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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궁터 발굴

 
 

2) 중궁터 발굴

 

중궁터는 안학궁터의 중심부분에 있는 데 규모가 매우 크다. 중궁터 발굴은 1969년 6월부터 진행하였다. 발굴을 앞두고 채희국 선생님을 비롯한 강좌의 모든 교원들이 이번 발굴에서 어디에 중심고리를 정하고 전반적인 발굴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차례 진지한 협의를 하였다. 발굴을 직접적으로 담당한 나 자신도 현지에 여러 번 나가 중궁터의 규모를 어떻게 정하겠는가 그리고 이곳에 건물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모저모로 생각하였다.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은 중궁터의 현재상태로 보아 규모가 방대하고 평면구조도 복잡할 수 있으므로 중심에 위치한 1호궁전, 좌우의 2호, 3호궁전을 기본으로 발굴을 진행하는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중궁터 발굴은 중궁1호궁전의 앞면 윤곽선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미 남궁터의 규모를 확정한 조건에서 남궁1호궁전터의 중심축선을 연장하여 중궁1호궁전터의 중심축을 가상적으로 선정하고 그 선상에서 토방선을 찾기 위한 시굴에 달라붙었다. 시굴과정에 화강석을 잘 다듬어 만든 계단석 1개를 발견하였으며 토방을 쌓았던 돌들도 찾게 되었다.
토방선이 드러나자 그것을 따라가며 중궁터의 규모와 평면구조를 밝혀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이 궁전터의 평면구조가 매우 복잡하였다. 유적의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았기 때문에 기초자릿돌은 모두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데서는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궁1호궁전터에서는 140여 개에 달하는 기초자릿돌들을 찾아냈다. 이것을 통하여 건물터의 규모를 확정하였는데, 크기는 정면 90.5m, 측면 33m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 건물터는 앞채와 뒤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채와 뒤채 사이에는 기둥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에 기둥이 있지 않았을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부지런히 시굴침으로 조사를 하는 과정에 고구려 돌칸 흙무덤을 찾아내게 되었다. 이 무덤의 위치는 중궁1호궁전터 동쪽 부근의 앞쪽나래채와 뒤쪽나래채 사이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북남공동조사에서 재확인된 안학궁1호무덤이다.
중궁1호궁전터의 뜰에서 알려진 안학궁1호무덤과 함께 발굴과정에 여러기의 고구려 돌칸흙무덤이 조사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비교적 면모를 뚜렷이 알아볼 수 있게 남아 있는 무덤들을 선택하여 안학궁2호무덤, 3호무덤으로 발굴보고서에 서술하였다. 이 무덤들은 안학궁의 초기 건축연대를 밝힐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된다. 웅장한 궁전건물터를 발굴하고 고구려의 강대성과 뛰어난 건축술에 대하여 논쟁하던 열기띤 목소리들이 지금도 들려오는 것 같다.

 

 ● 제 2 호궁전터와 제 3 호궁전터 ●

 

중궁제1호궁전터를 발굴하면서 일부 역량을 조절하여 제1호궁전터의 동쪽과 서쪽구역을 조사하였다. 제2호궁전터는 바로 발견하였지만, 제3호궁전터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제1호궁전터 발굴이 심화되는데 따라 제2호궁전터와 제3호궁전터도 동시에 발굴하도록 하였다. 제2호궁전터는 제1호 궁전터보다 2m 낮은 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궁전터 발굴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궁제2호궁전터도 시굴침으로 기초자릿돌과 토방석을 찾은 다음 그에 기초하여 궁전의 규모와 형식을 밝혔다.
중궁제2호궁전터 발굴에서는 앞회랑과 동쪽회랑 기초를 찾지 못하였다. 다만 3호궁전터 서쪽회랑의 북쪽모서리 부분에 두 개의 기초자릿돌만이 남아 있었다. 비록 회랑 기초자릿돌 2개만이 알려졌지만 이것은 제1호궁전의 서쪽지구에도 제2호궁전과 같은 궁전이 대칭으로 놓여있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중궁제3호궁전터를 찾기 위한 시굴과정에 또다시 고구려 초기의 돌칸흙무덤을 1기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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