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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주성(동림성)

 
 

4. 통주성(동림성)

 

지도 4 통주성(동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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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4 통주성(동림성)



통주성(동림성)은 평안북도 동림군 고군영리에 위치한다. 동림군은 평안북도 남서부 바닷가에 있으며, 북부는 피현군·천마군, 동부는 선천군, 서부는 철산군·염주군과 잇닿아 있으며 남부는 철산군·선천군의 일부와 서해의 선천만에 면한다.[지도 4]
고군영리는 동림군 중부에 있는 리이다. 고려 시대 군사들이 성을 쌓고 숙영하던 곳이라 하여 고군영리로 불린다. 북부는 상수리, 동부는 보성리, 서부는 오봉리, 남부는 부황리와 인두리, 남동부는 청강을 사이에 두고 청강리와 잇닿아 있다.
통주성은 고군영리의 북쪽에 천마산줄기의 한 갈래인 높이 솟은 장대봉에서 좌우로 남쪽 평지를 향해 내려오다가 남쪽 평지와 서로 연결된 지형에 쌓은 평산성이다. 성의 좌우에는 청강 지류가 북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자연해자를 형성하였다. 성의 둘레는 약 4㎞이다.
통주성은 모두 화강암을 잘 다듬어 쌓은 석성이다.
남벽은 서쪽 끝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평지에 쌓았다. 성벽의 기초 부분에 큰 성돌을 놓은 다음 그 위에 사각추 형태로 다듬은 성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대체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성돌의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벽면도 안쪽으로 조금씩 들여쌓았다. 성벽은 양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는데 성심은 길쭉한 돌을 맞물려 쌓고 사이사이의 공간은 막돌과 흙을 섞어서 다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2.5~3m 정도다. 남벽의 서쪽 부분은 약간 경사져 올라온 지형에 쌓았는데 현재는 다 파괴되어 성벽 윤곽만 남았다.
동벽과 서벽, 북벽은 북쪽에 있는 장대봉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릉선을 따라 외면 축조 방법으로 쌓았다. 성벽 기초는 따로 하지 않았으며 원토층인 석비레층 위에 굽도리 같은 것은 조성하지 않으면서 성벽을 직접 쌓았다. 성돌은 대부분 사각추 형태로 다듬었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다. 현재 남은 성벽의 높이는 대략 2~3m이며 가장 높은 곳은 4.5~5m 정도다.
서벽에서 특이한 것은 성벽 윗 부분에 눈썹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눈썹돌은 성벽 윗 부분에서 조금 내려와 채양 모양으로 밖으로 약간 나온 것이다.
또한 북벽의 서쪽 부분에는 앞면을 잘 가공한 돌들로 줄과 면을 맞추어 가지런히 쌓은 성벽 들이 일부 남아 있는데, 이 성이 고구려 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성문은 동, 서, 남, 북의 네 벽에 큰 문을 하나씩 설치하고 동벽과 서벽에 작은 문을 하나씩 더 설치하였다.
남문은 성의 정문이며 북문은 제일 높은 북장대에서 동쪽 성벽을 따라 약 85m 내려와 있다. 북문의 양 벽은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6돌기 쌓아올렸다. 북문의 천장은 미식문이다. 북문의 크기는 길이 4.5m, 높이 2m, 너비 2.2m이다.
동소문과 동문 사이의 거리는 약 62m이다. 동벽에 있는 2개의 문은 현재 파괴된 상태이다. 동문의 양 벽은 3돌기 정도 남아 있는데 그 높이는 0.9~1.2m이다. 동문은 길이 8.7m, 너비 2.8m이다.
서문은 서벽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서소문은 서문에서 남쪽으로 약 390m 내려온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문들은 모두 성 밖으로 통하는 길목에 설치되어 있다.
현재 잘 남아 있는 성문은 서문과 서소문이다. 이중에서 서문은 무지개형 문이며 문 위에는 문루를 세웠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문은 너비 2.7m, 길이 6m, 높이 2.95m이며 서소 문은 너비 2.8m, 높이 3.2m이다.
동문과 서문, 남문에는 평면이 “ㄷ”형으로 생긴 장방형 옹성을 설치하였다. 이중에서 제일 큰 것은 남문의 옹성인데 너비 9m, 길이 32m이다.
통주성에는 치가 모두 21개 설치되어 있다. 남벽에 7개, 동벽에 9개, 서벽에 5개로, 평균 200m 사이를 두고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기초 부분에 장방형으로 다듬은 큰 성돌로 5~6단의 계단식 굽도리를 조성한 다음 그 위로는 조금씩 안쪽으로 들여쌓는 방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대체로 기초 부분의 윗돌이 밀려나지 않도록 밑돌에 홈을 파서 위의 성돌과 맞춰 쌓았다.
통주성에는 동쪽, 서쪽, 서남쪽, 북쪽에 장대를 각각 하나씩 설치하였다. 동장대와 서장대는 성벽이 지나간 봉우리에 두고 북장대와 서남장대는 철성을 쌓고 그 위에 설치하였다. 이 장대들은 모두 앞이 잘 트인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장대에 올라서면 성안은 물론 성 밖을 모두 살필 수 있다. 특히 북장대에 올라서면 멀리 좌현령관성과 청강벌, 검산성까지 보인다. 장대 터에는 집을 지었던 주춧돌과 기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화약 창고 터, 무기 창고 터, 소금 창고 터로 불리는 건물 터가 남아 있는데 일부 기와층과 진흙층 약 80㎝ 밑에서 숯 덩어리와 함께 불에 탄 쌀(조) 덩어리가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성에는 지금도 여러 곳에 샘터가 남아 있고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린다.
통주성은 고구려 때 처음 쌓은 성으로 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다. 특히 산성의 남벽 앞으로 의주-평양 사이의 통로가 지나간다. 통주성은 고구려는 물론 고려, 조선 왕조 시대까지 서북 지역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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