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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터를 찾다.

 
 

5) 북문터를 찾다.

 

안학궁터 유적에 대한 발굴은 1968년 5~6월에도 계속 진행되었다. 이해 발굴에서는 고고학 및 민속학학과 3~4학년 학생들이 참가하였다. 발굴에 이처럼 2개학년 학생들을 동원하게 된 것은 북문터 발굴이 다른 곳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북문터는 궁성의 북쪽에 솟은 조산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조산의 흙이 밀려내려 성문에 쌓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북문터를 찾아내자면 많은 토량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토량은 얼핏 계산해도 600여m3나 되었다. 이 많은 토량을 제끼자니 학생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그러나 안학궁터 발굴이 중요한 사업이라는것을 가슴깊이 간직한 우리들은 신심과 낙관에 넘쳐 일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 두달은 걸려야 한다던 토량처리를 단 20일만에 해냈다. 성문터위 에 쌓인 흙을 모두 처리하고 보니 전면에 막돌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북문터의 기초는 전면돌기초를 한것으로 생각하고 세부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북문터에는 앞뒤로 3개의 기초를 연결 한것과 6개의 기초를 연결한 형식의 기초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북문터 발굴을 끝내고 이와 같이 깊은 곳에 문터가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면서 땀흘려 찾아낸 기초자릿돌 위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도 나의 눈에 선히 떠오른다.
한달 가량 북문터를 발굴한 우리는 계속하여 남쪽성벽 3개 지점과 동쪽성벽 1개 지점, 서쪽성벽 2개 지점, 북쪽성벽 2개 지점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였으며, 도랑과 남수구문터 발굴을 마저 진행함으로써 성벽, 수구문, 도랑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다음 궁성의 동서 양쪽에 있는 해자와 성안에 있는 못자리에 대한 부분 발굴을 진행하는 것으로서 이해의 발굴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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