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지역명
제목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유적지 현황

 
 

2) 유적지 현황

 

 

 (1) 수크 데베

 

암각화들은 알라야산맥과 페르간산맥 접점 지역, 우즈겐 시 북동쪽으로 40㎞, 살람 알리크 마을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좌표: 북위 40º49'20,0″, 동경 73º45'52,6″, 해발 – 3,194m.). 지형은 좁고 험난한 길들이 많이 나 있는 높은 산봉우리들로 이어진 고원이다. 암각화 유적지의 동북쪽에는 페르간산맥과 알라야산맥이 남쪽으로 높게 솟아 있다. 암각화 유적지는 구릉과 산 사면들로 인해 수크 데베, 바이체체케이, 주레크, 카므이르 아타 등으로 나뉜다. 수크 데베 유적지는 같은 이름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우즈겐산맥의 서북쪽 지맥이다. 수크 데베 정상 양쪽 측면에는 다섯 개의 구릉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2002년에 살람 알리크 마을 주민들이 수크 데베 고산지대에 그려진 바위그림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이 유적지를 조사하고 또 연구하기 위해 2002년도에 대규모의 현장 조사 작업이 이루어졌다. 바로 그해에 이곳을 처음으로 조사한 연구자들은 이 유적에 700여 점 이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수크 데베 산맥

2003~2005년에 걸쳐 К.Zh. 말타에프가 이 유적을 최초로 조사하였고(Maltaev 외. 2002), 그 후에는 V. 아만바에바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이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서 이 유적지에 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2011년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학술조사단이 이 유적군을 조사하였다. 암각화들은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있는 수크 데베 구릉 사면에 분포해 있다. 그림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에 남아 있었다. 이 그림들은 모두 쪼기 기법으로 그려졌다. 그어서 그린 그림들도 가끔씩 나타난다. 조사 작업 중에 우리는 바위에 그려진 60점의 그림을 확인하였으며, 그중 10점은 채록하였다. 주요 주제는 동물 형상, 유사 사람 형상, 의례 장면이다. 어떤 암면에는 가면과 바퀴 형상이 그려져 있으며, 사냥 장면, 지그재그 모양의 선, 낙타를 타고 있는 사람 형상도 살필 수 있고 또 가끔은 아랍 문자도 확인할 수 있었다.
К.Zh. 말타에프는 수크 데베 암각화의 대부분을 청동기시대에서 중세기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Asankanov. Maltaev, Adilbaev, 2006). 다른 연구자들은 초기 철기시대에서 중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였다(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전체적으로 이 암각화들은 좀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2) 바이체체케이

 

바이체체케이는 우즈겐 시에서 동북쪽, 살람 알리크 마을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좌표: 북위 40º49'09,3″, 동경 73º45'16,2″, 해발 ~ 2797m.). 유적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현지에서 쓰는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이 유적은 2002년 К. 말타에프를 단장으로 한 오쉬 국립대학교 조사단에서 발견·조사하였다(Asankanov, Maltaev, Tulebaev 2007). 조사 과정에서 유적지의 현황을 기록하고, 형상을 채록하였으며, 이 유적의 연대를 추정하였다. 그에 이어 2009년에는 유네스코의 조사 지원을 받아 V. 아만바에바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은 바이체체케이와 그 인접 지역을 답사하였다(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에 의해 조사 연구가 이루어졌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바이체체케이 남부 지역에 분포하는 암각화들을 파악하고 또 형상들을 채록하였다. 바이체체케이 유적의 암각화 가운데는 주로 사람과 비슷한 모양의 형상(버섯 모양의 사람 형상), 동물 형상(염소, 말, 사슴)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다양한 기호, 바퀴, 말이 끄는 수레 형상들이 나타난다. 이런 그림들과 유사한 형상들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중북부, 남부시베리아의 암각화 가운데서도 살필 수 있다. 이런 유형의 형상들은 청동기에서 중세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연구자들은 이 유적군을 제작집단의 성소로 추정하였다.
 

 (3) 주레크

 

유적은 바이체체케이 암각화 소재지에서 서북쪽, 수크 데베에서 서쪽에 위치해 있다. K.Zh. 말타에프가 이끄는 조사단이 이 유적지를 조사하였다(Asankanov, Maltaev, Adilbaev, 2006). 2011년에는 이 암각화유적을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철저히 조사하였는데, 모두 11개의 암면에서 안트로포모르프, 동물 형상, 기호, 탐가 등의 형상을 확인하였다.
쪼기로 그린 염소 형상이 눈길을 끌었다 주레크의 암각화 속의 형상들은 여러 시기에 걸쳐서 그려졌다.
주레크 암각화

 

 (4) 카므이르 아타

 

카므이르 아타 암각화들은 페르간산맥의 서쪽, 즉 바이체체케이, 주레크, 수크 데베 암각화군 유적지로부터 북쪽에 위치해 있다. 카므이르 아타 유적지는 해발 3,200m에 위치해 있다. 그림들은 쪼기로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그림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К. 말타에프를 중심으로 한 조사단이 이 암각화 유적을 처음으로 조사 연구하였다(Maltaev, 2006).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이 유적을 새롭게 조사하였다.
카므이르 아타 유적에는 동물, 사람, 기하학적 도형 등의 형상이 나타난다.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산양 형상이다. 이 형상들은 주로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이런 주제와 양식의 그림은 키르기스스탄과 중앙아시아의 철기시대와 중세시대의 유적들에서 많이 살필 수 있다(Khudjakov, Tabaldiev, 1999). 가운데에 점이 있는 동그라미에 갈퀴 모양을 한, 세 개의 가지 가운데 함께 구성된 종족 표시의 탐가(기호)는 특별히 흥미롭다. 이와 유사한 탐가를 술라이만 토 유적지에서도 살필 수 있다.
 

 (5) 아라방 사이

 

잘 알려지지 않고 연구가 거의 되지 않은 암각화 유적들 중 하나로서, 카라 코크투 마을 변경에서 서북쪽으로 400m., 노오카트 중심지구로부터 동북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노오카트 구는 알라야산맥 북쪽 지역의 산기슭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지형은 산구릉과 산간 계곡들이 있으며 2개의 계류, 즉 칠리 사이, 키르기즈 아타가 이 지역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바위그림은 아라방 사이강 오른쪽, 아라방 사이 길 입구, 강변 오른쪽 절벽을 따라 2㎞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좌표: 북위 40º13'37,3″, 동경 72º31'43,4″, 해발1,119m).
아라방 사이 계곡을 건너는 장면

바위그림들은 강의 수면에서 위로 2~5m지점에 그려져 있다. 이 암각화들은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단지 몇몇 주제들이 학술지에 언급되었을 뿐이다[История Киргизской ССР(키르기스 연방공화국 역사), 1984; Dzhumagulov 1982].
이 유적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2008년에 조사되었다. 그 때 이 유적지의 현황을 파악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자료들 가운데 일부가 발표되었다(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이 유적을 재조사하였다. 이 조사를 통하여 파악된 모든 암면의 형상들은 정리되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채록하였다. 암각화 가운데 일부는 자연적 요인과 더불어 방문객들에 의해 훼손되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이 암각화의 중심 주제는 유사 사람 형상 및 동물 형상이며, 그에 더하여 드물기는 하지만 탐가와 중세시대 후기의 문자 등이 새겨져 있었다. 이 암각화 유적에서 악기 형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키르기스스탄 내에서 처음이며, 바로 그 점이 이 유적지를 특별히 주목하게 하였다.
코무즈나 두타르 또는 루보크라고 불리는 이와 유사한 악기들이 지금도 내륙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연주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말과 새 형상이다. 말은 작은 머리, 완만하게 굽은 목, 밑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길고 야윈 다리, 짧은 꼬리, 큰 몸통 등의 신체 세부를 보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주제을수로투 타쉬, 아라방 절벽에 그려진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는데, 이러한 형상들은 기원전 마지막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Zadneprovsky, 1962; Bernstam, 1997; Маsson 1948). 아라방 사이 암각화를 연구하는 S. P. 네스테로프는 내륙 아시아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와 흉노 시대에 동쪽으로 말을 공급하였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Nesterov, 1990). 현재 고대 키르기스인의 후예들은 말을 숭배하고, 말 번식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라방 사이 말

이 유적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로는 새를 들 수 있는데, 새의 꼬리 끝은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으며, 몸통에는 점들이 찍혀져 있다. 이 새(수탉)는 그 시대의 지역 주민들이 숭배하는 형상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크 시대 유적들에서 기원전 6~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수탉 형상들이 발견되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Ketmen'-Tjube, 1977). 이 암각화 속의 형상들은 청동기시대에서 중세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6) 칠리 사이

 

이 유적은 오쉬 시에서 서남쪽으로 42㎞, 노오카트 시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알라야산맥 북부 지역, 계곡 입구의 칠리 사이 강 왼쪽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 경계 지역은 강으로 구분되어 있고, 바위들을 두 개로 나누어 놓았는데, 그 바위 표면에는 여러 시기에 걸쳐 그려진 형상들이 남아 있다. 그 형상들은 절벽의 동쪽 부분, 지표면에서 2~5m높이에 그려져 있다. 1940~1990년 사이에 고고학자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유적을 조사하였다(Dzhumagulov, 1982).
칠리 사이 암각화 유적 전경

L. 주수파크마토프를 단장으로 하는 오쉬 국립대학교의 연구원들이 1992년에 이 유적을 조사하였다(Zhusupakmatov, 1992). 그 후 2009년에는 B. 아만바에바가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물을 발표하였다(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이 유적에서 조사를 펼쳤으며, 이것이 가장 최근에 진행된 조사다. 유감스럽게도 자연·기후적인 요인과 강 주변의 도로 확장 공사 등의 인위적인 요인으로 인해 유적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암각화 유적지에서 2㎞ 떨어진 곳에는 여러 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사하바 무덤들이 있다. 이곳은 지금도 현지 주민들이 방문하는 성소의 역할을 한다. 민간 전설을 통해서 보면, 이 무덤은 이슬람 문화의 유입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교는 살아 있는 존재를 그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암각화 유적지의 형상들은 고의적으로 덧칠된 물감에 의해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은 몇 점의 형상 촬영과 채록을 하였다.
이전에 발간된 조사 자료들을 보면, 이곳에서 채록한 형상들은 대략 62~87점 정도다. 그 가운데는 태양 모양의 머리를 지닌 사람, 버섯 모양의 사람, 안트로포모르프, 바퀴 모양의 사람 형상 등이 그려져 있으며, 모두쪼기로 그린 산양 주제의 형상들과 다양한 모양의 지그재그 선들이 나타난다. 암각화는 쪼기 기법으로 그렸으며, 가끔은 그어서 그린 형상도 살필 수 있다(Zhusupakmatov 1992; 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칠리 사이 암각화 유적지에서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은 2011년도에 가운데에 점 두 개가 찍힌, 빗살이 달린 바퀴 모양의 태양 기호를 하나 채록하였다. 그런데 그 형상의 아랫부분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이와 유사한 형상을 으이스이크 쿨의 오르노크나 카라 오이(Akmatov 2008), 잘트이라크 타쉬(Tashbayeva, Frankfort, 2005), 사이말르이 타쉬(Mart’inov, Marijashev, Abetekov, 1992), 돌란 알르이(카자흐스탄)(Наскальное искусство Казахстана(『카자흐스탄 바위 그림』, 2010) 등의 암각화 유적에서도 살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유형의 태양 기호는 유라시아 청동기시대의 여러 문화 속으로 널리 전파되었으며, 태양 숭배 사상의 형성과도 관련 되어 있다. 아마도 초기의 태양 기호 주제는 기원전 4,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유적들에서 나타났으며, 북방 민족들이 거주하는 계곡까지 전파되었을 것이다(Formozov 1980).
도식화된 산양 형상과 기호들, 탐가(기호) 등의 주제들도 살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형상들이 많이 훼손되어서 채록할 수 없었다. L. 주수파크마토프는 칠리 사이 암각화들은 그 지역의 고대 주민들이 천체를 관찰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는 해석을 제시하였다(Zhusupakmatov, 1992).
다른 암각화 유적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형상들은 사이말르이 타쉬, 이스이크 쿨, 카자흐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고대 암각화들과 양식상으로 유사하다. 이 그림들은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주제들은 초기 철기시대와 중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분류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칠리 사이 유적을 가장 오래된 성소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Zhusupakmatov, 1992; 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7) 수로투 타쉬

 

다양한 주제들의 형상들이 그려진 암각화 유적은 오쉬 시 근처의 크이즈일 크이쉬타크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9㎞ 떨어진, 페르간 분지의 동남부 지역의 수로투 타쉬 산에 위치하고 있다 (좌표: 북위40º34'44,2˝, 동경 72º43'54,4˝, 해발 1,002m).
1939년 볼쇼이 페르간 운하를 건설할 때 M.E. 마송이 이끄는 고고 조사단이 바위 표면을 쪼아서 그린 이 형상들을 채록하고 또 암면의 상황을 기술하였다(Маssоn, 1940). 그 후 U.A. 자드네프로프스키와 V. 아만바에바가 이 암각화를 조사하였다(Zadneprovsky 1962; Amanbaeva, Sulaimanova, Zholdoshev, 2009).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이 유적을 재조사하였다.
암각화들은 산의 동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형상은 단독으로 서 있는 말들이다. 형상들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표면에 새겨져 있다. 윤곽을 쪼아서 그린 형상, 쪼기로 제작한 형상들이 동록으로 덮여 있다. 말 형상은 길고 가는 다리, 크지 않은 머리에 긴 목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꼬리가 가늘고 또 짧게 그려진 것도 있다. 그림들의 크기는 각각 다르다. 유사한 그림들이 아라방 사이 유적과 아라방 절벽의 암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그림들은 기원전 1,000년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암각화들 중에서 사슴을 주제로 한, 두 개의 형상이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형상들은 사슴의 옆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리가 배 밑으로 굽어 있으며, 뿔이 뒤로 젖혀져 있다. 유사한 형상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그림들은 초기 유목민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유사 사람 형상과 맹수 형상도 보인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상은 말인데, 학계에서는 그것을 ‘다방 말’로 칭한다.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수로투 타쉬의 말 형상에 대해, 페르간 계곡에는 말 숭배 사상이 퍼져 있었으며, 지역 주민들이 말을 번식시켰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Zadneprovsky, 1962; Masson, 1948; Nesterov, 1990).
이 유적들은 다방 국(國)이 존재했던 시기의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다방인들은 지역 토착의 말을 번식시켰는데, 이 말들은 이동 수단뿐만이 아니라 숭배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 암각화들은 기원전 1,000년기의 후반에 제작되었으며, 오랜 시간 동안 보존되었다(Bernstam, 1997). 이 지역의 주민들은 지금도 말을 숭배한다.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의 수많은 구비문학 가운데서도 말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수로투 타쉬 암각화 유적지 전경

 

 (8) 둘둘 아타

 

이 유적은 아라방 마을 동쪽, 오쉬 시에서 서쪽으로 27㎞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좌표: 북위 40º30'42,6˝, 동경 72º30'40,0˝, 해발 772m.). 유적은 돌 구릉과 절벽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구릉과 절벽의 몇몇 암면에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절벽의 아래쪽에는 샘과 ‘둘둘 아타’ 성인의 무덤 등 지역 주민들이 숭배하는 제사 유적이 있다.
둘둘 아타 암각화 유적지 전경

1939년에 볼쇼이 페르간 운하를 건설하였을 때, М.Е. 마송이 이끄는 고고 조사단이 이 유적의 암각화를 조사하였다. 그들은 제작 시기의 문제를 상세하게 연구하였으며, 이 형상들의 상징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말 형상은 양식상 기원전 1,000~1,000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분류된다(Masson, 1940·1948).
1946년에는 A.N. 베른쉬탐도 이 유적지의 암각화를 연구하였다. 그는 말 형상, 야생양(산양) 형상, 사람, 불분명한 형상들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A.N. 베른쉬탐은 사람, 개, 가지가 많이 난 뿔의 사슴, 안경 모양의 기호 등이 사크 시대의 유적(기원전 8~3세기) 가운데 그림들과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Bernstam, 1997).
2009년에는 V. 아만바에바가 이 유적을 조사하였다. 주요 절벽의 동남쪽에서 말과 산양 형상, 표범과 멧돼지 등을 포함하여 모두 16개의 형상이 구성되어 있는 그림을 발견하였다.
2011년에는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이 유적의 일부를 조사하였다. 주요 절벽을 조사하면서 이 절벽에서 동남쪽에 위치한 그림들을 확인하였고, 그 가운데서 말 그림을 채록하였다.
둘둘 아타 말-도면

 

 (9) 사이말르이 타쉬

 

사이말르이 타쉬는 페르간산맥의 코크 아르트 고개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 접근하기가 어렵다(좌표: 북위 41º10'47,6˝, 동경 73º48'53,4˝, 해발 3,500m.).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이 분지 안의 넓은 평지에는 바위가 뒤덮여 있으며, 그것들은 짙은 갈색이나 짙은 청회색으로 덮인 현무암 계열의 바위다.
이 암각화 유적지의 조사는 7월 하순에서 8월 중에만 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곳으로 오르기가 어렵고 또 위험하며, 아울러 현지의 기상 상태가 나쁘기 때문이다. 유적지는 걷거나 말을 이용해서만 갈 수 있다.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 하루 동안에 ‘4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눈과 얼음이 녹아 이루어진 강이 유적 옆을 흐르고 있고, 또 여름철에도 단단하게 층을 이룬 눈 위에 또 다시 눈이 내려 그 위를 뒤덮는다. 눈은 몇 ㎞에 걸쳐 쌓여있을 수도 있다. 두꺼운 눈으로 뒤덮인 계곡 바로 아래에 쿠라르트 강이 거칠게 넘실거린다.
사이말르이 타쉬 빙하계곡

키르기스스탄의 고대 문화의 독특한 유적은 1902년 나르인에서 안지잔까지를 잇는 우정국 도로 개설 공사를 할 때 군사 지형학자이자 화가인 N.G. 흘루도프가 발견하였다(Khludov, 1902). 그 후 1903년 투르케스탄 고고학 애호가 동호회의 회원인 I.T. 포슬라프스키 장군이 이 자연 경계 지역을 조사하였다(Poslavski, 1903). N.G. 흘루도프와 I.T. 포슬라프스키는 사이말르이 타쉬 자연 경계 지역에서 발견한 다수의 암각화와 이 그림들의 중요성에 대해 지적하였다. I.T. 포슬라프스키는 이 그림들을 태고의 것으로 분류하였다. N.G.흘루도프와 I.T. 포슬라프스키의 공로는 이 두 사람이 이처럼 독특한 태고의 유적을 학계에 소개함으로써, 이 유적이 세계 학계가 주목하는 유산이 되었다는 점이다.
1946년 V.M. 지마는 이 독특한 태고의 유적을 전면적으로 조사하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물을 바탕으로 사이말르이 타쉬 바위그림의 연대를 결정하였고 또 그 특징을 제시하였다. 자신의 논문에서 그는 이 그림들을 1940~1950년대에 알려진 다른 바위 그림들과 함께 소개하였다(Jima, 1946·1950·1958).
1950년에 A.N. 베른쉬탐이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 연구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바위그림의 분류 및 연대 설정을 제안한 최초의 연구자들 중 하나다. 그는 1952년 잡지 『소비에트 인종지학』에 발표한 「사이말르이 타쉬 바위 형상」이라는 논문에서 유적에 대한 좀 더 상세한 특징을 논하였다.
그 후 30년 동안 N. 포돌스키, G. 포마스키나, Ja. 쉐르, U.N. 골렌두힌, A.N. 마리야쉐프, L.E. 노브고로드초바 등이 사이말르이 타쉬를 답사하고 흥미로운 자료를 학계에 보고하였으며, 바위그림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제시하였다(Podolsky, 1966; Pomaskina, 1972·1975·1975а; Golenduhin, 1971; Sher, Golenduhin, 1982; Sher, 1978·1980; Mart’inov, Marijashev, Abetekov, 1992).
소비에트 붕괴 이후,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의 조사는 키르기스스탄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 고고학・인종지학연구부의 부장인 K.I. 타쉬바에바에 의해 이루어졌다. K.I. 타쉬바에바를 단장으로 하는 학술조사단은 1991~2002년에 걸쳐 열 번의 조사 작업을 하였다. 그녀는 이 자연 경계 지역에서 암각화가 밀집해 있는 지역을 구분하고, 사이말르이 타쉬 1, 사이말르이 타쉬 2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이말르이 타쉬 산맥의 동쪽 지맥을 경계로 두 유적은 구분된다. 연구자는 분지 전체를 10×10
(가로×세로)의 사각형으로 분할하여 모두 12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사이말르이 타쉬 1에는 약 1만 개의 그림이 그려진 바위가 있다. 대부분의 바위에는 50~100점 정도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K.I. 타쉬바에바는 암면들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동물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장 이른 시기의 암각화들을 기원전 3,000~2,000의 것으로 연대를 추정하였다(Tashbayeva, 2004·2006).
K. I. 타쉬바에바 박사와 함께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 연구는 오랫동안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조사가 완전히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이 자연 경계 지역에 아직도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암각화가 많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학술 조사를 할 때 호수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바위들에 시선이 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A.N. 베른쉬탐은 이곳의 바위그림은 약 10만 점이라 추정한다. G.A. 포만스키나는 6천 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Ja. 쉐르는 자신의 연구물에서 이곳에 암각화가 9천 점 정도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이런 숫자상의 불일치는 바위그림에 새겨진 형상과 장면들의 수량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이 유적을 전면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06년 Zh. 발라사긴 기념 키르기스스탄 국립대학교 고고학자, 교수, 학생들이 사이말르이 타쉬 고고학 조사단을 조직하여, 이 유적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이전에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암각화들을 발견하였다. 그 가운데는 중세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랍어의 글씨들이 특히 주목을 끌었다.
2011년에 한-키르기스스탄 공동 조사단이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 유적을 재조사하였다. 그 조사 과정에서 다음의 그림들을 조사하고 채록하였다.
 
❖ 단독, 무리로 있는 야생 동물과 가축 형상들
❖ 안트로포모르프와 사람 형상
❖ 경작 장면과 수레
❖ 제례와 종교의식 장면
❖ 성교, 문화발생, 주술적 의례 등
❖ 기하학적 주제, 산길, 주거 시설로 추정되는 사각형들
 

동물 형상 가운데는 산양이 가장 많았으며, 이들은 몸통 모양과 기타 특징이 다양한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는 특히 뿔이 곧게 뻗은 것도 있고, 또 가끔은 뒤로 젖혀지거나 머리 위로 둥글게 말린 것도 나타난다. 뿔과 꼬리가 연결된 그림도 보인다. 산양 형상 가운데는 몸통이 비트레우골 주양식으로 그려진 것도 있다. 몇몇 산양 형상은 달리거나 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제재 가운데 하나는 소다. 소 형상은 육중한 몸통과 그리 크지 않은 머리, 곧고 뒤로 젖혀진 뿔을 지니고 있다. 마구에 매인 소 형상도 자주 발견된다. 특이한 형상 그룹은 사슴 형상이다. 이 형상들은 다양한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사슴의 뿔은 한 쌍 또는 두 쌍의 선으로 표현되었는데, 둥글게 말린 뿔도 보인다. 가끔 나무나 전나무 형태의 뿔도 발견된다. 말, 낙타, 맹수 형상도 종종 그려져 있다.
산양(비트레우골 양식, 사이말르이 타쉬)
수레 또는 경작(위·아래. 사이말르이 타쉬)
수레 또는 경작(위·아래. 사이말르이 타쉬)
태양 사람(사이말르이 타쉬)

사이말르이 타쉬에서는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한 존재 형상들이 나타난다. 이 형상들은 다양한 양식,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졌으며, 도식화되어 있다. 양쪽으로 쭉펴고 있는 손, 쫙 펼친 큰 손가락과,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는데, 가끔은 머리를 땋은 사람 형상도 보인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 꼬리를 달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주제의 형상들은 단독 또는 다른 형상들과 어우러져 있기도 한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형상은 종종 꼬리뿐만 아니라 태양 머리를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면밀하게 연구된 주제는 경작 장면이며, 마차와 전차 등의 형상은 여러 종류의 동물, 즉 산양, 당나귀, 소가 마구에 매어 있음을 보여준다. 마구는 주로 소와 결합되어 있으며, 산양과 야생 양에 매인 마구도 보이는데, 말에 매인 마구는 좀 더 늦은 시기에 나타난다. 이 그림들을 어떤 학자는 경작 장면으로 이해하였으며, 다른 학자들은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Sher, 1978).
마차(사이말르이 타쉬)

이 암각화 속에는 태양 숭배와 관련된 형상도 다수 존재한다. 그 가운데는 손에 태양을 들고 있는 사람 형상도 있다. 또 다양한 천체 형상, 즉 중앙에 점이 있는 원, 광선을 지나 있는 동그라미, ‘안경 모양의 기호’로 불리는 형상들이 있다. 이런 형상들은 매우 많이 확인된다. 그것은 두 개의 원이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 속의 태양 기호 또는 태양 머리를 지닌 형상들은 Ja. A. 쉐르가 언급한 것들과 유사하다. 그는 이 형상들을 금석 병용기에 제작된 것으로 분류하였다(Sher, 1980). 사이말르이 타쉬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전성기에 그려진 태양 기호와 유사한 형상들은 카자흐스탄의 탐갈르이 유적에서도 발견된다[Наскальное искусство Казахстана 『카자흐스탄 바위그림』, 2010]. 이 형상들은 중앙아시아의 고대 주민들이 태양을 숭배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이말르이 타쉬 암각화에는 성교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어떤 것은 한 쌍의 부부 형상으로, 또 일부는 뱀이나 산양 등과 같이 그려져 있으며, 다른 어떤 것들은 세 사람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부부 몇 쌍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성교 장면은 매우 유명하다. 이런 장면들 가운데 그려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머리를 땋고 있다. 아마도 생산력 증가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복합적인 의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암각화 속에는 미로와 더불어 다양한 유형의 기하학적 형상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런 유형의 형상들은 주제가 다양하고 또 많은 곳에서 다량으로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암각화에는 축 늘어진 타원형 모양의 남근 숭배와 관련된 형상도 나타난다. 손바닥, 발바닥 모양의 형상도 그려져 있다. 가끔 지역의 자연 경관을 축소하여 그린 형상도 발견된다. 모든 그림은 기하학적 양식으로 그려졌다. 동물이나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한 존재의 몸통은 사각형 또는 비트레우골형으로 그렸는데 울타리와 비슷한 모양이다. 일부 연구자는 이 그림을 주거지로 간주하기도 한다. 사각형의 울타리 중앙에는 음식을 준비하고 또 집을 덥히며, 가족 개개인의 삶과 연관된 갖가지 의식을 치르는 곳인 아궁이가 점으로 표현되었다는 가설도 제기되었다. E.G. 데블레트는 시베리아에서 이런 주거지와 유사한 모습을 한 형상을 발견하였다. 이 주거지 그림에는 뱀도 같이 그려져 있다. 데블레트는 이런 유형의 암각화들을 금석 병용기와 청동기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분류하였다.
사이말르이 타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활을 들고 있는 무사, 수레, 거북 등 이미 알려진 형상들이 발견되었다. 수레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사각형으로 표현되었는데, 각각의 바퀴에는 여섯 개의 살이 있다. 바퀴들은 서로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바퀴들 중간에 사각형으로 표현된 마구가 있다. 이 마구에는 서로 상반되게 그려진 두 마리의 당나귀가 매어져 있다. 움직이고 있는 당나귀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 당나귀는 긴 몸통에 긴 꼬리와 귀, 그리고 약간 굽은 다리를 하고 있다.
거북 형상의 그림이 드물게 나타난다. 이 형상은 원형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 내부에는 갑골이 그려져 있으며, 머리와 겨우 보이게끔 그려진 꼬리와 다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주제는 키르기스스탄 암각화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유사한 주제는 몽골의 다른 유적들에서 발견되는데, 주로 동북아시아의 민족들에서 나타난다.
또 하나 주목을 끄는 형상은 활을 들고 있는 기마병이다. 이 형상은 모두쪼기로 그려졌다. 무사는 말에 앉아서 목표물에 활을 겨누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기마병의 활은 ‘M’자 모양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활 길이는 기마병 키의 반 정도다. 삼각형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두 개의 선으로 표현한 깃털 장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기마병은 모자나 투구를 썼을 가능성도 있다. 허리띠에는 군도나 약간 휘어진 날카로운 칼날을 지닌 긴 칼이 표현되어 있다. 움직이는 말이 묘사되었는데, 말 등에는 나무로 만든 딱딱한 안장 앞뒤의 굴곡부가 보이는데, 이는 중세 시대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주제는 양식과 유사성 등을 통해서 볼 때 탈라스 계곡의 잘트이락-타쉬, 코치코르 계곡의 코크 사이, 이스이크-쿨 계곡의 오르노크 등지의 그것들과 비슷하며(Akmatov, 2008; Zholdoshev, 2005), 중세시대의 것으로 분류된다.
사이말르이 타쉬는 3,000년 이상 그 지역에 거주한 주민들의 창조적 활동을 잘 표현하고 있는 독특한 암각화 유적이다. 일련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암각화의 대부분은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분류된다(Sher1, 980; Tashbayeva, 2006).
또한 중세시대의 형상과 아랍 문자가 새겨진 비명도 확인된다. 사이말르이 타쉬는 오늘날에도 성소로 간주되며,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그곳에서 지역 주민들은 몇 가지 주요한 의식과 제례를 치르고 있다.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