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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트여닫기 홀본(환인) 이미지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홀본(졸본)은 현재 중국의 요령성 환인 지역으로 혼강과 그 지류를 따라 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이다. 광개토왕릉비에 주몽이 비류곡(혼강) 홀본 서쪽 산 위 에 흘승골성을 쌓아 도읍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37년부터 기원후 3년까지 약40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다. 고구려 도성 체제의 특징은 평상시 사람들이 거주하던 평지성과 외적의 침입과 같은 비상시 방어를 위한 산성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인데, 현재 평지성은 환인댐 건설로 인해 명확하지 않으며 산성으로는 오녀산성이 있다. 이 밖에도 환인지역에는 하고성자 토성을 비롯하여 상고성자 고분군, 고려묘자 고분군 등 고구려 이른 시기의 유적들이 분포해있다.

  • 리스트여닫기 국내 (집안) 이미지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은, 압록강 유역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펼쳐진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왕은 국내의 땅이 기름져 농사를 짓기에 알맞고, 짐승과 물고기가풍부하기 때문에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기면 백성의 이익이 크고 전쟁 걱정도 없어지기 때문에 천도하였다고 한다. 기원후 3년에서 427년까지 약 400년 이상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만큼, 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도성유적으로는 평지성으로 국내성이, 방어용 산성으로 환도산성이 있다. 한편, 집안시에는 1960년대만 해도 1만 2천여 기의 고구려 고분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시 개발로 인해 많은 고분들이 훼손되거나 소멸되었다. 2004년 집안의 주요 고구려 유적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지만, 한국인의 접근이 제한된 곳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 리스트여닫기 집안 일대의 고구려 고분 이미지 고구려는 무덤의 나라라고 할 만큼 많은 무덤들이 존재하는데, 돌무지무덤(적석총)과 돌방무덤(봉토석실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집안에 많이 분포하는 돌무지무덤은 말 그대로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으로, 중국 여러 민족의 무덤과 확연히 구별되는 고구려 고유의 것이다. 기원전부터 압록강을 중심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어 고구려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준다. 돌무지무덤은 처음에는 강돌이나 산자갈로 묘단을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한 다음 돌을 덮었다. 이러한 형태는 세월이 흐르면 돌이 흘러내리면서 둥그런 형태가 된다. 이후 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덤의 가장자리를 다듬은 돌로 쌓아 기단을 만들게 되었고, 이후 여러 층으로 된 계단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태왕릉이나 장군총과 같은 거대한 계단식돌방돌무지무덤은 동방의 피라미드로 불릴 정도로 외형과 규모에서 당시 고구려의 위용 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리스트여닫기 평양 이미지 평양은 고구려의 세 번째 수도였던 곳으로,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평지성으로는 안학궁 또는 청암리토성을, 방어용 산성으로는 대성산성을 쌓았다. 그러나 6세기 후반 주변 정세가 어렵게 되자, 고구려는 586년 현재의 평양 시내에 있는 장안성(평양성)으로 재천도하게 된다. 현재 평양에는 청암리 토성과 고방산성, 금강사지, 청호리사지, 상오리사지 및 동명왕릉과 진파리고분군 등 많은 고구려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 리스트여닫기 북한지역의 고구려 벽화고분 이미지 고구려에서는 현재까지 약90여 기의 벽화가 그려진 무덤들이 확인되었다(평양 및 인근 72기 이상, 환인 및 집안 22기 이상). 고구려의 무덤벽화는 주로 돌방무덤에서 확인되지만, 간혹 돌방돌무지무덤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벽화의 내용은 초기에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을 표현한 사실적인 그림에서 이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연꽃무늬나 장식무늬 등이 새롭게 등장하며, 마지막으로는 도교의 영향이 가미되어 극락왕생의 불교 사상과 도교의 장생불사의 신선 사상이 혼합되면서 사신도와 같은 상징적 그림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벽화가 그려진 돌방무덤의 경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상당수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 리스트여닫기 고구려 성곽 이미지 고구려는 성곽의 나라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성들이 존재한다. 현재 중국에만 200여 개에 이르는 고구려 산성이 남아 있으며,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요동 일대의 고구려 성곽은 1,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견고하게 잘 남아있는 곳이 많다. 북한에도 고구려 성이 많으나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남한 지역에 존재하는 성곽은 규모가 작은 보루가 대부분이며, 분포 영역별로 보면 임진강 일대, 양주 분지 일대, 한강 일대, 금강 일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남한 고구려 성곽의 경우 초반에는 목책을 이용하여 임시로 성곽을 축조하였고, 이후 돌을 이용하여 석성을 쌓았음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는 고구려의 축성기술은 백제와 신라에 영향을 주었다. 한편, 고구려 산성은 당시 주요 교통로에 쌓은 것들이 많은데, 이는 고구려의 전투 방식 및 지배양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적들이 고구려의 산성을 공격하지 않고 진군할 수는 있으나, 군대 후미의 보급이 차단될 우려가 있어서 산성을 점령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다. 또한 산성은 특성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적의 동태 파악이 용이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방어하기 쉽고, 또한 대형 산성의 경우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오랜 기간 동안 머무를 수 있어,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6세기 후반 네 차례에 걸친 수나라 대군을 격퇴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