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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무덤

 
 

7호 무덤

 

무덤은 지상에 축조하였는데 봉분은 타원형으로 된 반구형이다. 봉분은 많이 흘러내렸지만 타원형으로 생긴 원래의 상태는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남아 있다. 봉분 위에는 우묵하게 들어간 구덩이가 있고 묘실의 벽체들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다. 봉분의 직경은 남북 10.3m, 동서 8.5m이고 높이는 남쪽이 1.8m, 북쪽이 0.8m이다(그림 21).
[그림 21] 다래골 7호 무덤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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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1] 다래골 7호 무덤 봉분

무덤은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남향으로서 방향은 173도이다. 무덤은 묘도와 묘실로 만들어졌는데 묘도는 묘실의 남벽 중심에 냈으며 동서 두 벽은 막돌로 쌓았으나 지금은 안쪽이 50cm 높이로 남아있고 바깥쪽은 동벽이 13cm, 서벽이 32cm 높이로 남아 있다. 묘도 바닥은 흙을 펴 다졌다. 묘도의 길이는 132cm, 너비는 78cm이다.
묘도에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100cm 되는 곳에 막음벽을 설치하였다. 막음벽은 판석을 세웠는데 안쪽으로 얼마간 기울어지면서 경사져 있었다. 발굴 당시에 막음벽 판석은 서쪽 절반쯤이 잘려나가 없어지고 동쪽의 절반만 남아 있었다. 막음벽 판석의 높이는 70cm, 너비는 40cm, 두께는 6cm이다. 막음벽 안쪽 밑에는 62×24×11cm크기의 장방형으로 된 돌 하나가 문턱처럼 놓여 있었다.
묘실은 모를 죽인 장방형으로 생겼는데 네 벽은 막돌로 쌓았으며 벽면이 직선으로 잘 남아 있다. 묘실의 바닥은 흙을 펴 다졌으며 천장은 무너져 없어졌다. 묘실의 크기는 길이 288cm, 너비 160cm이고 제일 잘 남은 동벽 중간 부분의 높이는 120cm이다.
묘실 바닥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남북으로 길게 된 석관을 하나 설치하였다. 석관은 판석을 세워 만들었는데 먼저 묘실 바닥에 10~16cm깊이의 기초 홈을 파고 판석을 홈에다 세워 고정시키고 양면에 흙을 채워 다졌다. 발굴시 동쪽과 서쪽의 긴 벽만 남아 있고 북쪽과 남쪽의 짧은 벽은 없어졌다. 서벽으로 세운 판석은 길이 168cm, 높이 70cm, 두께 9cm이고 동벽으로 세운 판석은 길이 146cm, 높이 60cm, 두께 8cm이다.
동벽과 서벽의 북쪽 끝은 일직선으로 놓였지만 남쪽 끝은 서벽보다 동벽이 얼마간 짧게 놓여 있다. 동벽의 남쪽 끝에서 20cm 정도 떨어진 남쪽에 자그마한 판석 파편이 세워진 채로 파묻혀 있었는데 동벽의 남쪽에 잇대어 세웠던 판석이 깨어져 없어지면서 그 흔적이 남은 듯하다. 이것으로 보아 동벽의 모자라는 부분은 다른 판석을 잇대어 세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석관의 바닥에는 길이 22~36cm, 너비 12~18cm 정도의 판석 파편들을 가지런히 깔았다. 석관의 크기는 서벽 판석의 길이로 추측하면 남북 길이는 약 170cm이고 동서 너비는 56cm이며 높이는 54cm이다(그림 22, 도판 57~59).
[그림 22] 다래골 7호 무덤 평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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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2] 다래골 7호 무덤 평단면도

묘실 북벽 중심 가까운 바닥에서 질그릇 밑부분 파편들이 나왔다. 보드라운 진흙에 가는 모래를 약간 섞어 만들었는데 겉면은 검은 색깔을 띠고 안면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다. 밑은 납작한데 복원하여 보면 그 직경이 6cm이고 밑굽에서 바깥으로 약간 퍼지면서 위로 올라간 그릇살이 붙어 있다. 밑굽과 그릇살의 곡선으로 보아 3호 무덤에서 나온 목이 짧은 단지의 밑부분과 비슷하다. 그릇살의 두께는 0.5cm이다(그림 16-2, 도판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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