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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시 소재 고구려유적

 
 

3. 집안시 소재 고구려유적

 

집안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인 만큼 관련 유적도 제일 많이 분포해 있다. 고구려의 막강한 국력과 그들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6.39m에 달하는 광개토왕비를 비롯하여 거대한 고분들이 고구려가 멸망한 지 1,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집안에 있는 고구려유적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으므로 집안시에는 왕궁이 있었다. 집안시 북쪽에 있는 환도산에 포곡식으로 조성되어 있는 환도산성과 집안시내 평지에 있는 국내성이 한 세트인, 고구려의 전형적인 산성-평지성으로 이루어진 도성체제를 갖추고 있다. 위기시에 들어가 방어를 할 수 있게 조성한 환도산성 안에는 궁전터와 장대, 병영터, 연못 등이 있다. 최근에 진행된 발굴작업을 통해 팔각건물지와 서남문처, 수졸 병 영터 등이 새로 확인되었다.
국내성은 환도산에서 흘러내려온 통구하와 압록강이 만나는 곳에 조성되었다. 이 두 강이 성을 보호하는 자연해자로 기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집안 시내 평지에 있는 국내성은 성벽 안쪽과 바깥쪽을 장방형으로 다듬은 쐐기돌로 쌓았다. 네모난 형태의 평지성으로 성벽 전체의 둘레는 2,686m이다. 국내성의 문은 원래 남쪽 벽과 북쪽 벽에 한 개씩, 동쪽 벽과 서쪽 벽에 두 개씩 모두 여섯 개가 있었는데 모두 옹문(甕門)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들여 쌓기를 하여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성벽의 안 밖에서 건물터와 우물 등의 고구려 시기 유적들이 확인되었다.
집안시 외곽에는 수도 방어를 위해 산성들을 축조해놓았다. 패왕조산성(霸王朝山城), 망파령관애(望波嶺關隘), 관마장산성(關馬墙山城), 대천초소(大川哨所), 칠개정자관애(七個頂子關隘), 만구노변장관애(灣溝老邊墙關隘), 장천고성(長川古城)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관애는 차단성으로 교통로상의 험준한 협곡을 가로지르도록 쌓은 성이고, 초소는 교통로 부근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요망시설이다. 칠개정자 관애와 만구노변장 관애는 수상 교통로상의 군사방어시설이다. 신개하 하구에 있는 패왕조산성은 혼강에서 신개하로의 진입로를 봉쇄할 수 있는 요새지이고, 상류쪽의 망파령 관애는 신개하를 거슬러 판차령(板岔嶺)으로 향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이다. 이들은 신개하를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교통로상의 군사방어시설이다. 청하(淸河) 유역의 관마장산성은 청하를 거슬러 통구분지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하는 방어시설이었고, 그 북쪽 7km에 있는 대천초소는 그 전방초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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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昊奎, 1998, 『高句麗 城 I』 (國防軍事硏究所), 43쪽.


집안시에는 1960년대만 해도 1만 2천여기에 달하는 고구려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도시 개발로 인해 많은 무덤들이 훼손되거나 소멸되어 6천여기만 존재한다고 한다. 집안시내에 있는 무덤들 전체를 묶어 통구고분군이라 통칭하고 있는데, 이 고분군은 다시 우산하고분군, 산성하고분군, 만보정고분군, 마선고분군, 칠성산고분군으로 나누어진다.
국내성의 동북쪽에 집안시에 있는 고분군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우산하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에 장군총과 태왕릉, 광개토왕비 등 가장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들이 속해 있다. 왕릉으로 확인된 우산 2110호와 992호, 임강총이 이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사신무덤, 무용총, 각저총, 오회분과 사회분 등도 이 고분군에 포함된다.
이 가운데 우산 2110호 무덤은 무덤 정상에 콘크리트구조물이 서있는 무덤으로 제단을 갖춘 계단식 돌무지무덤이다. 대략 2세기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 이상 깎여나간 봉분 위에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든 흉물스러운 구조물이 서있는데, 중국 내전이 한창일 때 사격연습을 하기위해 세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일제시기에 이 지역의 기세를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우산 992호 무덤은 우산촌과 철길 사이에 있다. 양쪽에 제단이 있는 계단식 적석총으로 현재 7단이 남아 있다. 금으로 만든 장식품과 금동으로 된 가죽긁개를 비롯해 무술(戊戌) 기년이 새겨진 문자와당이 출토되었다. 와당의 문양은 서대총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고, 천추총이나 태왕릉에서 발견된 연꽃무늬와 당보다는 앞선 양식이다. 발굴보고서에서는 무술년이 338년일 가능성이 크다고 되어 있다. 중국학계에서는 이 무덤의 주인공을 백제와의 전쟁 중에 유시에 맞아 서거한 비운의 왕인 고국원왕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왕릉은 통구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원래 큰 고분이 더욱 더 커 보인다. 그 앞쪽에 유명한 광개토왕비가 서있고, 그 오른쪽 언덕 위에 임강총이 있고,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장군총이 있다. 봉분의 정상 부근에 두 개의 관대가 놓인 돌방이 있다. 주변에 기와조각과 벽돌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장군총은 국내성에서 약 7.5km 떨어진 통구평야의 동쪽 용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7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적석총으로 본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제단과 배총을 갖추고 있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적석총이다. 고분과 그 주변에 기와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상층부에 어떤 건축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왕릉과 장군총은 모두 제단과 배총을 갖춘 계단식 적석총으로 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임강총은 광개토왕비에서 나와 시넷물을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면 있다. 과수원과 밭이 무덤 입구부분까지 조성되어 있다. 봉분 위에서 보면 역시 집안시내가 다 보인다. 벼랑처럼 된 남쪽 아래로 압록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철교가 지나가고 있다. 압록강 옆에 있는 무덤이라서 임강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제단이 갖추어진 계단식 적석총으로 청동으로 된 사람모양의 수레빗장과 용마루 기와 및 도기조각, 마노, 금동으로 된 관꾸미개, 마구 등 다량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계단식 적석총의 초기 특징이 보이는 고분으로 대략 3세기말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왕릉과 장군총, 임강총 이 세 무덤의 정상에 올라서면 어디서나 다른 두 무덤과 광개토왕이 보이고, 집안시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집안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가장 좋은 입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고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학계와 일본학계에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중국학계에서는 태왕릉이 광개토왕릉, 장군총이 장수왕릉이라고 보고 있다.
통구하 오른쪽 환도산 아래 돌무지무덤 수천기가 줄지어 있어 전형적인 고구려 고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곳의 무덤들을 묶어 산성하고분군이라 부르고 있다. 이 고분군에는 절천정무덤, 형무덤, 아우무덤 등의 중대형 돌무지무덤 및 ‘왕자(王字)’무덤, 미인무덤, 귀갑총 등 유명한 벽화무덤들이 있다.
산성하 무덤의 좌측, 통구하 좌측면에는 만보정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은 고분의 숫자도 다른 고분군에 비해 적고, 무덤 크기도 작은 편이다. 왕릉급 고분이 포함되지 않아 본격적인 발굴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을 안 집들 사이에 비교적 큰 고분이 몇 기나 섞여 있고, 밭에도 고분들이 늘어서 있다. 어떤 고분은 민가의 땔감나무 받침으로도 쓰이고 어떤 고분은 동네꼬마들이 오르내리며 노는 놀이터로 이용되고 있다.
만보정 아래편 통구하 좌측에는 칠성산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은 통구하를 사이에 두고 국내성과 마주보고 있다. 이 고분군에는 왕릉급의 대형 적석총이 있다. 대표적인 무덤으로 칠성산 871호 무덤과 칠성산 211호 무덤을 들 수 있다. 칠성산 871호 무덤은 통구촌을 지나 산중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이 무덤에서는 국내성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칠성산 211호 무덤은 871호 무덤에서 서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칠성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칠성산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덤으로 중국의 발굴보고서에서는 이 무덤의 주인공을 서천왕(西川王, 270년~291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칠성산 무덤의 좌측, 집안에서 단동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내려 가다보면 길 좌우에 대형 적석총들이 나온다. 마선고분군이다. 마선하와 압록강이 만나 이룩한 평지와 완만한 언덕에 고분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고분군에는 왕릉급 무덤만 모두 8기가 있는 등 규모가 큰 무덤이 많고, 전체적인 고분수도 많은 편이다.
이 가운데 유명한 고분으로 마선 2378호, 마선 626호, 천추총, 서대묘를 들수 있다. 2378호는 마선향으로 들어가는 첫 들머리 언덕 위에 있고, 마선 2100호는 마선향 홍성촌 경로당 앞 도로변에 있는데, 마선하를 사이에 두고 마선 626호 무덤과 마주보고 있다. 그 남쪽에 중국학계에서 제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384년~390년)의 무덤에 비정하고 있는 천추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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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博物館 編著, 2004, 『集安 高句麗王陵』(文物出版社).

천추총은 집안시 에서 서쪽으로 약 3.5km 정도 떨어진 마선향 마선촌에 있다. 무덤에서 ‘천추만 세영고(千秋萬歲永固)’ 라는 글귀를 새긴 벽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천추총이라 불리게 되었다.
천추총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미천왕(美川王, 300년~330년)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는 서대총이 있다. 서대총은 집안지역에 있는 대형 고분들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다. 산처럼 거대한 돌무지무덤의 한 가운데가 움푹 파여 두 개의 봉우리처럼 나눠져 낙타 등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고국원왕 12년인 342년 전연의 모용황이 침공하였을 때,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도굴해갔다고 하는 것과 관련지어 미천왕의 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집안에서 단동 방향으로 더 내려 가다보면 하활룡촌과 상활룡촌이 나온다. 이곳에는 비교적 작은 적석총들이 있다. 또 태평촌과 유림촌에도 작은 규모의 적석무덤들이 남아 있다. 이 고분군에 대해서는 아직 직접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집안시의 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이런 소규모 고분군들은 점차 훼손되고 소멸되어 가는 중이다.
압록강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다보면 하해방촌이 나온다. 여기에 800여자에 달하는 묵서명이 있어 잘 알려진 모두루총을 비롯한 무덤들이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면 길 왼편에 작은 마을인 장천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벽화고분인 장천 1, 2호분을 포함하여 중, 소형급 무덤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지금은 운봉댐이 만들어져 많이 수장되기도 했지만 청석의 양민촌에도 고구려고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제천행사를 올린 장소로 유명한 국동대혈도 압록강을 따라 동쪽으로 가는 길 왼편 산 위에 있다.
5세기에 조성된 광개토왕비와 장군총, 태왕릉 등은 고구려의 석조기술과 건축술 및 과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들이다. 장군총과 태왕릉에 사용된 거대한 화강암 석재는 집안에서 통화로 가는 도로의 우측, 집안현성에서 북쪽으로 23km 되는 지점에 있는 녹수교로부터 약 15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채석장에서 가지고 왔다.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 돌을 떼어낸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나 있고, 이곳 암석의 재질이 장군총과 태왕릉의 기단석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고대 채석장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채석장은 1983년 10월에 고구려시기의 채석장유지로서 현 급 (縣級) 중점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이와 같이 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남아 있는 집안시는 고구려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곳이고, 그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특히 고구려 문화의 특징인 강인하면서도 세련된 석조문화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余昊奎, 1998, 『高句麗 城 I』 (國防軍事硏究所), 43쪽.
吉林省文物考古研究所·集安博物館 編著, 2004, 『集安 高句麗王陵』(文物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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