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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마산성

 
 

7. 백마산성

 

지도 7 백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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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7 백마산성



백마산성은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노동자구의 북쪽에 높이 솟은 백마산에 위치한다. 피현군의 북부는 의주군, 동부는 천마군, 남부는 동림군·염주군, 서부는 신의주시·용천군과 잇닿아 있다. 북서(삼상리)-남동(화삼리) 사이 길이 30㎞, 북동(용운리)-남서(양책노동자구) 사이 길이 23㎞, 면적 440여k㎡로 도 면적의 3.5%를 차지한다. 피현군 북부에는 백마산(410m)·백기산, 동부에는 문수산(741m), 남부에는 천두산(669m)·룡골산(476m)이 있다. 이 산들은 군에서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 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세는 동부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낮아 진다.[지도 7]
백마산 북쪽의 의주군 일대는 고구려 때 용산현이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다. 백마산은 압록강을 따라 서남 방향으로 뻗은 강남산 줄기의 남쪽 끝에 우뚝 솟아 있는데, 남쪽으로 서해까지 이어지는 용천벌이 펼쳐진다. 이 벌의 북쪽에 압록강의 지류인 삼교천이 성의 서남 방향인 압록 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산줄기와 벌이 맞닿은 곳에 자리한 백마산은 유달리 높아 보이며 압록강 하구의 동북쪽을 병풍처럼 둘러막았다.
백마산성은 해발 409m의 동쪽 산마루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뻗은 세 갈래의 산릉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성안에는 좌우에 각각 분지가 있고 그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가 삼교천으로 흘러간다.
산성은 3개의 부분성(우마성,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이 3개의 부분성 중에서 우마성은 고구려 때에 쌓았으며 내성, 외성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쌓았다.
우마성은 백마산의 높은 봉우리에 있는 북장대에서 서남쪽으로 내리뻗은 산릉선과 내성 서벽 사이의 골짜기를 가로막아 쌓은 고로봉식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1,400m이다.
성벽은 현재 많이 허물어졌으나 남은 성벽을 통하여 성의 규모와 구조를 알 수 있다.
남벽은 우마성의 서벽과 내성 서벽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동서로 가로막아 쌓아, 동쪽 부분이 서쪽 부분에 비하여 조금 낮다. 남벽을 쌓은 구간의 지형을 구체적으로 보면 지대가 높은 동쪽 끝부분에서 서쪽 방향으로 수구문이 있는 곳까지, 즉 깊은 골짜기가 있는 곳까지 경사가 급하게 내려온 다음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올라가다가 서남 모서리와 접한다. 남벽의 길이는 약 300m이다. 현재 중간 부분에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가 약 10m이다. 기초 부분은 암반 위에 길이 60㎝, 너비 50㎝ 정도 크기로 다듬은 석회암을 계단식으로 2단 쌓고 그 위에 방추형의 성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돌 중에는 네모난 앞부분의 크기가 40~50㎝ 정도인 것이 많다. 이런 성돌들은 바깥벽에 사용했는데 서로 어긋물려 정연하게 쌓아올렸다. 안쪽으로 들어간 뿌리 부분은 끝이 뾰족한 큰 돌을 눌러 고정시켰다. 성벽의 안쪽은 막돌과 흙을 채워 다졌다. 안벽은 따로 석벽을 쌓지 않고 흙으로 다져 내탁을 붙였다. 현재 성벽의 남은 높이는 2m 정도 인데 그 중에서 돌로 쌓은 성벽의 높이는 1.45m, 흙으로 쌓은 높이는 0.55m이다. 남벽 중심 부분 의 성벽 밖에는 성벽을 둥글게 감싸면서 서쪽으로 뻗은 두 줄의 석벽이 있다. 이 석벽은 산 경 사면에 계단 상태로 남았는데 그 길이는 20~30m, 높이 1.5m, 벽 사이는 가장 넓은 부분이 7m 가량 된다. 이 석벽은 성벽의 유실을 방지하며 동시에 성의 약한 고리를 보강하기 위한 시설물로 보인다.
서벽은 백마산성에서 제일 높은 북장대에서 서쪽으로 내리뻗은 산릉선을 따라 쌓았다. 성벽의 길이는 640m이다. 현재 남은 성벽의 높이는 1m, 너비 6~7m이다. 바깥벽은 방추형의 성돌로 쌓고 안쪽은 막돌과 흙을 채워 내탁하였다.
성의 서남 모서리에는 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길이는 7m, 너비 4m가량 된다. 여기서는 성벽 좌우의 형편을 잘 살필 수 있어 적을 쉽게 물리칠 수 있다.
성의 남벽에는 수구문이 있다. 지세가 가장 낮고 물줄기가 통하는 골짜기에 설치하였는데 다 파괴되고 문 터만 남았다.
성안에서는 고구려 시대 암키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암키와 등면에 그물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러한 무늬는 고구려 시대의 용담산성, 성자산산성, 살기성, 산성자산성, 대성산성, 장수산성, 휴류산성 등의 유적들에서 알려졌다.
백마산성의 내성은 우마성의 동쪽에 있는데 성벽은 제일 높은 북장대에서 동쪽으로 내리뻗은 산마루와 거기에서 다시 북남으로 뻗은 산릉선에 북벽과 서벽을 쌓고 그 두 성벽의 동쪽 끝과 남쪽 끝을 잇대어 남벽을 쌓았다. 성벽의 길이는 북벽 1,070m, 서벽 550m, 남벽이 950m이며 총 둘레는 2,590m 정도이다.
외성은 내성의 남쪽에 잇달아 있다. 외성 북벽은 내성의 남벽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동, 서벽은 내성의 서북벽 남쪽으로 이어진 산릉선을 따라 쌓았다. 그리고 남벽은 동, 서벽의 남쪽 끝이 평지와 맞닿는 곳에 동서로 연결하였다. 성의 길이는 동벽 750m, 서벽 1,280m, 남벽 300m이며 총 길이는 약 2,430m다. 성벽에는 문 터가 있는데 동벽에 2개, 서벽과 남벽에 각 1개씩 있다. 또한 수구문 1개, 치 4개, 각루 터 2개, 성가퀴와 사혈 등이 잘 남아 있다.
이처럼 백마산성은 우마성, 내성, 외성 등 3개의 부분성으로 되어 있으며, 이 중에 고구려 때에 쌓은 우마성은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산성이 갖추어야 할 군사전략적 조건, 경제적 조건, 수송 조건들을 모두 갖춘 가장 유리한 지형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산성이 자리한 백마산은 의주군 남서부와 피현군 북서부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이 산에서 제일 높은 북장대에 올라서면 북으로는 의주, 남으로는 용천·피현 일대의 사면팔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백마산성은 남북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육로로는 의주를 거쳐 요동 지방과 통하고 남쪽으로는 선천-곽산, 구성-태천-박천-안주를 거쳐 평양과 통한다. 물길로는 삼교 천을 따라 압록강과 서해로 갈 수 있다. 이러한 군사, 경제, 수송 조건들을 다 갖춘 산성의 위치 선정은 고구려 때부터 계승된 우수한 전통의 하나이다.
그것은 다음으로 성벽을 쌓은 수법에서도 나타난다. 우마성은 잘 다듬은 사각추형의 성돌로 쌓았는데 네모난 머리쪽을 밖으로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이음새가 곧바로 덧놓이지 않고 서로 맞물리게 하였으며 안쪽으로 들어간 뿌리 부분은 끝이 뾰족한 돌로 눌러 고정시킨 다음 그 안은 막돌과 흙을 채워 다졌다.
이처럼 우마성은 그 위치와 자연지세의 이용, 성벽의 축조 방법과 구조, 성벽과 관련된 시설물들에 고구려 산성의 특징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고구려 때에 처음으로 쌓은 백마산성은 이후 고려, 조선 시대에 내성, 외성을 증축하여 계속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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