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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통상을 원하는 서양 각국의 뜻을 이홍장(李鴻章)을 통해 조선에 전하라는 군기처(軍機處)의 문서

서양 각국이 조선과 통상을 하고자 하니, 丁日昌이 우호관계를 열고 조약을 맺음으로써 이를 통해 외환을 막자고 條陳한 각 내용을 李鴻章이 조선에 전달해 주도록 하라(泰西各國欲與朝鮮通商, 著李鴻章照丁日昌條陳藉通好修約以潛弭外患各節轉致朝鮮).

 
  • 발신자軍機處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79년 7월 5일 (음) , 1879년 8월 22일
  • 문서번호2-1-1-02 (305, 361a)
7월 5일 軍機處에서 [總理各國事務衙門(이하 總理衙門으로 약칭)에] 광서 5년 7월 4일 받은 上諭를 보내왔다. [주001]
번역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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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이는 없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유(諭) 또는 상유(上諭)는 황제가 주동적으로 반포하는 명령이고, 지(旨) 또는 성지(聖旨)는 대신의 주청에 대하여 내리는 지시이다. 여기서는 상유(上諭)라고 나온 경우가 아니면 보통 유지(諭旨)라고 통칭하였다.



 總理衙門에서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조선에서 프랑스 선교사 빅토르 드게트(崔鎭勝) [주002]
번역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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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승(崔鎭勝, 빅토르 드게트[Victor Marie Deguette, 1848~?])은 파리의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선교사로서 1876년 5월 10일 M.J.G.블랑(한국명 白圭三) 신부와 함께 서울에 잠입, 병인(丙寅)박해 이후 성직자가 없던 때에 경기 용인(龍仁)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검신령 소식을 접하고 충청도로 피신하였다. 박해가 일시 멈추는 듯하자 1878년 다시 나와 선교활동을 하다가, 1879년 공주에서 체포되어 만주로 추방되었다. 만주에서는 리델 주교와 『한라자전(韓羅字典)』 편찬에 착수하였고, 1883년에 다시 입국, 이천(利川)·원산(元山)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재개하다가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를 체포한 것에 대해 조선에 통지하여 조사한 다음 석방하도록 禮部에 지시를 내려주실 것을 청한 奏摺은 이미 논의한 대로 처리하였습니다.
 더불어 總理衙門에서는 다음과 같은 附片을 올렸다.
  서양 각국이 조선과 통상하고자 하는데, 大局과 관련된 일이니 자세하고도 분명하게 비밀리에 아뢰고자 합니다.
일본과 조선은 서로 사이가 몹시 좋지 않고, 장래 일본이 그 힘을 믿고 조선에서 뜻을 멋대로 하게 되면 서양 각국이 떼 지어 일어나 그 뒤를 따르리라는 것은 모두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각국이 조선과 통상을 하고자 하니, 만약 이를 빌려 우호관계를 여는 조약을 맺는다면, 이러한 문제를 가라앉힐 수 있어 뜻밖의 염려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조선의 政敎·禁令에 대해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바를 억지로 강요하기 어렵고 조정에서 이러한 뜻을 조선에 분명히 밝히기도 불편하지만, 藩封을 돌보아 살피고자 한다면 또한 모른 척 내버려둘 수도 없는 법이다. 總理衙門의 상주에 따르면 李鴻章이 조선 사신 李裕元과 일찍이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交隣의 道에 대해 대략적으로 논의하였다고 하니, 자연히 기회를 틈 타 완곡하게 開導할 수 있을 것이다. 李鴻章은 필히 쉽사리 藩服의 使臣과 서신을 주고받지 않으려 하겠지만, 大局과 관련된 일이니 또한 마땅히 경중을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李鴻章에게 올해 5월에 丁日昌이 條陳한 내용을 참조하여 자신의 뜻인 것처럼 하여 조선에 전달하게 함으로써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外患을 은근히 제거할 수 있도록 하라. 원래의 附片을 초록하여 보내주어서 그가 읽어볼 수 있도록 하고, 아울러 이상의 비밀상유를 알려주도록 하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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