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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물

 
 

3. 유물

 

성벽을 자른 제1지점, 제3지점, 제4지점에서 기와 조각들이 나왔고 제2지점에서 질그릇 조각이 나왔다.
기와 조각은 붉은색 기와와 회색 기와 조각들이다. 회색 기와 가운데는 안면의 네모 구획 안에 사선평행선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배열되어 있는 무늬와 전나무잎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기와의 두께는 붉은색 기와가 1.5~2cm, 회색 기와가 1.6~2cm이다.
성벽에서는 붉은색 기와와 회색 기와들이 나왔는데 고구려시기의 것들이다.
질그릇 조각은 경질의 것인데 회색을 띤다. 두께는 0.5㎝이다.〈도면 77, 78〉

〔도면 77〕 적두산성 제3지점에서 나온 암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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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77〕 적두산성 제3지점에서 나온 암키와

〔도면 78〕 적두산성 제1지점에서 나온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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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78〕 적두산성 제1지점에서 나온 기와


적두산성은 서산의 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한 성이다. 대부분의 성벽들이 급하게 내려간 능선의 비탈면이나 낭떠러지로 되어 있는 위에 축조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지형조건을 잘 이용하여 성을 쌓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벽의 대부분을 판축하는 방법으로 축조함으로써 성의 견고성을 보장하였다.
적두산성은 평양성을 서쪽에서 방위하는 방어성으로 볼 수 있다. 적두산성에서 보통강을 넘어서면 평양성 외성 다경문에 닿게 된다. 다경문은 평양성 외성의 서문으로서 여기에는 성안으로 들어가는 운하가 있었다. 운하는 다경문을 통과하여 동쪽으로 중성의 남문인 정양문에 이르렀는데 그 길이는 약 3km에 달하였다.
이것은 여러 가지 물품을 실은 배들이 대동강에서 다경문을 거쳐 운하를 따라 중성에 직접 들어갔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성 안에서 살던 통치자들은 운하를 이용하여 공납을 받아들이는 한편 외국과의 교역도 진행하였다.
적두산성에서는 대동강에서 보통강하구를 거쳐 다경문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배들의 운행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적두산성은 동쪽이 보통강과 면해 있고 남·북·서쪽이 산이나 능선들에 의하여 막혀 있는 곳에 있으므로 여기에서 보통강반의 통행뿐만 아니라 보통강에서의 운행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두산성은 평양성의 서쪽을 방위하는 방어성으로서 뿐만 아니라 강을 통해 움직이는 배들을 단속하는 차단성의 역할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성벽 발굴과정에 나온 붉은 기와는 용악산(龍岳山) 법운암(法雲庵)의 고구려시기 집자리에서 나온 기와를 비롯하여 고구려시기의 붉은 기와와 그 색과 재질이 같다. 질그릇 조각들과 회색 기와의 재질과 형태, 문양이 고구려시기의 것으로 판별된다.
따라서 적두산성은 고려 인종(仁宗) 13년에 서경 사람들이 선요문(宣耀門)에서 다경루(多景樓)에 이르기까지 강을 따라 성을 쌓으니, 김부식(金富軾)이 강 서쪽에 흙으로 산을 쌓도록 할 때 비로소 쌓아진 것이 아니라 고구려 수도성인 평양성(장안성)의 서쪽 방어성으로서 고구려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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