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기사명
자료명
작성·수신·발신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cj.k_0001_0020_0030_033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월경민(越境民) 이동길(李東吉)을 체포, 조사하고 조선에 넘겨 준 일에 관한 길림장군(吉林將軍)의 상주(上奏)

조선 월경민 이동길을 체포하여 조선 경원부에 수감하도록 넘겼으며, 두만강 주변에서 그가 匪徒를 끌어들인 일은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緝獲朝鮮逃犯李東吉解交該國慶源府收禁, 沿江査無該犯招引匪類情事).

 
  • 발신자吉林將軍 奕榕
  • 수신자同治帝
  • 날짜1870년 12월 10일 (음) , 1871년 1월 30일
  • 문서번호1-2-3-33(112, 145b-147b)
12월 10일, 軍機處에서 署吉林將軍 奕榕이 올린 다음과 같은 상주문을 보내왔습니다.
유지에 따라 조선의 범인 李東吉과 그 부인을 체포하여, 함께 조선으로 압송하여 감금시키도록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강변 일대를 조사하였는데, 그 범인이 匪徒를 불러들인 일은 실제 없었습니다. 삼가 주접을 갖추어 답하오니,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奴才 毓福은 올해 10월 8일, 軍機大臣의 다음과 같은 廷寄를 전달받았습니다.
同治 9년 9월 29일, 다음과 같은 上諭를 받았습니다.

 
盛京禮部에서 보내온 조선국왕의 咨文을 받아 禮部에서 올린 상주문을 받았다.
 

이상.
奴才는 삼가 무릎 꿇고 유지를 읽은 다음, 폐하의 사려 깊은 마음과 변방을 안정시키시려는 지극한 뜻을 우러러 볼 수 있었습니다. 奴才 毓福은 이에 한편으로는 琿春協領 訥穆錦에게 비밀리에 지시하여, 서둘러 삼가 유지에 따라 조선의 도망자 李東吉을 확실하게 조사하여, 만약 琿春 관할 경내에 숨어 있다면 곧바로 탐문하여 체포하게 하였으며, 아울러 그가 불러들인 의지할 데 없는 匪徒가 몇 명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조사하여, 전부 잡아들인 다음 朝鮮으로 넘겨주어 처벌받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힘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시에 비밀리에 관원을 파견하여, 관할 경내에서 수시로 충실하게 단속하여, 朝鮮의 匪徒가 다시는 몰래 넘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다른 한편으로는 奴才 奕榕에게 알려, 유지의 내용을 삼가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奴才 등은 11월 19일, 琿春協領 訥穆錦이 올린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습니다.
비밀지시를 받들어, 儘先協領・花翎佐領 文福과 함께 직접 琿春 주변의 각지로 가서 엄밀하게 단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0월 23일 未時에 琿春 서남쪽의 土門江霍隆溝에서 李氏 성을 가진 조선 慶源 백성을 잡았는데, 이름이 李靑山이라고 하였으며, 중국 복장을 하고 그곳에 숨어 지내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체포하였습니다. 그 범인을 심문하여 다음과 같은 진술을 받았습니다.

 
李靑山이 곧 李東吉이며, 나이는 58세로 조선 慶源府 백성입니다. 咸豊 3년에 본국 慶源府에서 일을 저지르고 관병에 체포될까 두려워, 李靑山으로 이름을 바꾸고 두만강 동쪽으로 몰래 넘어가 각지를 유랑하였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李氏 성을 가진 族弟가 제 처 蔡 氏를 데리고 몰래 강을 넘어와 각처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나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族弟와 함께 둘이서 머리를 변발로 바꾸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저는 부인 蔡 氏를 데리고 토문강 남쪽의 霍隆溝에 숨어서, 2晌의 토지를 일구며 움집을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본명은 틀림없이 李東吉李靑山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 분명합니다. 이 밖에는 결코 의지할 곳 없는 匪徒를 불러모은 적이 없으며, 族弟 李 氏는 이미 러시아 경계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올해 10월에 중국 관병에 의하여 부인 蔡 氏와 함께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도망 백성이 어느 곳에서 경계를 넘어가 러시아로 달아나는지는 저희들도 알지 못합니다.
 

살펴보건대, 범인이 진술한 그의 族弟 李 氏는 이미 러시아 경계로 넘어갔기 때문에 체포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李東吉의 부인 蔡 氏를 심문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범인의 확실한 진술만 抄錄하고, 그의 부인 蔡 氏와 함께 照會를 갖추어 알림으로써, 佐領 溫崇阿와 驍騎校 永魁 등에게 넘겨주어, 윤10월 20일에 병사들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압송시키고, 慶源府 관원을 직접 만나 감금시키도록 넘겨주었습니다. 아울러 朝鮮에 요구하여 照會를 받았다는 증명서를 받아와 보관하였습니다. 또한 査界雲騎尉 成貴에게 “병사들을 데리고 霍隆溝 강변 일대로 가서, 이동길朝鮮의 도망자를 불러들여 각처에서 숨겨준 일이 있는지 조사하고, 범인이 지은 움집과 경작한 2晌의 토지는 모두 불태우고 평평하게 갈아엎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곧이어 査界雲騎尉 成貴가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지시에 따라서 곧바로 霍隆溝의 산 속 깊은 곳과 강변 일대를 엄밀하게 수사하였는데, 정말로 범인 李東吉이 불러들인 匪徒는 없었습니다. 오직 李東吉이 지은 움집과 경작한 토지만 전부 불태우고 평평하게 갈아엎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정을 琿春協領 訥穆錦의 보고를 받아 (寧古塔副都統이) 전달해 왔습니다.
奴才 등이 다시 살펴보았는데, 琿春協領은 이미 조선의 도망자 李東吉과 그의 부인을 체포하여 조선慶源府의 관원에게 감금시키도록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범인이 지은 움집과 경작한 토지도 모두 불태우고 갈아엎었습니다. 아울러 강변 일대를 분명하게 조사하였는데, 정말로 범인 李東吉이 불러들인 匪徒는 없었습니다. 체포한 범인 李東吉이 진술한 바에 의하면, 그의 族弟 李 氏는 이미 러시아 경계로 넘어갔으므로, 더 이상 그를 체포하려 할 필요가 없다고 청하는 것 외에, 지금 비록 琿春協領이 강변 일대에 李東吉이 불러들인 匪徒가 숨어 있는 일은 없다고 보고했지만, 혹시라도 뒤이어 넘어오는 무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마땅히 충실하게 단속하여 변방을 안정시키려는 조정의 지극한 뜻에 부응해야 할 것입니다. 琿春協領 訥穆錦과 寧古塔副都統 烏勒興阿에게 지시하여, 관할 경내 강변 각처에 있는 변경 초소의 文武官員과 兵役들에게 엄격히 지시하여, 수시로 엄밀하게 단속하여 조선 匪徒가 다시는 도망쳐 숨어들지 못하게 하여, 변경 방어를 바로잡고 경계를 분명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도망자 李東吉의 진술을 抄錄하여 禮部와 총리아문으로 咨文을 보내 알리고, 아울러 軍機處에 보고하여 검토를 받는 것 외에, 마땅히 奴才 등이 유지에 따라 琿春協領에게 비밀리에 지시하여 조선의 도망자 李東吉과 그의 부인을 사로잡아 함께 조선으로 넘겨주어 감금시켰으며, 아울러 강변 일대를 조사해보니 범인 李東吉이 불러들인 匪徒는 실제 없었고, 또한 관할 변경 초소에 지시하여 엄격하게 도망자들을 단속하도록 한 각각의 사정을, 마땅히 삼가 주접을 갖추어 상주해야 할 것입니다. 엎드려 삼가 兩宮皇太后와 皇上께서 열람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이에 삼가 주를 올립니다.
同治 9년 12월 9일, 군기대신이 다음과 같은 유지를 받았습니다.
해당 아문에 알리라.
이상.
 
이름
奕榕 , 李東吉 , 毓福 , 毓福 , 訥穆錦 , 李東吉 , 奕榕 , 訥穆錦 , 文福 , 李靑山 , 李靑山 , 李東吉 , 李靑山 , 李東吉 , 李靑山 , 李東吉 , 溫崇阿 , 永魁 , 成貴 , 이동길 , 成貴 , 李東吉 , 李東吉 , 訥穆錦 , 李東吉 , 李東吉 , 李東吉 , 李東吉 , 訥穆錦 , 烏勒興阿 , 李東吉 , 李東吉 , 李東吉
지명
조선 , 조선 , 조선 , 琿春 , 朝鮮 , 朝鮮 , 琿春 , 琿春 , 土門江 , 霍隆溝 , 慶源府 , 두만강 , 토문강 , 霍隆溝 , 러시아 , 조선 , 러시아 , 러시아 , 조선 , 朝鮮 , 霍隆溝 , 朝鮮 , 霍隆溝 , 조선 , 조선 , 慶源府 , 러시아 , 조선 , 조선 , 조선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