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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중일한관계사료

아국(俄國)이 조선의 월경민(越境民)을 갑자(匣子) 지방으로 이주시켰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러시아인이 조선의 월경민을 匣子지방으로 이주시켰습니다(俄人移朝鮮逃民於匣子地方).
  • 발신자
    吉林將軍 奕榕
  • 수신자
    總理衙門
  • 날짜
    1871년 11월 19일 (음)(同治十年十一月十九日) , 1871년 12월 30일 (同治十年十一月十九日)
  • 문서번호
    1-2-2-08(191, 248a-249b)
11월 19일, 吉林將軍 奕榕이 다음과 같은 문서를 보냈습니다.
올해 10월 10일, 三姓副都統 勝安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전에 將軍衙門의 다음과 같은 咨文을 받았습니다.
조사컨대, 조선의 월경난민에 관한 사안은 각처에 엄히 지시하여 전력으로 수사하되, 앞에서는 따르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지시를 어기거나, 한번 보고한 것을 책임을 메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땅히 소속 邊防의 각 초소 순찰관원에게 엄격히 지시하여, 엄밀하게 탐방을 하여, 만일 이러한 월경 조선 난민이 있다면 확인한 다음 신속히 알림으로써, 검토하여 전달할 수 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9월 30일, 黑河口 초소의 巡員 驍騎校 斐凌阿의 다음과 같은 조사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번 달 16일에 巡哨弁兵이 초소로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黑河阿穆 지방에서 러시아 오랑캐의 윤선 한 척을 보았습니다. 곧이어 大船 1척이 뒤따랐는데, 남녀노소의 많은 사람들을 싣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정박했는데, 옷차림은 대부분 러시아 모습이었지만 언어는 러시아와 같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인에게 탐문해보니, “이들은 모두 고려인이며, 현재 러시아로 와서 이미 머리를 자르고 옷을 바꿔 입었다. 紅土崖 大官의 명령으로 배로 실어 匣子 지역으로 보내 집을 짓고 거주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초소관원 斐凌阿徐爾固의 러시아 관원을 찾아갔는데, 하는 말이 巡哨弁兵이 탐문한 것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곧 해당 초소에서는 다시 領催 藍翎委官 哈豐阿를 파견하여 병사를 데리고 匣子지역으로 가서 밀탐하게 했는데,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명령을 받고 匣子의 동쪽 龍江의 北岸로 가서 보니까, 새롭게 지은 오랑캐 건물 51채가 있었고,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 난민으로 다들 머리를 자르고 러시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조금 漢語가 통하는 이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실로 조선의 嶺北 6邑은 누차 재해를 입어 기아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살기 위해 정말 부득이 하게 친부모와 분묘를 버리고, 우리들 남자 246명, 부녀 185명이 어쩔 수 없이 모여 국경을 넘어 목숨을 건지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紅土崖러시아 관원이 우리를 받아들여 돌봐주었고, 머리를 자르고 옷을 바꿔 입게 했는데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윤선을 이용해 우리들을 태우고 이곳에 보내 집을 짓고 정착하게 하였습니다. 우연히 大淸國의 貴官께서 이곳에 오셨으니, 저희들은 매우 기쁘면서도 또한 大國에서 조선을 가까운 이웃나라로 여기시는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감격을 잊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 이야기하였는데 그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한편 조선인이 문서 한 통을 전해 주었는데, 초소로 가지고 돌아와서 보고하면서 함께 올립니다.
본 (三姓副都統) 아문에서 자세히 살펴보건대, 조선에서 연이어 기근이 생기자 난민들은 곤궁해도 호소할 곳이 없게 되어 월경하여 목숨을 건지고자 하였습니다. 러시아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돌보아 준 것은 좋은 뜻이지만, 어째서 해당 백성들에게 머리를 자르고 옷을 바꿔 입게 했는지,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없으며 도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응당 黑河 북안, 匣子 동쪽 지역을 탐색하여 알아낸 현재 조선 백성이 거주하는 건물과 인원의 수 및 조선인이 전달한 문서를 모두 將軍衙門으로 咨文으로 알려 검토해서 처리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보고를 받았으므로 吉林將軍이) 조선 난민이 보낸 문서를 살펴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조선민들이 居沙末 老爺께 삼가 글을 올립니다. 大國에서 보내신 문서가 우연히 이곳에 도착했기에 손을 씻고 봉투를 열어보니 기쁨에 (글을 읽는) 눈시울이 먼저 감동되었습니다. 東國은 비록 예의의 나라라고 일컬어지지만 嶺北 6邑의 백성들은 운수가 불행하여 5, 6년 사이 역병이 빈번했고 사나운 호랑이가 극성을 부렸으며, 게다가 연달아 큰 흉년이 발생하였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친척과 분묘를 버리고 목숨을 건지고자 하였습니다. 강을 건너 러시아에 도착하였는데, 땅을 정해주고 식량을 제공해주어 일시나마 근근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역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기 때문입니다. 大淸國은 조선에 대해 가까운 이웃의 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러한 상황을 아시고 어찌 슬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본 (吉林將軍) 아문에서 살펴보건대, 본래 公事와 관계된 것이 아니고, 또 그 문장이 대체로 통하지 않아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초소관병이 조선인의 문서를 받아서 전달했고, 해당 副都統이 다시 상세히 검토한 후 咨文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咨文이 도착하였는데, 마땅히 본 아문에 등록하여 보존하여 남겨두기는 하겠지만, 咨文에 근거하여 그대로 보고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세히 조사해보건대, 전에 러시아인들이 조선 난민을 綏芬으로 실어 보낼 때, 琿春協領이 그들을 돌려보내라는 照會를 여러 차례 보낸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러시아인의 우두머리는 너희들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답장을 보냈고, 다시 따졌지만 응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 난민들은 중국에 속한 지역을 통해 몰래 넘어간 것이 아니면,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匣子지역은 러시아에 속하며, 三姓(副都統衙門)의 관할 지역이 아니지만, 그래도 三姓과 인접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사실에 근거해서 제대로 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세한 조사 내용을 제대로 하지도 않아, (이쪽에서) 그때그때 전달받는 문서로는 상황을 파악하기에 곤란하니, (저쪽에서) 단지 한번 보고하여 일을 끝내는 것은 실로 제대로 된 일 처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三姓副都統衙門에 답장 咨文을 보내, 이후 외국과 관계된 사건을 접하면 힘써 자세히 헤아리고 검토해야만 신중함을 드러낼 수 있고, 대충 책임을 면하고자 보고서 한 통으로 일을 마무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알리는 외에, 마땅히 사실에 근거하여 총리아문에 보고하오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색인어
이름
奕榕, 勝安, 斐凌阿, 斐凌阿, 哈豐阿, 居沙末
지명
조선, 黑河, 黑河, 阿穆,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 匣子, 徐爾固, 匣子, 匣子, 龍江, 조선, 紅土崖, 러시아, 조선, 조선, 러시아, 黑河, 匣子, 러시아, 조선, 綏芬, 중국, 匣子,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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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俄國)이 조선의 월경민(越境民)을 갑자(匣子) 지방으로 이주시켰다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문서 자료번호 : cj.k_0001_0020_0020_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