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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몽골 바위그림과 한국 선사 및 고대 미술의 상관성

  • 편자
    장석호

Ⅴ. 몽골 바위그림과 한국 선사 및 고대 미술의 상관성

1. 머리말
 동북아역사재단은 2007년도와 2008년도에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알타이 산맥 이동 지역과 몽골의 중동부 지역의 암각화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의 목적은 몽골의 선사 및 고대 암각화의 중앙아시아적인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파악해 내고, 또 그것을 토대로 하여 한국선사 시대 암각화 및 고구려 고분 벽화의 계통성을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두 차례의 조사를 통해서 수집한 암각화 및 사슴 돌 등의 자료들은 해당 지역 선사 및 고대 미술의 주제와 양식 파악은 물론이고 알타이 산맥 일원과 중동부 지역 문화상의 비교 연구 등 몽골 바위그림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기초 자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남부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중동부 지역, 신장 위구르 지역 그리고 한국 선사 암각화 및 고대 고분벽화 등과의 상호 관련성을 살필 수 있게 해 주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하여 몽골 바위그림의 세계를 크게 두 개의 권역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서부 지역 암각화권이고, 다른 하나는 중북부 지역 바위그림권이라고 할 수 있다. 바양 울기, 오브스, 자프항, 호브드 그리고 고비 알타이 아이막 등 서부 지역에서는 주로 쪼아서 그린 암각화들이 집중되어 있었다. 반면에 흡수굴과 헨티 아이막을 중심으로 하는 중북부 지역에서는 서부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암채화들도 그려져 있다.
 제재 및 주제를 통해서 볼 때도, 서부 지역에서는 산양을 비롯한 동물들이 중심적인 제재였으며, 수렵과 군인 그리고 마차 등이 보조적인 제재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중동부 지역에서는 동물, 사람과 호랑이 발자국, 말발굽 그리고 여성 생식기 등 상징주의적인 형상, 기하학적인 형상, 타마그 등이 보다 빈번히 그려져 있었다. 이렇듯 동서 양 지역의 바위그림에서는 동질성보다는 오히려 이질성이 더 많이 관찰되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알타이 산맥 주변의 서부 지역과 흡수굴 및 헨티 아이막 등 중북부 이동 지역 바위그림의 세계를 간단히 소개한 후, 동서 양 지역 바위그림에서 살펴지는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을 논해 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 몽골 바위그림과 한국 선사 시대의 암각화 및 고대 고분 벽화와의 상호 관련성을 논해 보고자 한다.
2. 몽골 바위그림의 세계
1) 서부 지역 암각화의 세계
 몽골에서는 흡수굴과 볼간 그리고 투브 아이막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이서 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선사 시대 암각화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새로운 유적지들이 발견·조사되고 있고 또 그에 대한 정보들이 하나씩 학계에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광물성 물감으로 그린 호브드 아이막의 호이트 쳉헤르 동굴 벽화를 제외하면, 이 지역에서 발견된 그림들은 모두 쪼거나 새겨서 그린 암각화들이다.
[도면 1] 마차(후렝 우주르 하단 올)
[도면 2] 사슴(하난 하드, 고비 알타이)
 한·몽 공동조사단은 2007년도에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 일원에 있는 8개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하였으며, 호브드 아이막 만항 솜과 에르뎅 부렝 솜의 조스틴 하드 등지의 암각화 유적지를 조사하였다.주 033
각주 033)
동북아역사재단,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2008, 『몽골 고비알타이의 암각화』, 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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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08년도에는 서북쪽에 있는 오브스 아이막 나란 볼라크 솜의 조라그트 하드와 우믄고비 솜의 후렝 우주르 하단 올 등지의 암각화를 조사하였으며, 아르 항가이 아이막 운드르 올란 솜의 하노이에서 사슴 돌 유적지를 조사하였다.
 이 조사를 통하여 구석기 시대부터 고대 튜르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야생 및 가축을 포함한 동물, 사냥꾼과 전사 그리고 유목민 등 사람, 활과 창 그리고 마차 등을 포함한 생활이기, 신화와 종교 등 정신문화의 세계를 엿보게 하는 주제들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양식의 변화, 제작 주체와 시기 그리고 주변 지역과의 상호 관련성을 밝힐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서부 지역 암각화의 세계는 동물을 제재로 한 자연주의적 그림이다. 시대에 따라서 양식은 달라졌지만 그림의 중심 제재는 늘 동물이었다.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야생 동물이 많이 그려졌으며, 사람이 등장하면서 수렵과 더불어 가축화의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주제들이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동물 형상은 급속히 추상화되었으며, 마차와 버섯모양의 머리를 한 사냥꾼(전사)이 새로운 제재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도면 3] 기를 든 전사들(돈드햐린 혼드)
 사슴 돌주 034
각주 034)
사슴 돌은 선돌에 사슴을 중심으로 하여 동그라미, 무기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제작 시기는 학자 간에 이견이 있지만, 기원전 7~기원전 4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현재까지 약 700여 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약 600여 기가 몽골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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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이르면 모든 동물 형상은 소위 ‘스키타이 – 시베리아 동물양식’의 규범에 의거하여 표현된다. 흉노시대에 이르면, 그동안 개체적으로 그려진 동물과 다시점 화법에 의해 전개도식으로 그려졌던 마차 형상은 사라지고, 대신에 측면에서 포착한 마차를 중심으로 하여 사람들이 열을 지어 이동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서 있던 동물은 발을 서로 엇갈리게 하여 빠르게 걷는 모습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동작감이 이 시대의 새로운 모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선비와 유연 그리고 튜르크 시대에 이르면, 깃발이나 창을 든 전사, 중무장한 전사 그리고 개마무사 등 이전에 보이지 않던 제재들이 등장한다. 조형 양식도 새롭게 변화되는데, 그것은 속도감을 형태 속에 구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흉노시대부터 그려지던 동물의 걷는 동작은 뛰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또한 사냥꾼은 마상에서 뒤를 돌아보며 사냥감을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진 18] 암채화(가초르트)
 이렇듯 서부 지역의 암각화는 동물을 중심으로 한 수렵 및 유목민 암각화의 세계였다. 그것은 제재, 주제 그리고 양식의 면에서 남부시베리아, 카자흐스탄, 신장 위구르 그리고 내몽골 등 주변 지역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 석기 시대부터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제재와 주제를 반복하여 제작하였지만, 제재 해석을 달리한 까닭에 시대에 따라서 양식은 달라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양식 변화의 과정과 시대 양식 등을 추출해 낼 수가 있다.
2) 중·동부 지역 바위그림의 세계
 이에 반하여 중동부 지역에서는 암각화와 암채화가 동시에 관찰된다. 예를 들면, 흡수굴 아이막 ‘톨지기 봄’, 울란바타르 근교의 ‘이흐 텡게린 암’과 투브 아이막의 ‘가초르트’ 등지를 잇는 중부 이동 지역에는 붉은 색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관찰된다. 이러한 예는 대흥안령주 035
각주 035)
盖山林, 盖志浩, 2002, 『內蒙古岩畵的文化解讀』, 北京圖書館出版社, 323~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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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울란 우데주 036
각주 036)
Ц.Доржсүрэн, Монголын хүрлийн үеийн хадны зураг,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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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몽골 주변 지역에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서부 지역에서와 같이 쪼거나 새겨서 그린 그림도 동시에 관찰되기 때문에, 이 지역의 그림을 바위그림 문화권으로 명명한 것이다.
[사진 19] 기하학적 형상(라샨 하드)
 제재 및 주제 면에서도 중동부 지역의 선사 미술 세계는 서부 지역과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 지역에서는 동물 형상과 더불어 동그라미와 그 변형을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적인 형상, 각종 타마그, 사람이나 호랑이 발자국, 말발굽 그리고 여성 생식기 등의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또한 점으로 채워진 사각 울타리와 새 그리고 길을 따라 걷는 동물과 사람 등이 물감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헨티 아이막의 라샨 하드 암각화에서는 몽골 암각화의 편년 연구에 귀중한 단서가 되는 동물과 기하학적인 형상 그리고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과 여성 생식기 등이 새겨져 있으며, 튜르크와 거란 등 유목민의 고대문자와 명나라 시대의 묵서 등이 남겨져 있다. 이 가운데서 윤곽선만 쪼아서 그린 소로 추정되는 동물 형상, 기하학적인 형상과 각종 발자국 등은 중석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주 037
각주 037)
Э.А.Новгородова, 1984, Мир петроглифов Монголии, М., 30~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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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 발자국(후흐딘 오보)
[사진 21] 여성 생식기(후흐딘 오보)
 물론 이 지역에서도 사슴 돌 유적지가 확인되고 있다. 그것은 흡수굴 아이막 부렝토그토흐 솜에 있는 오쉬긴 톨고이이다. 이곳에서는 모두 14기의 사슴 돌이 확인되었는데, 사슴 형상은 모두 ‘몽골 – 자바이칼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몽골-자바이칼 양식은 ‘스키타이 – 시베리아 동물 양식’의 지역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슴 돌 유적지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던 것은 꼭대기에 사람의 얼굴이 돋을새김 된 한 기의 사슴 돌이었다.주 038
각주 038)
이 사슴 돌이 주목되는 이유는 사슴 돌이 구현하는 상징의 세계 및 튜르크 시대에 대량으로 제작된 석인상의 연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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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조형물들은 제작 집단의 사유의 세계가 반영된 것이며, 개인과 집단 그리고 종족의 정체성과 세계관 등이 각종 조형 언어들로 형상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과 여성 생식기 등은 서쪽의 감각적 조형 세계와는 구별되는 상징적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분이 전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는 폭넓게 확산되어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몽골의 중북부 지역을 경계로 하여 서쪽과 동쪽의 문화적 기반이 서로 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간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 성과들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돌널무덤과 히르기수르를 들 수 있다. 주로 히르기수르는 몽골의 서쪽 지역에서 발견되는 제사 터이며, 돌널무덤은 중동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질성도 사슴 돌 문화기나 튜르크 시대 등 특정 시기에는 몽골 혹은 중앙아시아적인 보편성 속에 포함되기도 한다.
[사진 22] 사슴 돌(오쉬긴 톨고이)
3. 몽골 바위그림의 조형 세계
 비단 몽골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및 조형예술은 주제 및 양식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몇 차례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데, 그것은 대부분 새로운 문화 집단의 등장 및 신기술 개발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에 의해 지역 문화권이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등 대 문화권 속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몽골의 동서 양 지역의 바위그림 가운데 보이는 지역 색도 사회상황에 따라서 짙어지거나 혹은 범 중앙아시아적인 양식 속에서 빛을 잃기도 하였다.
[도면 4] 사냥(후렝 우주르 하단 올)
 대표적인 예가 ‘스키타이 시베리아 동물 양식’이다. 스키타이족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마구의 개발은 말을 다룰 수 있는 기술력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에 의해 중앙유라시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나아가 동서의 쌍방 간 인적 물적 자원과 기술 등의 교류를 증대시켰고, 조형예술의 세계를 하나의 양식으로 통일시켰다. 그러한 현상을 흉노와 튜르크의 등장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목 제국 등장의 이면에는 지역 및 이민족 통합의 과정이 숨겨져 있으며, 주변지역과의 갈등은 강력한 무기와 빠른 속도를 추구하였는데, 그러한 현상들이 당시의 조형 예술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도면 5] 사냥(후렝 우주르 하단 올)
 이렇듯 문자로는 살필 수 없는 선사 시대와 고대 수렵 및 유목민들의 사회 상황과 물질 및 정신문화의 세계가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속에 조형 언어로 번역·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암각화 속의 형상들을 통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생존하였던 사람들의 물질문화 및 그 발전상 그리고 지각 방식 등을 파악하고 복원할 수 있는 단서들이 차례차례 층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3] 전투도(팔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냥 도구이며, 사냥 방법일 것이다. 이른 시기의 암각화 속에는 야생 동물들이 개체적이고 또 나열식으로 그려져 있고, 그것들의 몸통 가운데는 창이나 화살 그리고 작살 등이 꽂혀 있거나 신체 중 급소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사냥꾼이 등장하면서 활을 쏘는 모습도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초기의 투박하게 그려진 활은 점차 강력한 복합궁으로 바뀌었다. 사냥감과 마주 서 있던 사냥꾼은 마상에서 동물을 쫓아가며 화살을 쏘는 모습으로 바뀐다. 그것은 보다 후대에는 총으로 바뀌어 있다.
 이와 함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기마상과 마차 형상의 등장이다. 이는 말의 가축화 과정과 이용 방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자 단서들이다. 암각화 속에 등장하는 기마상은 이른 시기의 경우 안장도 고삐도 없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서 기마상 가운데는 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모습이 그려지며, 보다 후기가 되면 등자가 보이고 또 중무장한 군인이 마면갑과 마갑을 두른 말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전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활이나 창을 들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장면과 전투용 도끼를 들고 싸우는 모습, 투구를 쓰고 싸우는 모습, 갑옷을 입은 기마전사, 개마무사 및 기마전 등은 무기의 발전 방식 그리고 그 변화 과정 등을 살피게 해 준다. 더욱이 이러한 주제의 그림들이 분포하는 지역 등을 통해서 그림의 제작 주체, 당시의 사회 상황과 지역 간의 긴장 관계 등도 살펴낼 수 있다.
[도면 6] 마차(이흐 베르흐)
 마차 형상도 같은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른 시기의 마차는 전개도식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마차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지각 방식 및 조형 원칙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피게 해 주는 것들이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물체 중심의 지각 방식을 통하여 사물을 형상화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가 되면서 원근법적인 공간 인식을 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도 급변하였던 것이다. 즉, 마차는 측면에서 포착한 것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바로 일시점 화법의 이용이다.
4. 한국 선사 암각화 및 고대 고분벽화와의 상관성
1) 한국 선사 시대 암각화와의 상관성
 몽골의 암각화는 인근 지역의 선사 시대 암각화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주변 지역과의 유사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인종과 어족 그리고 문화적 기반, 즉 자연환경 및 경제 구조가 같은 경우에도 그러한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민족이나 언어는 다르지만 세계관이나 종교가 같은 경우에도 유사한 현상이 드러나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대 한국인들은 선사 및 고대 몽골 고원의 문화 주인공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친연성이 확인된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적하여야 할 것은 인종·언어·종교적인 친연성이며, 그러한 성질은 두 민족의 기층문화 속에 용해되어 있다. 따라서 생활 무대는 서로 다르지만, 두 지역의 물질 및 정신문화 속에서 동질의 문화소들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선사 시대 암각화 속에는 자연주의적인 형상, 추상화된 형상 그리고 기하학적인 형상들을 모두 살필 수 있다. 울산의 대곡리 암각화는 자연주의적 형상으로 그려진 것이며, 같은 울산의 천전리 암각화 속에는 마름모꼴을 중심으로 하는 기하학적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소위 ‘양전동’식 암각화의 중심 도상은 특정집단의 엠블럼을 형상화한 것이며, 금장대와 칠포리 그리고 수곡리 등 경상북도 동해안과 내륙에서 발견된 암각화 속의 사람과 호랑이 발자국 그리고 여성 생식기 형 등은 상징적인 도상이다.
 이 가운데서 천전리 암각화의 경우, 마름모, 타원형, 동심원 등 기하학적인 형상들과 함께 사람의 얼굴, 원명과 추명을 포함한 글씨 그리고 보다 후기의 선 그림 등이 하나의 암면 속에 시기를 달리하면서 차례로 새겨져 있다. 안동 수곡리에서는 사람 발자국과 말발굽이, 포항 칠포리에서는 여성 생식기가, 경주 금장대에서는 사람과 호랑이 발자국, 여성 생식기 등이 다른 형상들과 함께 새겨져 있다.
[사진 24] 천전리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몽골의 흡수굴의 후흐딘 오보나 친군자빈 이흐 바가 모나 그리고 헨티 아이막 내의 라샨 하드나 우주르 하드 암각화 속에서도 유사한 형상들이 그려져 있었다.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한 기하학적인 형상은 라샨 하드 속에 그려져 있었다. 사람과 호랑이 발자국은 후흐딘 오보, 친군자빈 이흐 바가 모나, 라샨 그리고 우주르 하드 암각화 속에 그려져 있었고, 말발굽 형상은 후흐딘 오보와 라샨 하드 등지에 그려져 있었으며, 여성의 생식기 형상은 후흐딘 오보와 라샨 하드 등에서 각각 살필 수 있었다.
[사진 25] 말발굽 형상(수곡리)
 이렇듯 양 지역의 암각화 가운데는 같은 제재와 양식의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양 지역 간의 차이는 수곡리와 금장대의 경우 발가락이 선명한 발자국이 표현되었으나, 후흐딘 오보 일대의 암각화 속에는 신발자국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성 생식기 형의 도상은 역삼각형 또는 타원형의 아랫부분에 세로 선이 그어진 것으로, 양 지역이 모두 같은 모양을 띠고 있다. 말발굽 형상은 그 생김새가 말굽과 닮은꼴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기본 구조는 같을 지라도 지역 별로 다양한 변형을 보이고 있다.
 양 지역 형상 사이에서 살펴지는 양식 및 형태상의 이질성은 지역적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발자국을 제외하면, 양 지역 사이에서 살펴지는 차이는 형상의 크기가 다른 점, 깊거나 얕게 새긴 점 그리고 굽었거나 펴진 각도 등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특정 신체의 부분을 형상화하였거나 이미 더 이상 추상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부호화시켰기 때문이다.
[사진 26] 금장대 암각화(부분)
 말발굽이나 여성 생식기 그리고 사람과 호랑이 발자국 등은 비단 몽골뿐만 아니라 하카스코 – 미누신스크 분지와 내몽골 지역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따라서 보다 광역의 문화권 속에서 이들 제재의 분포 범위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그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또 지속적으로 표현되어 왔던 것들이다.
[사진 27] 여성 생식기 형상(칠포리)
 따라서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 앞으로도 유사한 유형의 그림들이 발견될 가능성은 높다. 지금까지의 조사 연구를 통하여 한국 선사 암각화와 동일계 주제의 분포 범위에 대한 새로운 지도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계통성 추적을 위한 자료들이 하나씩 축적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2) 고구려 고분 벽화와의 상관성
 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 속에는 흉노 이후 튜르크 시대의 그림들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시기적으로는 기원 전후에서부터 8세기 사이의 약 1,000년간에 그려진 것이다.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은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소재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것도 있고 또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주제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도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수렵도와 마차도 등이다. 후자의 예로는 깃발을 든 병사와 기마전투도 그리고 개마무사 등이다.
 암각화 속의 수렵도는 활을 든 사냥꾼, 동물을 겨냥한 모습 그리고 쏘는 모습 등 다양하게 그려졌으며, 이후 기마술의 발달과 더불어 말을 타고 사냥감을 향해 시위를 당기려는 사냥꾼이 등장한다. 그러나 고대 암각화 속 수렵도는 청동기나 철기시대와는 크게 다른데,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감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도망가는 동물이나 사냥꾼이 탄 말 그리고 사냥감을 추격하는 사냥개 등의 다리가 동일하게 그려졌는데, 그것은 마치 나는 듯 앞뒤 다리를 넓게 벌린 모습이다. 게다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예를 몽골의 차강 골이나 남부시베리아의 하카시야에 있는 술렉크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이 암각화 속에는 기마사냥꾼들과 사냥개를 이용한 몰이사냥 그리고 도보 사냥꾼들이 사슴, 산양, 멧돼지 등을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주 039
각주 039)
그밖에도 기마무사와 낙타가 끄는 마차 등도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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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이 타고 있는 말이나 도망가는 사슴 형상에서 필사적으로 쫓고 또 도망가는 모습을 살필 수 있으며, 사냥꾼은 뒤를 돌아보며 화살을 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사진 28] 수렵도(술렉크)
 이러한 유형의 그림을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수렵도 가운데서도 살필 수 있다. 무용총이나 덕흥리 그리고 장천1호분 등의 벽화 가운데는 수렵도가 그려져 있는데, 모두 사냥꾼이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동물을 추격하는 모습이다. 또한 창을 든 도보 사냥꾼이나 사냥개를 이용한 몰이사냥 장면도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산과 나무 등도 같이 그려져 있는데, 이로써 사냥터의 공간성을 살필 수 있다.
[사진 29] 수렵도(무용총)
 고분벽화 속에 그려진 동물 형상의 동작감을 살펴보면, 모두 대동소이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암각화 속의 그것처럼, 앞다리는 앞으로 크게 벌리고 뒷다리도 뒤로 쭉 뻗은 모습이다. 그래서 마치 장애물을 뛰어넘어 공중을 날듯이 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동작감은 도망가는 동물이나 추격하는 말에서 공통적으로 살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상의 사냥꾼이 뒤를 돌아보며 사냥감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암각화 속에는 청동기시대부터 마차가 그려지기 시작하였다. 마차는 이 지역 주민들의 물질문화 발달과 계급 분화의 과정을 살피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차의 모양을 통해서 운송수단의 발전 과정을 살필 수 있으며, 타고 있는 사람과 그것을 끌거나 호위하는 사람 등을 통해서 위계질서, 정치 군사적 편제, 사회 및 국가의 규모 등의 문제까지도 복원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암각화 속에 그려진 마차의 고형은 대부분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을 개체적으로 포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소위 ‘다시점 화법’에 의거하여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흉노시대가 되면, 마차 그림은 급변하여 하나의 시점(一視點)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바뀐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세부들을 다시 하나로 조합하여 그리던 방식(多視點畵法)과는 달리 화가가 시점을 하나로 고정시키고 바라본 모습이 형상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몽골의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에 그려진 이흐 베르흐 암각화 속의 마차 그림과 같은 아이막의 우인츠 솜 야마느이 오스 암각화 속에 그려진 마차 그림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차는 화려하게 치장을 한 모습이며, 모두 행렬을 이루고 있다. 이흐 베르흐의 경우는 소가 끌고 있으며, 야마느이 오스의 경우는 말이 끄는데, 그 가운데는 세 필의 말이 끄는 것도 있다. 말은 모두 빠르게 걷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그런데 고구려의 고분 속에는 역시 같은 유형의 마차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 무용총 그리고 쌍영총 가운데서 소가 끄는 우차를 살필 수 있다.
[사진 30] 우차(덕흥리 고분 벽화)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도 시점은 하나로 고정되었으며, 그것은 약 70도 또는 110도 정도로 엇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따라서 차체는 전면과 측면이 모두 보이며, 바퀴도 앞과 뒤의 것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또한 그것을 끌고 가는 소의 동작감도 야마느이 오스의 그것과 동일하며, 호위하는 시동이나 마부 등도 하나의 기저선 위에 도열해 있다.
 앞 시대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주제 가운데는 개마무사, 전투도, 깃발 또는 창을 든 기병 등이 있다. 예를 들면, 호브드 아이막의 조스틴 하드 암각화 속에는 네 명의 창을 든 개마무사가 그려져 있다. 또한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의 돈드 햐린 혼드 암각화 속에는 창을 든 기마병들이 서로 대치해 있고 또 한 쪽에서는 창기병이 적을 향해 창을 찌르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주제의 그림들을 살필 수 있다. 개마무사는 쌍영총, 약수리, 안악 3호분, 덕흥리 그리고 개마총 등지에서 살필 수 있고, 전투도는 삼실총과 통구 12호분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마무사는 마갑과 마면갑 등의 보호 장구를 갖춘 말을 탄 무장 기병을 이르는데, 이와 같이 중무장한 개마무사의 등장은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극심한 격변기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암각화와 고분 벽화 사이의 이와 같은 제재들은 양식적으로도 동질성을 띠고 있다. 수렵도나 마차도 등은 중앙아시아의 선사 시대 암각화 속에서 일찍부터 지속적으로 표현되어 온 주제들이며, 그것은 고대에 들어오면서 고분 벽화, 화상전 등에서도 동일한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로써 중앙아시아 고대 미술의 주제 및 양식에서 일관성이 있음을 살필 수 있고, 그것은 속도감의 표현이고 일시점 화법의 정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면 7] 개마무사(조스틴 하드)
[사진 31] 개마무사(덕흥리 고분 벽화)
5. 맺음말
 이렇듯 몽골의 선사 및 고대 암각화 속에는 각 시대별 문화상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지각 방식의 변화까지도 살필 수 있는 단서들이 응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서 각 시기별로 문화의 주체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중요시 하였으며, 교체된 문화의 주인공들은 앞 시대와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2007년과 2008년도의 한·몽 공동 암각화 조사를 통해서 몽골 바위그림의 세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몽골 선사 시대 바위그림의 세계는 주제, 제작 기법 등의 차이를 통해서 크게 두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서쪽의 암각화권이고 다른 하나는 중동부 지역의 바위그림권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중동부 지역에서도 암각화가 제작되었지만, 아직까지 서부 지역에서는 바위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구석기 시대부터 고대 암각화에 이르기까지 중심 제재 및 주제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제재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대양식과 정신 및 물질문화의 세계와 그 발전 과정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양식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범 중앙아시아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그런 중에서도 사슴 돌이나 석인상과 같은 지역적 특수성을 창출하기도 하였음을 살필 수 있었다.
 몽골 바위그림 속에는 한국 선사 시대의 암각화 및 고구려 고분벽화와 친연성을 보이는 제재 및 주제들이 적지 않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사람과 동물 발자국 그리고 여성 생식기 등의 상징적인 형상이 양 지역에서 관찰되는 점과 수렵도, 개마무사 그리고 전투도와 마차도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점은 한국 선사 및 고대 문화가 북방 수렵 및 유목민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 각주 033)
    동북아역사재단,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2008, 『몽골 고비알타이의 암각화』, 동북아역사재단. 바로가기
  • 각주 034)
    사슴 돌은 선돌에 사슴을 중심으로 하여 동그라미, 무기 등이 그려져 있으며, 제작 시기는 학자 간에 이견이 있지만, 기원전 7~기원전 4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현재까지 약 700여 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약 600여 기가 몽골에서 발견되었다. 바로가기
  • 각주 035)
    盖山林, 盖志浩, 2002, 『內蒙古岩畵的文化解讀』, 北京圖書館出版社, 323~328쪽. 바로가기
  • 각주 036)
    Ц.Доржсүрэн, Монголын хүрлийн үеийн хадны зураг, 13쪽. 바로가기
  • 각주 037)
    Э.А.Новгородова, 1984, Мир петроглифов Монголии, М., 30~36쪽. 바로가기
  • 각주 038)
    이 사슴 돌이 주목되는 이유는 사슴 돌이 구현하는 상징의 세계 및 튜르크 시대에 대량으로 제작된 석인상의 연원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39)
    그밖에도 기마무사와 낙타가 끄는 마차 등도 그려져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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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바위그림과 한국 선사 및 고대 미술의 상관성 자료번호 : ag.d_0002_001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