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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민(流民)의 월경(越境) 문제로 인해 강계(疆界)의 조사를 청하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조선 流民이 월경하여 개간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지만, 조선 지방관은 越墾하는 백성들을 방안을 마련해 데려가지는 않고, 오히려 두만과 토문이 다른 강이라며 말을 꾸미고 강변하니, 청컨대 조선국왕에게 자문을 전달하여 관원을 파견해서 정해진 기간에 함께 강계를 조사함으로써 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도록 해주십시오(歷陳朝鮮流民越墾滋事情形, 該國地方官不將占墾朝鮮民設法收回, 反指豆滿土門爲兩江, 飾詞强辯, 請轉行該國王, 派員定期會勘疆界, 永息爭端).

 
  • 발신자吉林將軍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85년 7월 10일 (음) , 1885년 8월 19일
  • 문서번호1-3-1-17 (1042, 1915b-1918a)
7월 10일 길림장군 希元 등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내왔다.
邊務承辦處에서 다음과 같은 기안문서를 올렸습니다.
올해 6월 17일에 북양대신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委辦朝鮮商務分省補用道 陳樹棠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조선의 外部督辦 金允植을 만났는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조선의 북쪽 지역은 길림과 맞닿아 있는데 때로 중국인이 오가며 사람들을 쫓아내고 농가에 불을 질러 두만강 주변 상하 일대가 완전히 텅 비어 백성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울러 咸鏡北道節度使 趙秉稷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종성·무산·회녕 등의 府縣으로부터 연이어 받은 보고가 대략 비슷하오니, 방법을 강구해 금지령을 선포해주십시오.
 

이러한 사정에 근거해 청하니 이런 일을 조사·금지시켜 후환을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陳樹棠의 보고)를 받아보니, 吉林 邊界에서 중국인이 조선 백성을 쫓아내고 아울러 農幕을 불 지르고 부숴 버려 두만강 일대 백성이 살아가기 힘든 것 같습니다. 만일 조선 백성이 월경하여 경작을 한 것이라면 마땅히 서로 함께 조사하여 적절히 논의한 다음 남기든지 철수시키든지 해야지, 임의로 학대하면서 피해를 입혀서는 곤란합니다.
이상과 같은 북양대신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침 이 문제를 조사해서 처리하려는 사이에 6월 24일 총리아문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총리아문에서는) 북양대신의 다음과 같은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상의 일에 비추어보면 응당 귀 길림장군에게 소식을 전달하여 이른바 쫓아내고 불을 질렀다는 사정이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 분명히 조사·확인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조선 백성이 越江하여 개간했다면, 또한 마땅히 조선에도 알려 함께 상의한 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갑작스레 藩屬의 백성으로 하여금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게 만들어 이런 불평이 나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처리 상황을 자문으로 답장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자문들을 모두 받았습니다.
그런데 광서 7년 11월 14일에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전에 銘安과 吳大澂의 다음과 같은 상주를 받은 바 있다.
조선 빈민들이 吉林 邊地에서 경작을 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에게 증명서를 지급하고 소작료를 납부하도록 재가해주실 것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예부로 하여금 논의한 후 상주하게 하였는데, 이에 恩承 등의 다음과 같은 상주를 받았다.
접경하고 있는 각국이 경계를 넘어와 불법적으로 개간을 하거나 농막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금지령은 종래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조선 관원이 멋대로 [월간민에게] 허가증[執照]을 발급하여 백성이 몰래 강을 건너 개간하도록 한지 이미 몇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응당 조선국왕에게 그들을 모두 데리고 돌아가 방법을 강구하여 안치시키고 거듭 금지령을 밝히도록 지시해야 비로소 올바른 일 처리가 될 것입니다. 가령 증명서를 지급하고 소작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 외에 그들을 우리의 版圖에 예속시키려면 屯田의 경우처럼 官兵을 설치하되 아울러 길림장군에게 다시 계획을 마련하여 이익은 있고 해는 없는 방법을 추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銘安과 吳大澂에게 다시 상세하게 계획을 마련하여 상주하도록 하였더니, 곧바로 (명안 등이) 논의하여 그들의 호적 조사를 기다렸다가 각기 琿春과 敦化縣에 나누어 귀속시켜 中原의 백성으로 삼고, 길림 백성과 똑같이 대우하고자 한다는 답장을 받았다.
8년 8월 26일에 또한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예부에서 조선국왕의 자문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습속이 다르고 풍토가 같지 않으니, [황무지를] 차지하여 경작했다고 해서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킨다면 만에 하나 말썽을 일으킬까 심히 우려가 됩니다. 삼가 황상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조선유민을 본국에서 거두어들이게 하여 조선의 지방 문무 관원에게 넘겨준 다음 원적지로 돌려보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조선 백성을 다시 본국의 원래 속했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올바른 처리방법이다. 銘安과 吳大澂은 상황을 확인하고 최선을 다해 계획하되 유민들의 숫자가 많으니, 마땅히 조선 측과 함께 논의하여 적절하게 거두어가도록 하라.
또 11월 2일에 다음과 같은 상유를 받았습니다.
銘安과 吳大澂이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조선 빈민이 길림 변지를 개간한 일에 대해서 해당 지역에 가서 호구를 조사하고, 조선 함경도 소속 지방관에게 알려 간절하게 깨우쳐서 계속 거두어들여 적절하게 안무하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조선 유민은 그 수가 많고 정착했던 곳을 쉽사리 떠나려 하지 않는 데다가, 만약 한꺼번에 쫓아내어 경계 밖으로 몰아낸다면 조선 지방관이 안치할 방법이 없어 오히려 갈 곳을 잃고 떠돌게 될까 몹시 염려됩니다. 그래서 그 기한을 관대히 늘려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청합니다.
상주한 바가 실제 상황이라면 그렇게 처리해도 좋다. 아울러 예부로 하여금 조선국왕에게 알려 해당 지방관에게 미리 준비하여 적절하게 안치시킬 수 있도록 지시하게 하라. 1년 기한을 주어 모두 거두어들이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보살펴 주는 뜻을 보여주도록 하라.
그래서 곧바로 돈화현[試署知縣] 趙敦誠에게 지시를 내려 해당 빈민의 호구가 실제로 얼마인지 정확하게 조사하고, 조선지방관에게 간절하게 깨우쳐서 계속 거두어들이고 적절하게 위무하라고 조회를 보낸 바 있습니다.
뒤이어 광서 9년 가을 다시 조선의 西北經略使 魚允中을 통해 조선 지방관에게 지시하여 이 해 중추절까지를 기한으로 하여 월간 유민을 모두 본국으로 거두어들이라고 하였지만, 기한이 다 되도록 거두어들이지는 않고, 오히려 멋대로 침범하여 농지를 차지하고 두만강과 토문강이 다른 강이라는 억지를 꾸며 강변하면서 界碑를 탁본하여 勘界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광서 10년 10월에는 혼춘부도통 依克唐阿에게 자문을 보내 協領 德玉과 招墾局委員 賈元桂 등을 파견하여 공동감계를 하려 했으나, 조선 관원은 얼음과 눈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올 봄에 눈이 녹기를 기다려서 다시 조사를 진행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이 되자 다시 정부의 답변을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누차 해당 위원에게 지시하여 조회를 보내 공동감계를 독촉하라고 하였지만, 조선 관리는 일관되게 발뺌을 하면서 멋대로 늦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돈화현의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조선 유민은 날로 늘어나 차지하여 개간한 땅이 더욱 넓어지고, 또한 조금도 거리낌이 없어져 돈화현에 사는 安花·孫炳乾 양가의 집과 땅을 강제로 점거하였습니다. 또한 마바리꾼 한씨(韓姓)와 거민 沙永奎·李明新 등의 짐꾸러미와 永泰德 점포의 馬匹·布物을 몰래 훔쳐 茂山城內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물건주인인 마바리꾼 한씨 등이 그들을 추격하여 강까지 갔는데, 그들이 강에 이르자 월간 유민들은 자신들의 수가 많음을 믿고 이들을 구타해서 묶고 데려가 버렸습니다. 현에서 이 소식을 듣고 조사하여 이미 완결시켰던 것은 이미 올린 8월분의 撥冊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유민들은 또한 다시 南崗 일대가 조선 땅에 속한다고 하면서, 머지않아 비석을 세우고 성을 쌓을 것이며, 머지않아 우리 백성이 [중국식 변발을 버리고] 머리를 길러 귀순해야 할 것이라고 떠들었습니다. 이래서 이곳 거민들 가운데 힘센 사람은 더불어 다투려 하고, 약한 사람들은 모두 피해서 이주할 생각을 하는 등 백성이 당혹해하면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병사를 보내어 질서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혹시라도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그 결과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상과 같은 보고가 올라왔으므로 바로 혼춘부도통 依克唐阿에게 자문을 보내 상의하여 가까운 곳에서 병사들을 보내 질서를 유지하되, 다시 가서 침범하여 차지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 유민이 날로 늘어나고, 침범하는 땅도 날로 넓어지며, 쫓아내도 가지 않고 금지해도 듣지 않아, 담당부대의 장교들이 초가집 몇 채를 불태워 부수고 아울러 새로 월간해 온 사람들을 채찍으로 때려 처벌하니, 그때야 비로소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부대를 원 근무지로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나 조선 관리는 유민이 말썽을 일으킨 것은 아예 제쳐두고 마침내 우리병사들이 강을 따라 농막을 불태우고 백성을 쫓아냈다는 것을 구실로 선동하니,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방법이 응당 이래야 합니까? “번속의 백성은 응당 보살피고 아껴줌으로써 돌아갈 곳을 잃고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는 陳樹棠 道臺의 말은 물론 正論입니다. 그렇지만 이쪽에서는 회유하려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오히려 반항하니, 만약 엄격하게 금지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침범하여 차지하는 일이 언제 끝이 나겠습니까? 하물며 이 유민들은 수가 많고, 조선에서는 이들을 중국으로 귀화시켜 중국의 政敎를 받들도록 하지도 않으니, 어찌 월간 유민을 그대로 놔두어 앉아서 영토가 날마다 침식되는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이런 도리는 없습니다.
요컨대, 요컨대 조선국왕이 상유를 받은 다음 결코 방법을 강구하여 유민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지금까지 질질 끌어왔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월간민이 더욱 멋대로 침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문제를 일으키는데 일찌감치 이에 대처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런 일이 확산되어 [나중에 대책을] 도모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응당 북양대신께 자문을 보내 요청하니, 조선국왕에게 알려 신속하게 인원을 파견하여 시기를 정하고 공동감계를 하게 되면, 그 땅이 길림에 속하는지 조선에 속하는지 가리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민을 거두어들이든지 아니면 중국으로 귀속시키든지 조치를 취함으로써 변민이 각기 생업에 안주하고 영원히 다툴 거리가 없게 하여 藩屬을 보살펴 주는 뜻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북양대신께 자문을 보내 조선국왕에게 자문을 전해줄 것을 요청하며, 아울러 총리아문과 예부에 대해서도 자문으로 알렸는데, 응당 귀 총리아문에도 자문으로 답장을 드리니 번거롭더라도 참고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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