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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서신을 보내 서양 각국과 통상하도록 권고하였다는 군기처(軍機處)의 상주(上奏)

이미 유지에 따라 조선에 서신을 보내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고 통상을 하도록 비밀리에 권하였음을 상주합니다(具奏已遵旨繕函密勸朝鮮與西洋各國立約通商).

 
  • 발신자軍機處
  • 수신자總理衙門
  • 날짜1879년 7월 17일 (음) , 1879년 9월 3일
  • 문서번호2-1-1-05 (312, 373a-379a)
七月十七日, 軍機處交出直隸總督李鴻章摺稱:

奏爲遵旨繕函密勸朝鮮, 與泰西各國立約通商, 鈔稿進呈, 恭摺仰祈聖鑒事. 竊臣承准
軍機大臣密寄:
 七月初四日, 奉上諭:
  總理各國事務衙門奏,
   泰西各國欲與朝鮮通商, 事關大局, 縷晰密陳. 等語.
  等因.
 欽此.
仰見聖謨廣運, 眷念東藩, 指示機宜, 無微不至, 欽佩莫名. 伏念朝鮮孤峙海隅, 向不願與遠人交接, 英、法、美諸國, 屢爲所拒. 前歲日本脅以兵威, 始與立約通商, 猜短未泯, 積有違言. 日本知其孤立無援, 倘一且伺隙思逞, 俄人亦將隱啓雄圖, 英、德、法、美諸國, 復羣起而議其后, 非惟朝鮮之大患, 抑亦中國之隱憂. 本年五月間, 前福建撫臣丁日昌所陳各節, 爲朝鮮計, 實爲中國計. 惟朝鮮地僻俗儉, 囿於風氣, 彼於近日海外情形, 茫乎未有聞見. 日本最與相近, 交涉數年, 尙多隔閡. 若驟語以遠交之利, 恐彼國君臣成見未融, 勢難相強. 此臣所以久欲設法, 而不能不躊躇審顧者也.
至朝鮮原任太師李裕元, 自光緒元年秋奉使來京, 是冬十二月間, 事竣回國, 道出永平, 屬該知府遊智開, 轉寄一函, 道其仰慕. 臣以古者鄰國相交, 其鄕大夫不廢贈答之禮, 矧朝鮮久列藩服, 誼同一家, 現値時事多艱, 臣職在通商, 既不能不廣示牢籠, 稍通遐邇之氣, 復不能不代爲籌畫, 俾免機隉之虞. 因於復書略著外交微旨, 嗣后間歲每一通函, 於備禦俄人、應付日本之方, 常爲道及. 本年春間, 李裕元來書, 頗陳日本非禮侵侮, 臣尙未及裁答, 適蒙聖慈垂訓, 頃已專泐復函, 作爲微臣之意, 反復開導, 加封遞至盛京將軍衙門, 請兼署將軍臣歧元, 妥速轉遞.
李裕元現雖致仕, 據稱:“係其國王之叔, 久任元輔, 尙得主持大政. 亦頗曉暢時務.” 如能因此廣諮博議, 未雨綢繆, 庶於大局有裨. 惟泰西各國立約, 如傳教內地, 及販運鴉片煙入境, 爲該國上下所深惡, 恐其因此疑畏, 是以書中豫爲剖晰, 俾毋過慮. 將來朝鮮若果定議, 事務正多, 該國於約章利病, 素未深究, 立約之時, 或不能不代爲參酌. 朝鮮臣民未諳洋情, 驟與西人雜處, 欲其指注悉協, 永無瑕釁, 亦尙難保. 仍應由中國隨時隨事妥爲調處, 庶幾柔遠綏邊, 較有實際. 除俟接李裕元復書再行陳奏外, 謹將此次來往函稿, 鈔呈禦覽, 所有遵旨繕函密勸朝鮮, 與泰西各國立約通商緣由, 恭摺由驛密陳, 伏乞皇太后、皇上聖鑒訓示. 謹奏.

光緒五年七月十六日, 軍機大臣奉旨:
 該衙門知道, 單併發.
欽此.
 
별지 : 조선의 原任太師李裕元이 北洋大臣李鴻章에게 보낸 서신(朝鮮原任太師李裕元致北洋大臣李鴻章函)
 
照錄「抄摺」:謹照鈔與朝鮮使臣李裕元來往函稿二件, 恭呈禦覽.

1. 「朝鮮原任太師李裕元上年十二月十五日來函」[생략. 앞 번호의 첨부문서 참조]조선에게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어 통상할 것을 권하는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별지 : 北洋大臣李鴻章이 조선의 李裕元에게 보낸 답장(北洋大臣李鴻章覆朝鮮李裕元函)
 
2. 「光緒五年七月初九日覆函」[생략. 앞 번호의 첨부문서 참조]조선에게 서양 각국과 조약을 맺어 통상할 것을 권하는 이홍장(李鴻章)의 문서

光緒五年七月十六日, 軍機大臣奉旨:
 覽.
欽此.
 
이름
李鴻章 , 丁日昌 , 李裕元 , 遊智開 , 李裕元 , 歧元 , 李裕元 , 李裕元 , 李裕元 , 李裕元
지명
朝鮮 , 朝鮮 , 日本 , 朝鮮 , 中國 , 朝鮮 , 中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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