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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릉한산성

 
 

8. 릉한산성

 

지도 8 릉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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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8 릉한산성



릉한산성은 평안북도 곽산군 곽산읍과 성동리 경계의 릉한산(해발 412m)에 있다. 곽산군은 평안북도 남부의 해안에 있는 군이다. 북부는 구성시와 선천군, 동부는 정주시, 서부는 동래강을 사이에 두고 선천군과 잇닿으며 남부는 서해에 면한다. 바다와 접한 해안선의 길이 46.13㎞, 면적 330여k㎡로 도 면적의 2.64%를 차지한다. 군 북동부에는 심원산(566m), 릉한산(412m) 등 군에서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지도 8]
릉한산은 문수산 줄기의 한 가지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오다가 곽산군 경내에서 높이 솟아오른 산으로 북쪽은 산줄기들로 이어져 있고 동, 서, 남 3면은 낮은 구릉과 평야와 잇닿아 있다. 릉한산은 동북쪽이 높고 서남쪽이 낮다.
릉한산성은 릉한산의 남쪽 면에 있는데 동북쪽의 봉수대, 북쪽의 노적봉 등 높고 낮은 봉우리 들과 산릉선으로 이루어진 고로봉 지형에 돌로 견고하게 쌓은 성이다. 성의 동·서·북쪽은 벼랑과 가파른 능선이고, 평지와 연결되는 남쪽은 깊은 골짜기로,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벽의 총 둘레는 약 2.8㎞이다.
성벽은 사각추 모양의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성돌의 크기는 대체로 35×22×40㎝ 정도다. 릉한산성의 성벽은 북쪽과 동쪽은 대부분 험준한 절벽들을 그대로 이용하고 서쪽과 남쪽은 산릉선과 깊은 골짜기를 따라가면서 쌓았다.
동벽은 북쪽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낮아진다. 동벽의 북쪽 부분은 남쪽 부분에 비해 비교적 지형이 험하고 높아, 대부분 자연 바위를 성벽으로 이용했다. 또한 험한 절벽 사이에 가공한 성돌을 쌓은 벽도 있다. 동벽의 남쪽 부분은 북쪽 부분에 비하여 험하지 않다. 주로 외면 축조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사각추형의 돌들을 점차 안쪽으로 들여쌓았다. 현재 잘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5~6m 정도이다.
남벽은 깊은 골짜기를 동서로 가로막았는데 남문을 기준으로 동쪽 부분과 서쪽 부분을 안쪽으로 들여쌓아 마치 “V”형으로 보인다. 남문의 동쪽 부분은 비교적 가파른 지형을 따라 올라가 면서 쌓았는데 현재 파괴되어 흔적만 남았다. 서쪽 부분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과 높은 지형을 따라 올라가면서 쌓았다. 성벽은 대체로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는데 사각추 형태로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바깥 성 외벽을 쌓아올리고 그 뒤쪽에는 길쭉한 돌들을 맞물려 약 2m 너비로 쌓고, 다시 그 뒤에는 막돌과 진흙을 섞어다지면서 내탁을 길게 만들었다. 성벽 기초는 약 30㎝ 깊이로 땅을 파고 작은 막돌을 채운 다음, 그 위에 40×30㎝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성돌로 계단식 굽도 리를 조성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수직으로 성벽을 쌓았다. 또한 자연 바위를 기초로 하고 그 위에 성돌을 쌓은 부분도 있다. 서쪽 부분의 완만한 경사면에는 자연 바위를 기초로 하고 그 위에 성돌을 쌓는 형식으로 성벽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또한 절벽 자체를 성벽으로 이 용한 부분도 있다. 현재 잘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5~3m이다.
서벽은 완만한 경사면과 높은 절벽 등 여러 지형을 따라가면서 쌓았다. 서벽의 남쪽 부분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룬 곳에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는데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현재 남쪽 부분에서 제일 잘 보존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서벽의 중간 부분도 대체로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면서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다. 서벽의 중간 부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부분은 34돌기 남았으며 높이는 7~8m 정도 된다. 또한 지형을 고려하여 성벽을 2단으로 쌓은 부분도 있다. 성 바깥쪽이 경사가 심하고 지형이 낮은 곳은 먼저 약 5~6m 높이로 바깥 성벽을 쌓고 안쪽으로 3~4m 정도 들어와 그 위에 다시 안쪽 성벽을 쌓아 기본 성벽과 연결 시켰다. 이것은 기본 성벽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서벽의 중간 부분에는 자연 바위를 서로 연결시켜 벽을 축조하였는데 성벽의 높이는 4m 정도로 약 20돌기 정도이다. 북쪽 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하여 지형이 비교적 가파른 절벽이 많아, 절벽 사이를 잇는 형식으로 성벽을 연결시켰다. 모두 외면 축조 방법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높이는 대체로 2.5~3m 정도이다.
성벽 시설물로는 동문 남쪽 부분의 성벽에 사혈이 일부 남아 있다. 사혈은 4~4.5m 간격에 너비 30㎝, 높이 70㎝로 되게 만들었는데 밖으로 판석을 경사지게 놓아 밑으로 내려다볼 수 있게 설치하였다.
성문은 동, 서, 남 3곳에 각각 하나씩 내고 북쪽에는 암문을 냈다. 성문의 크기는 남문이 너비 160㎝, 높이 240㎝이고 문길의 천장 형식은 평천장이다. 동문은 너비 280㎝, 높이 220㎝이고 문길 천장 형식은 무지개형(홍예문)이다. 서문은 너비 375㎝, 높이 210㎝이고 문길 천장 형식은 평천장이다.
서문과 동문에는 옹성이 있다. 옹성은 “ㄱ”형으로 성문을 감싼 형식인데 장수산성의 내성 남문의 옹성과 유사하다.
성문의 구조가 특이한 점은 서문에서는 문길 안쪽 좌우벽에 대칭되게 다듬은 긴 돌을 세워 성벽이 안쪽으로 밀려들어오지 않도록 했다. 이는 집안 일대의 장군총이나 태왕릉과 같은 적석 묘에서 흔히 보는 것이지만 성문이나 성벽 축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식이다. 그리고 골짜기에 설치된 남문에서는 성문을 남벽보다 안쪽으로 들여 설치했다. 즉 동쪽과 서쪽 부분의 성벽이 남문을 보호하는 옹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남문이 성의 정문이기 때문에 성문 방어를 강화할 목적으로 특별히 안쪽으로 들여 설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릉한산성에는 지형이 험하고 굴곡이 많으므로 치를 적게 설치하였다. 즉 서문의 방어를 강화 하기 위하여 서문 부근에 3개의 치를 집중적으로 배치하였으며 경사가 상대적으로 완만한 동벽 에는 4개의 치를 설치하였다. 성안에는 물 원천이 풍부한데 우물 23개와 못이 한 곳 있었다.
서쪽 골짜기의 창고 자리에서는 고려, 조선 시대의 수많은 기와들과 함께 맨 아랫 부분에서 고구려 시대의 붉은색 기와들이 나왔다. 고구려 시대의 암키와는 붉은색이고 뒷면(안쪽면)에는 베천 무늬가 찍혀 있으며 등면에는 그물 모양의 무늬가 규칙적으로 새겨져 있다. 이러한 기와는 고구려 시대의 유적인 정릉사 터에서도 발견되었다. 창고 자리에서는 고구려 시대 기와와 함께 고려 시대 쇠 활촉 1개, 고려 놋숟가락 1개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릉한산성은 고구려 때에 처음 쌓고 고려, 조선 시대에 증축, 보수되어 지역 방어의 중심 성으로 계속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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