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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백성들의 치발(薙髮) 분쟁을 안정시켰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조선 백성이 薙髮 때문에 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모아 서로 다투었는데, 이미 진압하여 안정시켰습니다(韓民因薙髮起畔, 糾衆互毆, 已彈壓安靜).

 
  • 발신자吉林將軍 長順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90년 5월 25일 (음) , 1890년 7월 11일
  • 문서번호1-4-2-04 (1542, 2789a-b)
5월 25일 길림장군 장순이 보낸 다음과 같은 문서를 받았습니다.
길림·조선상무 화룡욕총국의 업무를 임시로 관리하면서 鹽運使 직함을 가지고 있는 甘肅候補知府 葉聯甲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종성의 座首 吳仁之에 의하면 조선 백성이 강을 넘어 월간하는 것을 금지한 문제에 대해서 종성의 월간한 각 가구에게 추첨을 시켜 사람을 뽑은 다음, 함경북도 아문과 조선(의 경성)에 주둔하고 있는 원세개 도대의 처소에 찾아가 고발을 하고자 하며 3월 13일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원세개 도대는 사전에 이 일을 먼저 저희와 상의한 다음 처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함경북도 아문에서) 탄원서를 받아주지 않아, 해당 종성의 좌수는 마침내 원세개 도대에게 찾아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또한 회녕부 맞은편의 강 주변지역으로 건너와 거주하는 조선 백성은 아직 토지측량을 시작한다고 공고하기도 전인데, 30여 가구가 명단을 갖추어 薙髮을 자청하였으며, 그곳에 가서 토지측량을 시작한 지가 이미 한 달이 넘었으므로 다시 21일에 일제히 치발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通水坪의 頭牌 20여 명이 미리 기일보다 앞서 치발을 하였고, 당지의 牌頭가 치발한 墾民 열두 명을 데리고 와서 점검을 요청하였으므로, 각기 돌아가서 생업에 안주하면서 증명서가 발급되기를 기다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앞서서는 砂松背의 패두 曹起眞·申啓明을 불러왔더니, 역시 제 앞에서 “해당 지역의 조선 백성이 모두 치발을 원하고 있다”고 확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통수평의 조선 백성이 치발을 하게 될 때 미리 알리지 않은 것 때문에, 사람들이 무리를 모아 길에서 이들을 구타하는 소동을 벌였던 바, 이를 진압한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검토하여 처리를 하려던 중, 다시 엽련갑이 다음과 같이 전보로 보고해 왔습니다.
해당 지역의 조선 백성은 이미 안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엽련갑으로 하여금 신중하게 처리를 지시하였지만, 또한 응당 이것을 귀 아문에 자문으로 알려드려 할 것입니다. 삼가 번거롭더라도 검토해 보시고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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