자로 이용하였다. 이곳은 평양과 개성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서 이 통로를 차단하는 데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대는 예성강 을 넘어다니는 교통의 요충지다.지도 7
성벽은 남북으로 태백산의 영마루를 따라 굽이굽이 돌아 동쪽 예성강 기슭으로 뻗었다. 태백 산성은 고로봉식 산성이며 그 둘레는 2,425m였으며 높이는 7m, 성벽 윗부분의 너비는 3.5m이다. 안벽의 높이는 약 1m 정도인데 그 밑으로부터 내탁이 쌓여 있다. 성벽은 30단 안팎으로 돌 을 쌓아올렸는데 밑으로부터 4개의 단은 계단식으로 쌓았다. 여기에서도 밑부분은 큰 돌을 사 용하였으며 계단식으로 쌓은 4개의 단을 제외하고 그 위에 수직으로 올라간 26개의 단은 고르 고 가지런한 돌로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성돌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뒤쪽으로는 수많은 돌들을 다져 넣었으며 돌과 돌 사이에 진흙을 다져넣기도 하였다. 성가퀴는 이미 없어져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지만 『평산군지』의 기록에 사혈이 1,031개, 포혈이 1,036개 있다고 한 것으로 보면 대 체로 2,060여 개의 성가퀴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에는 치가 잘 남아 있다. 치는 5개밖에 되지 않으나 모두 적합한 위치에 있으며 치가 없는 부분의 성벽은 치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지형을 통과하고 있다. 치의 크기는 5개가 거의 같은데 성벽에서 4.55m 너비로, 밖으로 4.55m 나오게 하였기 때문에 치의 평면은 정방형이다.
성문은 동, 서, 남, 북에 모두 4개가 있다. 서문과 동문에는 문루가 있고 북문과 남문은 무지 개문길만 있다. 동문은 바로 예성강가에 있다. 동문 가까이 북쪽에는 수구문이 있다. 수구문의 높이는 1.9m이고 세 칸으로 구분되었는데 매 칸의 너비는 0.67~1m이다. 이 사이로 사람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으나 옛날에는 이 사이에 철책(쇠살창)이 있었다.
장대는 성의 북, 동, 남쪽에 각각 하나씩 있다. 그 중 북장대가 가장 잘 남아 있어 당시 장대 건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북장대는 서문에서 북쪽으로 세 번째 되는 치 위에 있다. 이 장대 는 3층으로 된 돌계단 위에 있다. 북장대터의 면적은 5㎡이다.〔도면 19〕
성 안에서는 여러 개의 우물과 두 개의 못터가 알려졌다. 서문과 북장대 사이에 있는 못은 크 기가 6㎡인 정방형이고 못 주위는 돌로 쌓았다. 이 밖에 성 안에는 창고, 절, 사당 같은 건축터가 있었다. 성 안의 건축터에서는 겉에는 격자무늬가 있고 안에는 베천자리가 찍힌 고구려 시기의 붉 은기와 조각들이 드러났다. 태백산성은 고구려산성의 일반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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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2009), 『조선고고학총서』 28 (중세편, 고구려의 성곽) ;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1990), 『조선유적유물도감』3, 외국문종합출판사 ; 채희국(1965), 「태백산성답사기」, 『고고민속』2.



도면 19 태백산성 북장대 실측도(『조선유적유물도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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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19 태백산성 북장대 실측도(『조선유적유물도감』 3)


 

주 009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2009), 『조선고고학총서』 28 (중세편, 고구려의 성곽) ; 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1990), 『조선유적유물도감』3, 외국문종합출판사 ; 채희국(1965), 「태백산성답사기」, 『고고민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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