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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무덤

 
 

12호 무덤

 

무덤은 지상에 축조하였는데 봉분은 원형의 반구형이다. 봉분은 오랜 세월을 흐르면서 많이 흘러내렸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알리며 꼭대기에는 묘실이 무너지면서 우묵하게 들어가고 무덤을 쌓았던 돌들과 석관의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봉분의 남북 길이는 12m, 동서 길이는 11m이며 남쪽에서 본 높이는 1.7m이다(그림 35, 도판 79).
[그림 35] 다래골 12호 무덤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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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5] 다래골 12호 무덤 봉분

무덤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으로서 방향은 174도이다. 무덤은 묘도와 묘실로 되었는데 묘도는 묘실 남벽의 중심에 있으며 안쪽과 바깥쪽의 너비가 비슷하다. 묘도는 크고 작은 막돌을 섞어서 쌓았는데 안쪽은 2단 높이, 바깥쪽은 1단 높이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파괴되어 없어졌다.
묘도 동벽 밑에는 벽의 안쪽 면을 맞추기 위해 작은 돌들을 받쳐놓은 것이 밀리면서 턱 모양으로 나온 구간이 40cm 정도 있다. 이렇게 턱 모양으로 된 구간은 묘실 남벽의 동쪽 부분 밑에도 있다. 이것은 묘도 동벽의 제일 안쪽에 놓인 벽체 돌이 묘실 남벽의 동쪽 부분에 놓인 벽체 돌과 한 돌로 되어 있으므로 이 돌의 안쪽 면을 맞추기 위하여 그 밑에 작은 돌들을 받쳐놓아 생긴 현상이다. 본래 이 돌들을 받쳐놓은 작은 돌들도 면을 맞추면서 놓았으나 안쪽으로 밀리면서 턱 모양을 이루었다. 턱 부분의 높이와 너비는 각각 8cm 정도 된다. 묘도의 바닥에는 흙을 한 벌 펴고 평평하게 다졌다. 묘도의 길이는 142cm, 너비는 78cm, 남은 벽의 높이는 동벽이 50cm, 서벽이 48cm이다.
묘도에는 막음벽 시설이 있었다. 묘도의 제일 안쪽인 묘실과 접하는 부분에 판석을 세웠던 것이 바깥으로 넘어지면서 경사진 대로 있었다. 이 판석의 동쪽 측면 제일 밑에는 “ㄱ”자 모양으로 따낸 부분이 있는데 따낸 부분의 너비와 높이는 각각 10cm이다. 막음벽 판석을 이렇게 따낸 것은 묘도 동벽 밑에 있는 턱 부분과 맞추어 세우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가공한 것이다. 판석의 크기는 높이 89cm, 너비 76cm, 두께 4cm이다. 경사져 넘어진 막음벽 판석 밑에는 막돌들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 돌들은 본래 판석 밖에 쌓았던 돌로 추정되며 후세의 파괴로 몇 개만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묘실은 크고 작은 막돌로 면을 맞추면서 쌓았는데 평면형태는 모를 죽인 장방형으로 되었고 네벽의 중간 부분이 밖으로 휘어나가 호선을 이루고 있다. 남아 있는 벽체의 높이는 동벽이 3~6단으로 94cm, 서벽이 3~4단으로 84cm, 북벽이 4~6단으로 94cm, 남벽이 2~3으로 50cm이다. 벽을 쌓는데 사용한 돌의 크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벽체에 사용한 돌의 크기 (단위:cm)
벽체에 사용한 돌의 크기 (단위:cm):1
구분12345678910
길이93564546368447313865
두께14133023101216121520

묘실의 네 벽은 양쪽 모서리보다 중간 부분이 바깥으로 약간 나가면서 호선을 이루었는데 동벽은 12cm, 서벽은 25cm, 북벽은 11cm 밖으로 휘어나갔다. 그리고 남벽은 양쪽 모서리에서 사선을 지으면서 묘도의 동서 두 벽과 이어졌다. 묘실의 동서 두 벽은 각각 290cm, 북벽의 길이는 163cm, 남벽의 길이는 153cm이고 배가 나온 부분의 남북 직경은 330cm이고 동서 직경은 200cm이다. 묘실 바닥은 흙을 한 벌 펴고 평평하게 다졌다.
묘실에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석관 1개가 있었다. 석관은 대부분 본래의 상태로 세워져 있었으나 서벽의 가운데 부분이 없어졌다. 석관 바닥은 큰 판석 2개를 북쪽과 중간 부분에 잇대어 가지런히 깔고 그 남쪽에 그보다 작은 2개의 판석을 동쪽과 서쪽에 잇대어 깔아 마련하였다.
바닥 판석 가운데서 제일 큰 것은 북쪽의 것으로서 장방형으로 생겼으며 그 길이는 75cm, 너비는 68cm, 두께는 3cm이다. 변두리 선들을 곧게 다듬어 석관의 벽선과 잘 맞물리게 하였다. 중간의 판석도 네모나게 잘 다듬었는데 그 크기는 길이 64cm, 너비 62cm이다. 남쪽에 깐 2개의 판석을 합쳐도 북쪽의 판석보다 작다. 석관 판석은 묘실 바닥의 흙 위에 그대로 놓았다.
석관의 동서 긴 벽은 여러 개의 판석을 잇대어 세우고 남쪽과 북쪽의 짧은 벽은 1개의 판석을 세워 만들었다. 벽으로 세운 판석은 밑이 묘실 바닥에 18~20cm 깊이로 묻혀 있었다. 북쪽 판석은 동서 긴 벽의 북쪽 끝에서 안쪽으로 약간 들여세웠는데 서벽 북쪽 끝에서 10cm, 동벽 북쪽 끝에서 3cm정도 안으로 들여다 세웠다. 북벽 판석의 너비는 68cm, 두께는 5cm이다.
남벽 판석은 동서 긴 벽의 남쪽 끝에서 10cm 정도 안으로 들여세웠는데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다. 남벽 판석의 너비는 67cm, 두께는 3cm이다.
동벽은 2개의 판석을 잇대어 만들었는데 판석의 크기가 비슷하다. 북쪽의 판석은 길이 90cm, 남쪽의 판석은 길이 110cm이고 두께는 모두 4cm이다.
서벽은 3개의 판석을 잇대어 만들었던 것인데 가운데 것이 없어지고 북쪽의 판석과 남쪽의 판석만 그대로 세워져 있다. 북쪽 판석은 길이가 80cm, 남쪽의 판석은 길이가 60cm이고 두께는 4~6cm이다. 두 판석 사이에 64cm 되는 구간이 비어 있다.
석관 위에는 여러 개의 판석을 깔아 뚜껑으로 덮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북쪽에 놓인 1개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뚜껑돌의 한쪽 모서리가 많이 깨져 있었고 두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었다.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 86cm, 너비 68cm, 두께 5cm이다. 북쪽 뚜껑돌의 크기로 보아 석관 위에는 3개 정도의 판석을 덮어 뚜껑으로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관의 길이는 180cm, 너비는 북쪽이 72cm, 남쪽이 69cm이고 높이는 북쪽이 72cm, 남쪽이 60cm이다(그림 36, 도판 80~83).
[그림 36] 다래골 12호 무덤 평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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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6] 다래골 12호 무덤 평단면도

무덤에서는 질그릇 파편과 접시를 비롯한 유물이 나왔다. 묘실 서북 모서리에서 단지 파편들이 나왔고 그로부터 남쪽으로 30cm 떨어진 서벽에서 접시가 나왔으며 접시에서 동쪽으로 30cm 떨어진 곳에 단지 파편들이 있었으며 그 남쪽에 가락바퀴가 동서로 세워진 상태로 있었다. 이 밖에 석관 북벽 바깥바닥에서도 단지 파편들이 나왔다.

접시 1점 접시의 밑굽은 납작하고 그릇 벽은 사선으로 벌어졌으며 키는 아주 낮다. 진흙 바탕에 모래를 약간 섞어 빚었는데 전반적인 색은 갈색을 띠고 있으나 그릇 벽의 겉면에 불에 타서 생긴 검은색을 띠는 부분이 얼마간 있다. 접시는 손으로 빚어 만들었으므로 겉면이 깔끔하지 못하고 거칠다. 접시는 높이 3.6cm, 아가리 직경 16cm, 밑굽 직경 12cm, 그릇살의 두께 0.6cm이다(그림 37-1, 도판 128).
[그림 37] 다래골 12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 1. 접시 2. 가락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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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7] 다래골 12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1. 접시 2. 가락바퀴


가락바퀴 1점 가락바퀴는 회색 편암을 갈아서 만든 것인데 일부분이 떨어져 없어졌으나 잘 갈아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원형으로 되었고 중심에 작은 구멍을 냈는데 직경은 4.6cm, 두께는 1cm, 구멍 직경은 1.1cm이다(그림 37-2, 도판 151).
이 밖에 여러 개의 질그릇 파편들이 나왔는데 색깔과 두께, 그릇살의 휜 정도를 보아 한 개체분의 단지로 판단된다. 진흙 바탕에 모래를 약간 섞어 빚었는데 색깔은 갈색이고 그릇살의 두께는 0.4cm이다(도판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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