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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개관

 
 

• 평양개관

 

오랜 역사의 도시 평양에는 그 역사의 깊이 만큼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다. 고조선의 왕검성에서 시작하여 낙랑군의 치소가 자리잡은 곳인지라 그 시대의 유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후 이곳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많은 성곽을 비롯하여 절터, 고분군 등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고구려 멸망 이후 한동안 잡초가 무성한 채로 버려졌던 이곳은 고려의 등장 이후 3경의 하나인 서경(西京)이 되어 다시금 도시가 정비되고, 성곽이 다시 마련되고 궁궐이 지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서북지방의 행정적 중심지로 기능하였기 때문에, 평양은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 유산을 갖는 곳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역사를 꽃 피운 시기는 뭐니해도 고구려의 전성기에서 멸망까지 240여년 동안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427년(장수왕 15년)에 국내성(집안)에서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장수왕대 천도한 평양의 도성은 평지성인 청암리토성과 산성인 대성산성, 그리고 평지궁성인 안학궁성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 평원왕은 586년에 도성을 평양성에서 장안성으로 옮기었다. 천도라고 하지만, 장안성은 기존의 도시에서 불과 십여km 서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장안성의 천도는 평양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결과였다. 이곳 장안성에서 고구려는 그 최후를 맞게 된다. 이렇게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은 중심지였기에 평양 지역에는 많은 고구려시대의 유적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평양성과 대성산성 및 청암리 토성을 비롯하여 고방산성. 청호리토성 등 성터, 금강사지, 청호리사지, 상오리사지 등 절터, 동명왕릉과 진파리 고분군, 대성산성 고분군 등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고분군, 그 외 대동강의 나무 다리터, 고산동 우물터 등 다양한 도성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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