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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터 발굴

 
 

1) 남궁터 발굴

 

1969년 5월 안학궁의 궁전터들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해에는 력사학부 교직원, 학생 모두가 동원되어 대규모의 발굴을 진행하였다. 대성산 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발굴을 하루빨리 끝내기 위해 력사학부 교직원, 학생들 전체가 나섰던 것이다. 채희국 강좌장선생님은 많은 노력이 동원된 조건에서 발굴역량을 합리적으로 편성하고 통이 크게 벌려 나갈 결심을 하고 첫 대상으로 남궁터를 정하였다.
발굴전 남궁터가 있던 지대의 지형을 보면 남문터에서 북쪽으로 156m 떨어진 곳에 높이가 70~80cm, 길이가 약 80m 정도 되는 단이 동서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었고 단위는 평평하였다. 그리고 이 단으로부터 동서방향으로 각각 85m 정도 떨어진 곳들에 높이가 1.5m 정도되는 단들이 또 있었다. 채희국 선생님은 발굴조를 4개로 편성하고 매개 조에 발굴책임자를 임명한 다음 제1조는 중심건물터를, 제2조는 동쪽건물터를, 제3조는 서쪽건물터를, 제4조는 건물을 둘러막은 회랑터를 발굴하도록 하였다.

 

 ● 제 1 궁전터 ●

 

발굴에 앞서 건물터의 윤곽선을 찾아 내기 위한 방법론적인 문제가 토의되었다. 채희국 선생님은 건물터의 윤곽을 확인하는데 기본은, 토방선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면서 세로방향으로 길게 트렌치를 째는 방안을 내놓았다. 나는 선생님의 의견대로 토방선를 찾기 위하여 건물터 안쪽으로 1m 정도의 폭으로 트렌치를 째들어갔다.
발굴을 시작해서 진흙땅을 1m 깊이로 파들어가니 토방시설이 나타났다. 드러난 토방 기단선을 따라 전구간에서 궁전터의 윤곽선을 찾아냈다. 궁전 건물터의 동서양면과 북쪽토방선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건물터의 규모를 확인한 다음 전면발굴을 진행하였다. 나는 시굴침을 찔러가며 매 기초자릿돌 위치를 확정하고 그것을 발굴하도록 하였다. 여기에서는 구조상 총 52개의 기초자릿돌들이 있어야 할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실지 발굴을 해보니 이미 10개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42개만이 잘 남아 있었다.

 

 ● 제 2 궁전터와 제 3 궁전터 ●

 

제1호궁전터 발굴에서 얻은 경험에 기초하여 안학궁터 건축에 대한 일정한 표상을 얻게 되었다. 채희국 선생님은 나에게 제2호궁전터와 제3호궁전터들(1호궁전터 좌우에 대칭으로 있는 궁전터들)을 발굴하라고 지시하면서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제2궁전터는 파괴가 심하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제기되는 문제가 없이 빠른 속도로 발굴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동쪽나래채가 깊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 토량처리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을 뿐이다.
제3궁전터는 기본적으로 암반위에 있었는데, 암반이 없는 부분은 땅을 60cm 정도 되게 내려파고 기초자릿돌을 마련하였다. 이 건물터 발굴에서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서쪽회랑과 남쪽 회랑 그리고 남궁문터를 찾으려고 6월의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넓은 부지를 전면적으로 조사해 나가던 나날들이었다. 그때 나에게 무슨 힘이 있어 하루종일 시굴침을 찔러 나갔을가 하는 생각을 지금도 자주 한다. 손맥이 다하도록 시굴침을 찔러 나갔지만 끝내 회랑 기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까지도 이 부분은 적지 않은 공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제3궁전터 앞에는 못자리가 있고 뒤에는 큰 바윗돌들을 인공적으로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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