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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카자흐스탄의 고대 문화

Ⅲ. 카자흐스탄의 고대 문화

1. 석기시대
○ 카자흐스탄의 일부 지역에서는 십여 곳의 석기시대의 주거지(동굴 또는 개방형)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 시기에 바위그림이 제작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톨레우불라크 동굴 부근의 바위그림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주변에서 몇 개의 석기시대 유적들과 수공업 공방 그리고 손도끼, 넓적 모양 자르개, 긁개 등 다량의 석제 도구들이 발견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유물들을 통해 이 바위그림의 기원이 오래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빙성이 있고 또 공인된 구석기시대의 바위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와 같은 바위그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사시대 바위그림을 구분짓는 원칙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것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앞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석기시대의 바위그림도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늦은 신석기시대의 코스쿠드이크 I과 II 유적(만크이스타우 반도)의 유물 가운데서 지질학적 층위와 고고학적 유물 사이의 신뢰할 만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조형 예술적인 유물 복합체을 발견하였다.
2. 에네올리트 기(기원전 4000년기 말~3000년기 말)
○ 지금까지는 얌-카타콤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과 관련된 붉은 물감 그림들이 에네올리트 기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현재의 카자흐스탄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은 다른 지역의 문화 요소와 자생적으로 발생한 요소들 간의 상호 접촉의 결과로 발생한 세계적인 인종 문화적 현상의 영향 아래에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지역 문화는 독특한 색채를 지니게 되었다. 서쪽으로부터의 이주와 동쪽으로부터 들어온 아파나시에보-오쿠네보 문화를 담당한 종족들 사이의 직접적인 문화 접촉은 카자흐스탄의 문화 형성 과정에서 독특함을 더해 주었다.
현재의 카자흐스탄에서는 에네올리트 기와 철기시대 초기의 몇몇 문화 또는 사회 공동체가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그것들(에네올리트 기의 빗살무늬를 사용한 문화가 존재한 자우랄-카자흐스탄 역사 문화권)을 체르세크 문화, 보타이 문화, 수르탄드이 문화, 크이스이쿨 문화 등 저마다 서로 다르게 명명하였다. 에네올리트 기의 문화 가운데 보타이 문화는 말 사육을 주로 하면서 활발하고 다양한 경제 활동을 영위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자이베르트, 2009, pp. 222-229).
채색화(아크바우르 동굴 벽화, 부분)
보타이 문화 유물 복합체 속에서 살펴지는 상징적인 기호 가운데는 뼈에 새겨진 삼각형, 마름모꼴, 뱀, 그물무늬 그리고 그 밖의 것 등이 있는데, 카자흐스탄의 동부 아크바우르 동굴 벽화 속에도 이와 유사한 무늬들이 그려져 있다. 카자흐스탄의 동부 지역에서는 아마도 아파나시에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우스티-나르임 유형의 유물들과 카나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초기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에서 이러한 문화적 특징들이 살펴진다.
앞에서 언급한 문화 가운데는 황토가 장례·추도 의례 및 조형예술 등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는 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우스티-카멘노고르스크 시 인근의 메노프노에 마을 인근에서 발견된 에네올리트 기 초기(기원전 4000년기 말~3000년기 초)의 여자 무덤은 매우 흥미로운 유적이다.
3. 청동기시대(기원전 3000년기 말 이후)
○ 청동기시대(기원전 3000년기 말~2000년기의 안드로노보 문화기)는 경제와 문화가 종합적으로 정형화되고 사회 관계가 복잡해지며, 새로운 사회 조직들이 체계를 갖추는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세계적이고 또 국지적인 이주 현상이 심화되었으며, 문화적으로 혼란이 야기된 때였다. 이와 동시에 인종·언어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새로운 세계관과 종교관이 형성되었으며, 신화 의례적 전통이 보다 복잡해진 시기였다. 바로 이 시기에 삼림과 스텝 지역, 특히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이 활발하게 바위그림을 제작하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에 이르면, 높은 기술력을 지닌 세이마-투르비노 현상, 즉 원시 경제 사회의 광부, 야금술사, 장인·직공 그리고 호전적인 가축·말 사육자, 목동 등 높은 수준의 조형예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이 공동체의 예술 활동의 높은 수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E. N. 쵸르느이흐와 S. V. 쿠즈미느이흐는 “기원전 2000년기 중반에 이들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의 무기와 군사 조직을 갖추고 있어서, 짧은 시간 안에 수천km나 떨어진 서시베리아의 산림-스텝 지역과 습지-타이가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우랄산맥을 넘어 동유럽의 산간 평원으로 이동하였다”고 기술하였다(쵸르느이흐·쿠즈미느이흐, 1989, p. 5).
G. 파르친게르는 세이마-투르비노 유형의 유물들은 주로 구리나 주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광산, 즉 알타이, 서 사얀, 우랄산맥 근처에 집중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화 이동 현상을 인위적인 구조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그가 펼친 최근의 이론이다(파르친게르, 2000, p. 68).
세이마-투르비노 공동체는 높은 수준의 야금 생산 기술로 인하여 널리 확산된 특이한 초문화적 현상으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하여서 군국주의화되고 또 기동력이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통일성과 기술력의 발달 정도 그리고 군사력 등은 앞에서 논한 유적들을 바탕으로 추정할 수 있다.
E. N. 쵸르느이흐와 S. V. 쿠즈미느이흐는 세이마-투르비노 문화에서 최초로 청동을 생산한 곳으로 구리와 주석 등의 원광석이 풍부한 루드느이 알타이와 이르티시 강 상류 지역을 꼽았다. 바로 이 지역에서 채굴한 주석이 동유럽, 아시아, 메소포타미아와 미누신스크 분지까지 보급되었다. 특히 미누신스크 분지의 오쿠네보 문화에서는 루드느이 알타이에서 채굴한 주석이 혼합된 금속품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지역은‘아스카랄린’인데, 이곳에는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 야금 제조장, 주거지, 묘지(울타리, 관, 멘히르, 사슴 돌) 그리고 중심지로부터 반경 3km 이내에 형성된 암각화 유적 등이 있다(사마쉐프·에르몰라에바·쿠쉬, 2008, pp. 42-43). 바로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에서 금속을 이용하여 만든 손도끼, 창 끝, 칼과 단검 등 여러 종류의 청동기 및 주물용 거푸집 등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바위그림 속에는 수렵, 전쟁 등을 주제로 한 복합적인 구도의 그림들, 전차, 황소, 염소, 말 등과 같이 그 당시 사회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주제들이 나타난다. 청동기 문화가 꽃핀 시기(기원전 2000년기 중·후기)에 제작된 암각화의 특징은‘세이마-투르비노’양식이라 명명된 말 그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청동기시대 후기의 유물(알라쿨스키, 스루브노-안드로노프 문화의 특징)로는 울켄쿠두크, 사카아쿠두크, 말라야 아이라크타 무덤군, 아카타우 무덤, 우스튜르트 쿠르간 등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장례 의식과 의례 그리고 신화 체계 등 몇 가지 측면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사마쉐프·쿠쉐로바예프·아만샤예프·아스타피예프, 2007, pp. 126-145).
E. E. 쿠즈미나가 제안한 것처럼, 카자흐스탄의 중부 지역은 페도로프 타입의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제작된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부터 이 타입의 유물들이 카자흐스탄의 동쪽과 멀리는 예니세이 강 유역 그리고 서쪽으로는 우랄산맥까지 점차 전파되었다(쿠즈미나, 2008, p. 160). 쿠즈미나는 서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에 거주한 페도로프인들이 카라수크인들과 동화되었고, 이들 사이의 상호 교류의 결과에 의해 독특한 단드이바이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카라수크 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남부 시베리아 자생설, 중앙아시아 설, 중국의 오르도스설 그리고 이란과 카자흐스탄 발생설 등 현재 여러 가지의 주장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카라수크 문화의 카자흐스탄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카자흐스탄 중부의 후기 안드로노프 베가자-단드이바이인들이 미누신스크 분지로 침범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레그랑, 2000, pp. 137-142).
V. V. 에브도키모프와 V. V. 바르포로메에프는 이 베가자-단드이바이 문화(변형으로‘단드이바이-사르가진스카야, 자마라에프스카야, 자마라에보-베가진스카야, 사르가린스코-알렉세에프스카야 등이 있음)가 우랄-카자흐스탄-알타이 스텝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보았다(에브도키모프·바르포로메에프, 2002, p. 87).
마차(모이나크)
4. 초기 유목민 또는 사크 시대(기원전 1000년기)
○ 청동기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스텝 문화의 여기저기에서 기마술을 익히게 되었으며(아마도 목동들이 타고 다닌 것으로 추정됨), 이에 관해서는 뼈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재갈과 많지 않은 바위그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원전 1000년기 초에는 말 사육이 현저하게 발달하게 되었고, 청동으로 만든 좀 더 크고 다양한 종류의 굴레 장신구가 제작됨으로써 기마병들이 초기 유목민 공동체들(또는 스키타이-사크 유형의 문화들) 속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보코벤코, 1993).
문화 양상들도 많이 변화하였는데(겨울에도 먹이를 찾아 가축 떼를 1년 내내 위아래 지역 또는 환상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됨), 그 이유는 이동하기에 편한 주거와 생활 용품, 기마병들이 사용하는 무기 등이 이와 같은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데 보다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청동기시대 이전 문화와 발생학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랄에서부터 몽골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스텝 문화 속으로 매우 빠르게 전파되었다.
바로 이들 지역에서 말(다리가 긴 품종 포함)과 양의 여러 품종들이 파생하였으며, 세 가지 문화권(목축, 농경, 수공업)의 통합이 이루어졌고, 군인·제사장으로 구성된 귀족 계급과 기타 사회 계층으로 나누어지는 지배 및 피지배 계급이 발생하였다. 유목민 사회에서 일어난 이런 변화들로 인하여 종교 체제가 복잡해졌고, 장례 의식을 통한 지위의 공고화가 이루어졌으며, 특정한 상징기호, 예술, 신화·서사적 전통들이 확립되었다.
베스샤트이르, 칠리크트이, 이스이크, 아르잔, 파지리크, 살브이크 등 중앙아시아 전 지역, 특히 세미레치에와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에 대형 쿠르간들이 존재하는 것을 통해서 대규모의 민족 연합체가 생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문헌에 따르면 바로 그곳에 사크족과 마사케트족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원전 1000년기의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사크 문화권의 경계가 예니세이와 중국 북서부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성한 곳으로 간주되는 지역은 세미레치에, 칠리크트이, 이스이크-쿨, 미누신스크 분지 등이다.
문화의 접촉은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북쪽의 타이가 주민들과 남쪽의 내륙아시아, 인도, 중국 등의 도시 문명인들과의 접촉이 있었다. 그러나 문화 양상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스키타이보다 앞선 시기와 스키타이 초기에 시작된 서쪽으로의 이주 그리고 이로 인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슴(스키타이 시베리아 동물 양식)
현존하는 연대기에 따르면, 유목민 시대 초기의 유물은 다음과 같이 연대가 구분된다. 사크 시대의 초기는 기원전 9~7세기(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의 마이에미르 단계로 기원전 8~7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전반기의 초기), 사크 시대의 전성기는 기원전 5~3세기로 파지리크 문화의 지방 변형인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에서는 베렐 단계라고 불리는 시기와 일치한다. 사크 시대 말기는 쿨라주르크 단계이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고려하여 연대를 재조정한다면, 앞으로 사크 시대의 전성기 편년이 바뀔 가능성도 많다.
5. 중세기(기원후 1000년기)
○ 이 시기에는 여러 유목 민족들이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여, 카자흐스탄 전 지역에 유목 카가나트(투르크인, 키막크인, 키프차크인 등)를 형성한 시기였다. 이주, 군사적 분쟁 등 복잡한 인류의 문화적 발전 과정 등이 바위그림 속에 분명하게 반영되었다. 바로 이 시기는 주로 전쟁을 중심으로 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손에 깃발이나 활 그리고 창을 들고 있는 병사는 중세기를 나타내는 독특한 상징물이다.
이 시기에는 유목제국과 민족 연맹, 종족과 씨족 등의 지도자 그리고 사령관과 영웅(용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동물 그림이 다양해졌고, 보다 더 역동적인 자세로 묘사되었다. 중세기의 동물 양식과 특별한 기법인 그라피토(선으로 그어서 그린 그림)는 고대 투르크인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다른 민족들의 문화 속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수많은 군사-정치적 활동에 따라 여러 개의 강력한 스텝 제국들이 생성·붕괴되었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흡수하였으며, 점령과 병합이 일어났던 바로 그런 시기에 중세 군국주의적 유목사회의 필요에 따라 제작된 이와 같은 그림들의 정치적인 성격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훌륭한 유목민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이 도시들은 초목이 풍성한 오아시스와 오르혼, 이르티시, 일라, 탈라스, 스이르다리야 등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상업과 가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깃발을 든 기마병(쿨자바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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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고대 문화 자료번호 : ag.d_0005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