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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도리벽화무덤의 축조 연대

 
 

6. 옥도리벽화무덤의 축조 연대

 

옥도리벽화무덤은 구조상 감 있는 두칸무덤의 구조로 된 석실봉토무덤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석실봉토무덤은 돌각담무덤에 이어 발생·발전한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형식이다. 석실봉토무덤은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구조형식 또한 다양하다.
옥도리가 속한 남포시 용강 일대의 고구려 무덤들은 떼를 지어 있는데, 그것은 석천산무덤떼·용호리무덤떼·후산리무덤떼·용흥리무덤떼와 온천군 성현리무덤떼로 나눠진다. 옥도리무덤떼는 용호리무덤떼에 속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벽화무덤은 무덤떼와 떨어져 비교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지역의 무덤떼들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의 무덤들이 윗부분에 있고 보다 늦은 시기로 올수록 남향이 많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옥도리와 그 주변 무덤떼에서는 큰 무덤을 중심으로 달린 무덤이 있거나 서향·서남향인 무덤들이 많지 않으며, 무덤떼 속에 옥도리벽화무덤이 위치하고 있지 않으므로 고구려 석실봉토무덤의 분포상황으로는 축조 연대를 밝히기 어렵다. 또 무덤에서는 기년명 유물을 비롯하여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온 것도 없다. 그러므로 옥도리벽화무덤의 축조 연대는 무덤의 구조형식과 벽화의 내용을 종합하여 다른 고구려 벽화무덤들과의 비교 속에서 그 상대적 연대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고구려 석실봉토무덤들을 구조형식상으로 분류할 때 외칸무덤과 두칸무덤, 여러칸무덤으로 나누었다[큰무덤 유형을 3가지 형식으로 나누고 작은 무덤 유형을 따로 가른 것도 있다]. 그런데 외칸무덤에도 감[곁칸] 있는 무덤들과 나란히 병렬된 무덤들이 있고 두칸무덤에도 이러한 형식의 무덤들이 있는 것만큼, 세부적으로 들어가서는 외칸무덤과 감[곁칸] 있는 두칸무덤, 여러칸무덤으로 분류된다. [주013]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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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호(2001), 『고구려고분연구』, 사회과학출판사, 77쪽.


감[곁칸] 있는 두칸무덤은 다시 감이 있는 두칸무덤과 곁칸이 있는 두칸무덤으로 나뉘는데 옥도리벽화무덤은 감 있는 두칸무덤에 속한다. 무덤 앞칸에 감이 있는 무덤들로는 평양역전벽화무덤·감신무덤·약수리벽화무덤 등 비교적 이른 시기, 즉 4세기 경~5세기 초의 무덤들이고, 곁칸이 있는 무덤들은 고산동7호·10호·15호무덤 등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의 무덤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시기적 차이라기보다 무덤 등급상 차이에 기인되는 것이 많다. 왜냐하면 곁칸이 있는 무덤유형은 평면형태에서 여러칸무덤인 태성리1호무덤이나 안악3호무덤과도 통하며, 결국 4세기의 무덤들이라는 데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형식상 옥도리벽화무덤과 가장 비슷한 무덤은 감신무덤이다. 안길과 장방형의 앞칸, 앞칸 좌우의 감, 사잇길·안칸과 함께 궁륭고임천장형식까지도 두 무덤은 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여타 감 있는 무덤들과는 달리 두 무덤의 감은 그 높이나 너비·깊이도 비슷하다[태성리2호무덤·약수리벽화무덤·안악 1호무덤 등의 감은 매우 작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옥도리벽화무덤의 앞칸 좌우 벽 밑, 즉 감 앞에 높이 18㎝, 너비 20~25㎝의 단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이 나타난 것은 고구려 무덤에서 처음 보는 현상이다.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감신무덤과 옥도리벽화무덤은 벽화내용에서도 유사성이 많다. 그런데 감신무덤의 축조 연대는 4세기 전반기로 편년되어 있다. 최근에 일부 견해들에서 감신무덤의 연대가 지나치게 소급되었으므로 그 연대를 4세기 중엽~후반기의 무덤으로 다시 편년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무덤의 구조형식을 볼 때 옥도리벽화무덤과 감신무덤의 연대를 같이 보기에는 불합리한 점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구조형식에서 옥도리벽화무덤처럼 앞칸이 장방형이거나 그와 가까운 두칸무덤 유형들을 종합하여 상대적 연대를 추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인정된다. 앞칸이 장방형이거나 그와 가까운 고구려 벽화무덤들을 감의 유무에 관계없이 표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표 1).
따라서 옥도리벽화무덤은 구조형식상 4세기~5세기 초의 무덤형식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벽화의 구성과 내용, 화법을 다른 무덤벽화들과 비교·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기둥과 두공, 도리의 공통성 측면에서 본다면 옥도리무덤벽화에 그려진 기둥은 흘림기둥으로서 감신무덤·씨름무덤·춤무덤·덕흥리벽화무덤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서 덕흥리벽화무덤의 기둥에는 단청무늬가 그려져 있으므로 이를 제외하면 역시 4세기~5세기 초의 무덤들과 공통되는 것이다.
두공은 감신무덤·용강큰무덤·쌍기둥무덤·안악1호무덤의 그것과 같은데 이것은 두공 형식이 5세기의 무덤들과 유사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도리에 그려진 장방 무늬도 그 형식이 감신무덤·거북잔등무늬무덤의 그것과 비슷한데 거북잔등무늬무덤도 4세기 말~5세기 초의 무덤이다.
장방생활도와 새형 구름무늬는 독특한 것이므로 대비할 수 없겠지만, 구태여 유사성을 찾는다면 씨름무덤·춤무덤의 장방 윗부분 삼각형장식과 불꽃무늬·휘장의 모양이 비슷하고, 감신무덤·산성밑332호무덤·미창구촌벽화무덤의 왕자무늬와 비슷하다. 그런데 씨름무덤, 춤무덤은 4세기 말~5세기 초의 무덤이다. 산성밑332호무덤은 4세기 말의 무덤이며 미창구촌벽화무덤은 5세기 초의 무덤이다[연꽃무늬는 대조하지 않는다]. 무용도에서는 앞서 본 것처럼 춤무덤·장천1호무덤의 무용그림과 강한 공통성을 보이고 있으며, 수렵도는 춤무덤의 그것과 가장 유사하다. 그런데 장천1호무덤은 5세기 중엽의 것으로 편년되었다. 여기에서 어느 한 벽화 장면이 비슷하다고 두 무덤을 같은 시기의 것으로 편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장천1호무덤은 앞칸은 방형인데다가 천장은 평행고임천장이고 벽화내용 또한 불교적 색채가 짙은 것으로서 옥도리벽화무덤의 구조 및 벽화내용과는 많이 차이 난다.

 
[표 1] 두 칸으로 된 고구려 벽화무덤 일람표
[표 1] 두 칸으로 된 고구려 벽화무덤 일람표:1
번호무덤이름위치무덤구조형식벽화유형연대
1감신무덤남포시 와우도구역 신령리안길, 앞칸, 앞칸 좌우의 감인물풍속도4세기 전반기
2평양역전벽화무덤평양시 중구역 연화동
3고산동15호무덤평양시 대성구역 고산동4세기 후반기
4약수리벽화무덤남포시 강서구역 약수리인물풍속 및 사신도4세기 말~5세기 초
5용강큰무덤남포시 용강군 용강읍인물풍속도5세기
6덕흥리벽화무덤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안길, 앞칸, 사잇길, 안칸408년
7가장리벽화무덤평안남도 대동군 가장리5세기
8동암리벽화무덤평안남도 순천시 동암리인물풍속도4세기 후반기
9천왕지신무덤평안남도 순천시 북창리5세기
10대안리벽화무덤남포시 대안구역 은덕동인물풍속 및 사신도
11산연화무덤중국 길림성 집안시장식무늬그림4세기 말~5세기 초
12춤무덤인물풍속 및 사신도
13씨름무덤인물풍속도

다음으로 앞에서 말한 감신무덤의 연대를 4세기 후반기경으로 보자는 견해는 타당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된다.
감신무덤의 연대는 종전에 앞칸에 큰 감이 있는 것으로 인하여 4세기 전반기경으로 보았는데, 같은 시기인 태성리1호무덤·평양역전벽화무덤 등에는 벽화장식무늬가 없거나 적다. 왕릉인 안악3호무덤에까지도 벽화장식무늬가 거의 없었지만 감신무덤에는 연꽃무늬·기하무늬·구름무늬·불꽃무늬·반리무늬 등이 모두 그려져 있으며, 무늬형식들이 4세기 후반~5세기 초의 무늬들과 매우 비슷하다.
감신무덤의 연대가 4세기 후반기경으로 내려간다면 그와 구조형식상, 벽화내용상 유사한 옥도리벽화무덤의 축조 연대를 4세기 말경의 무덤으로 편년할 수 있으며, 이것은 4세기 말~5세기 초의 고구려 벽화무덤들의 구조나 벽화 내용과도 완전히 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옥도리벽화무덤에 사신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도 편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물풍속도와 인물풍속 및 사신도는 그 존속연대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주 013
손수호(2001), 『고구려고분연구』, 사회과학출판사,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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