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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머리말

  • 편자
    장석호

Ⅰ. 머리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조형 예술은 제작되었으며, 그 속에는 제작 집단이 향유한 물질 및 정신문화의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바위그림(岩畵) 속에는 그것을 제작한 사람들이 보았던 자연계와 그들이 영위하였던 생활상, 품었던 사유의 세계, 믿었던 믿음과 의례 등이 사실적 또는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에 표현된 하나하나의 형상이나 기호 그리고 주제의 구성 방식 등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 및 물질문화의 총화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은 바위그림을 선사시대의 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암채화
- 쉬쉬키노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바위그림이란 바위의 표면에 그려진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제작 기법에 따라서 암채화(岩彩畵)와 암각화(岩刻畵)로 나눌 수 있다. 둘 중에서 전자는 물감으로 칠을 하여 그린 그림이고, 후자는 바위 표면을 쪼거나(pecking technique) 갈거나(grinding technique) 새겨서(engraving technique) 그린 그림이다. 제작 기법과 도구 사용의 측면에서 볼 때 전자는 페인팅(painting)에 가까우며, 후자는 드로잉(drawing)의 성향이 짙다. 제작자는 바위의 성질과 도구 그리고 표현 능력에 따라서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 기법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원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그와 같은 예를 쪼아서 그린 그림이나 새긴 다음 채색한 그림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바위그림은 석기시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적인 특성이 담긴 제재와 주제가 그림 속에 차례로 등장하였고, 그에 걸맞게 새로운 양식도 창출되었다. 그것은 새롭게 등장한 문화 주체들이 전 시대와 차별되는 자신들의 문화 현상을 바위 표면에 형상화하였기 때문이다. 시대와 문화 담당자들이 교체되었지만, 바위그림은 지속적으로 그려졌으며, 그 전통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서 오늘에 이어졌고, 아직도 오지의 바위그림 유적지에서 새롭게 그려진 그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대다수의 바위그림 유적지에서 석기 시대 또는 청동기 시대부터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된 그림들을 어려움 없이 살필 수 있다.
암각화
- 대곡리
새긴 다음 채색한 그림
- 쉬쉬카
새긴 다음 채색한 그림
- 쉬쉬카
 바위그림은 제작 당시의 사람들이 누렸던 삶과 꿈꾸었던 원망(願望) 등을 이미지로 환원시켜 암면 속에 형상화한 것이다. 이들이 이룩한 문화는 생활공간의 환경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타이가, 스텝과 저지대, 고원-산악지대, 사막과 고비(반사막) 그리고 해안과 호안 등의 차이에 따라서 동·식물의 서식 상황이 달랐으며, 그에 따라서 생업과 주거 공간 그리고 의복의 구조 등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생업 유지에 필요한 생활이기(生活利器)나 당시 사람들이 인식했던 세계의 구조에도 이질적인 면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질성도 그림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시대와 지역 그리고 문화 주체가 바뀜에 따라서 바위그림의 제재와 주제 그리고 양식 등도 변하였던 것이다. 그 요인은 제작 주체의 교체, 기술 혁신, 기성 사회의 가치관 타파, 환경 등 사회 상황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새로움의 추구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그려진 바위그림 속에는 차례로 이어진 시대의 문화적 현상들이 형상화되어 층을 이루면서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므로 바위그림 속에 덧그려진 형상 상호 간의 층위를 분석해 봄으로써 동일한 암면에 그려진 것은 물론이고 같은 공간 내의 다른 바위 표면에 그려진 것일지라도 그 선후 관계 및 양식 변화의 과정을 밝힐 수 있다. 이로써 시대나 표현 주체의 변화에 따른 양식 변화의 내용과 요인을 분별해 낼 수 있다. 더 나아가 문화 현상의 변천 과정을 판독할 수 있고 또 일정한 부분을 복원할 수 있다. 그리고 인접한 지역과의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도 구분해 낼 수 있다.
 이 분야에 관한 주목과 연구는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예를 들어 중국의 리타우엔(麒道元, 472~527)은 이미 5세기 말(490년 전후)에 그가 목격한 바위그림을 『수경주(水經注)』 속에 기록하였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시베리아 등지의 바위그림들은 1600년대 중반부터 학자나 외교관을 포함한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경과되면서 새로운 유적들이 차례로 발견되었고, 연구 성과가 축적됨에 따라서 바위그림은 선사시대의 인류와 그 문화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자료로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바위그림의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있고 또 새로운 발견과 그 연구 성과를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손에 의해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라는 점, 어디에서나 관찰되는 범세계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점. 제작 집단이 영위하였던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조형 예술의 형식으로 형상화되었다는 점, 無문자 시대의 사회 상황을 살피게 해 주는 유일한 기록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점 등이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그것이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인류의 선사시대를 풀어낼 수 있는 바코드(bar code)이기 때문이다.
천전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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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르 산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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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바위그림은 선사 시대의 인류가 구현한 정신 및 물질문화의 세계를 그림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繪文字)이다. 다시 말하자면, 바위그림 속에는 문화의 여명기와 당시의 사회 상황, 그 이후 변화 과정 및 내용 등이 기록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바위그림을 통해서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와 이룩한 문화 및 그 구성 요소, 발전 단계와 과정 등을 되짚어 볼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선사 시대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바위그림은 미스터리의 선사시대를 해독하는 데 더 없이 귀중한 단서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역사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비단 미술사학자뿐만 아니라 고고학, 문화인류학, 민속학 그리고 종교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선사 시대의 바위그림 및 그 연구 성과에 주목하고 있고, 이를 통하여 인류 문화의 여명기 및 그 발전 과정 등 문화의 영속성을 밝혀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위그림은 선사시대를 풀어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문화 인류학 대사전인 셈이다.
 바위그림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물질문화사 연구소의 N. I. 보코벤코 박사, M. 킬루노브스카야 박사와 공동으로 하카스코-미누신스크 분지와 투바공화국의 바위그림을 1차로 공동으로 조사하였으며, 그 결과물로 이 자료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 자료집은 논고 편과 유적지 편의 두 부분으로 구성하였으며, 논고 편에서는 각 조사자가 참여하여 조사 개요 및 유적지 현황, 하카스코-미누신스크의 바위그림, 투바의 바위그림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유적지 편에서는 2006년에 조사한 전 유적지의 사진 자료 및 채록한 형상을 도면화하여 제시하였다.
 각 바위그림 유적지를 소개하면서 위치와 규모 그리고 연구 상황 등을 간단하게 소개하였고, 그림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사진과 도면을 제시하였다. 또한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참고문헌을 제시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영문요약을 첨부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작업을 주변 지역으로 확장하여 펼쳐나가고자 하며, 이를 통하여 전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을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집대성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이 지역 선사 및 고대사 연구의 기반 조성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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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자료번호 : ag.d_0003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