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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편자장석호
 

Ⅰ. 머리말

 

 조스틴 하드, 몽골의 서쪽 호브드 아이막(행정단위 ‘道’에 해당) 에르뎅 부렝 솜(행정단위 ‘郡’에 해당)에 있는 암각화 유적지의 이름이다. 이 암각화 속에는 사슴, 낙타, 사냥꾼 등과 함께 기마인물상 다섯 개가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서 기마인물상[사진 1, 도면 1]을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는 마름모꼴이며, 그것의 가운데와 오른쪽 꼭짓점에는 선으로 된 끝 장식이 달려 있다. 이들은 어깨가 넓고 몸통에서 다리까지 통으로 연결된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옷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선이 배열되어 있다. 또한 왼손으로는 말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창을 들었다. 오른 발 하나만 그려져 있고, 왼발은 생략되었다.

사진
- 개마 무사(조스틴 하드 암각화, 에르뎅 부렝 솜, 호브드 아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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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개마 무사(조스틴 하드 암각화, 에르뎅 부렝 솜, 호브드 아이막)


 이러한 생김새를 통해서 우리들은 이들이 투구와 갑옷 그리고 창으로 중무장한 기마 전사들임을 알 수 있다. 각 전사들이 들고 있는 창은 가느다란 대각선으로 표시하였는데, 그 끝에서 약간 아래쪽에 동그랗게 생긴 술 장식이 매달려 있다. 전사들이 타고 있는 말도 머리와 목 그리고 몸통 부분을 각각 세로선과 격자무늬로 표현하였는데, 이로써 그것이 마면갑과 말 갑옷 등의 보호 장구를 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의 배 부분에는 창끝의 술 장식과 같은 모양의 마구가 매달려 있다. 그것의 위치 및 생긴 모양을 놓고 볼 때, 등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001]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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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脇淳子(2002), 『モンコ ルの歷史』, 刀水書房, 6쪽; 니시노 히로요시 지음, 김석희 옮김(2007),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북북서, 84~85쪽.


 우리들은 이 암각화 속의 기마인물상을 통해서 알타이 산맥 등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였던 고대 유목민족의 개마 무사를 살필 수 있다. 그야말로 당대 최신의 보호 장구와 무기로 중무장한 철갑기병임을 알 수 있다. 추측컨대 이들은 당시의 수많은 전투 속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 영웅들이었을 것이다. 제작 주체들은 그 영웅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바위 속에 그 모습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이 형상들을 현지의 연구자들은 2세기 이후 이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유목민 유연족이 남긴 것으로 보고 있다.

도면 1
- 개마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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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1

    개마 무사

사진 2
- 개마 무사(덕흥리 고분벽화, 고구려연구재단,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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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개마 무사(덕흥리 고분벽화, 고구려연구재단, 2004)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연은 선비계의 일파 [주003]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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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기는 周偉州의 주장 중 유연은 선비와 흉노족의 융합을 거친 후 형성된 종족이라는 시각을 소개함(『尋勒與柔然』; 손진기 지음, 임동석 옮김(1992),『동북민족원류』, 동문원

로 304년에 남흉노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552년에 튜르크[突厥]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246년간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한 유목민족이다. 이들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동으로는 다이싱안링[大興安嶺]에서 서로는 톈샨[天山]산맥까지 광활한 지역이 그들의 강역이었다고 한다. [주004]
각주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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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脇淳子(2002), 앞의 책, 31쪽.

따라서 우리들은 이 암각화를 통해서 지금부터 1천 수 백 년 전의 고대 유연족 용사들과 시공을 초월하여 조우하는 셈이며, 당시 이들이 썼던 투구와 갑옷, 들고 싸웠던 창, 말의 보호 장구 그리고 개마 무사의 모습까지도 살필 수 있다.

사진 3
- 사슴돌(차츠인 에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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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사슴돌(차츠인 에레크)


 그런데 우리들은 ‘덕흥리’나 ‘안악 3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서 이와 아주 흡사한 형상들을 살필 수 있다[사진 2]. 고분벽화 속의 개마 무사와 암각화 속의 그것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볼 때, 투구나 갑옷, 창끝의 술 장식과 같은 무구(武具)의 세부 생김새, 그림이 그려진 공간, 제작 도구와 기법 등을 제외하면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양 지역 사이에 실재하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감안한다면, 서로 간에 살펴지는 동질성 때문에 오히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알타이 산맥 동남쪽 기슭의 암각화와 한반도의 북부 지역에 남겨진 고분벽화 속의 개마 무사 사이에서 살펴지는 유사성을 통해서 이 광활한 지역의 고대 문화가 서로 동질성을 띠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같은 시대의 동일한 문화권 속에서 발견된 조형 예술 속에는 동질의 문화상이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다시 말해, 같은 유형의 물질문화나 같은 양식의 조형예술이 발견되는 공간이란 과거 어느 특정 시기에 동일한 문화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남부시베리아에서 오쿠네보 시대의 ‘이즈바야니에’이며,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스키토-시베리아의 동물양식’이고, [주006]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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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V. 뻬레보드치꼬바, 정석배 역(1999), 『스키타이 동물양식』, 학연문화사.

몽골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 ‘사슴돌’[사진 3]이다. 이러한 유형의 조형 예술이 분포하는 범위는 대체적으로 당대 해당 문화의 권역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상기 조스틴 하드 암각화에서 살펴 본 개마 무사도 이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신소재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암각화는 이미 오래 전에 발견되었고, 개마 무사라는 주제의 특이성으로 인해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한국의 선사 및 고대 학계에서는 이 그림을 포함하여 북방 지역의 암각화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동서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국가 간의 교류가 차단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따라서 한반도의 고대 및 선사 문화와 북방 지역과의 관계를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4
- 대곡리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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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

    대곡리 암각화


 한반도에서 발견된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울산광역시 소재 대곡리[사진 4]와 천전리 등의 암각화들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이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들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무(無) 문자 시대의 사회상 및 문자로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 등을 적나라하게 그려 놓고 있어서 당시의 사회상을 복원시키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며, 그런 점에서 이들은 그야말로 그림문자(繪文字)인 셈이다. 그림 속의 형상들을 통해서 자연 환경과 동식물들의 서식 상황, 사람들의 모습, 경제 활동, 각종 도구를 포함한 물질문명의 발전 정도, 종교 활동과 의례 그리고 세계관 등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의 제재와 양식을 분석하여 주변 지역과의 교류 관계 및 문화적 동질성 등의 문제를 논할 수 있다.

사진 5
- 우차(이흐 베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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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5

    우차(이흐 베르흐)

도면 2
- 우차(이흐 베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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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2

    우차(이흐 베르흐)


 바로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소위 ‘양전동’식이라 불리는 한반도 내 일부 암각화 속의 중심 도상 [주009]
각주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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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호(2007), 「오르도스 암각화와 한국의 암각화」, 『오르도스 청동기 문화와 한국의 청동기 문화』, 한국고대학회, 280~302쪽.

을 러시아의 아무르 강변에 소재하는 ‘사카치 알랸’ 암각화 속의 얼굴 형상이나 [주010]
각주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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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창(1972), 「고령양전동암화조사약보」,『고고미술』 제112호, 25~40쪽.

내몽골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북지역 암각화 속의 인면 형상과 직접 비교하기도 하였다. [주011]
각주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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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권(1994), 「선사 시대 한국과 중국의 암각화 비교 연구」,『미술사학연구』204, 한국미술사학회.

문제는 사카치 알랸이나 중국 동북지역 암각화의 문화사적 기반 및 성격 그리고 비교하고자 하는 도상의 본질적 특성 [주012]
각주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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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아른하임이 『미술과 시지각』(홍성사) 가운데서 주장한 말로, ‘본질적 특성’이 구현될 때 감상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를 뻬레보드치코바는 ‘속성’으로, 쉐르는 ‘표준적 블록’으로 파악하여 논한 바 있다.

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의 원류를 그와 같은 곳에서 구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그와 관련한 반론들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었고, 결국 논의는 원점에서 맴돌고 말았다. [주013]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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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호(2007), 앞의 글, 280~281쪽.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한반도 선사미술의 성격 규명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관련한 연구에서는 중국 대륙을 지나고 톈샨과 페리가나 산맥을 넘어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의 새 깃털이 달린 모자(鳥翼冠)를 쓴 사람 형상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등 관련 학계가 이 형상을 주목하는 이유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도 새 깃털을 머리에 꽂은 사람이나 그런 유의 모자를 쓴 사람 형상이 살펴지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에 보이는 ‘새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고구려의 사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면서, 당시 고구려인의 복식뿐만 아니라 국제교류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활용하고 있다. [주014]
각주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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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룡(1976),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사절단」,『미술사연구』129~130호, 한국미술사학회, 162~169쪽; 우덕찬(2004), 「6~7세기 고구려와 중앙아시아 교섭에 관한 연구」, 『한국 중동학회 논총』 24권2호, 한국중동학회, 237~252쪽; 권영필(2008), 「아프라시압 궁전지벽화의 ‘고구려 사절’에 관한 연구」,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동북아역사재단, 14~59쪽; 최광식(2008), 「고구려와 서역의 문화교류」, 『중앙아시아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동북아역사재단, 102~136쪽.

그리고 이것 밖에는 여타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살피는데 필요한 비교 연구의 자료들이 없는 듯하다. [주015]
각주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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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묘, 둔황 22호 벽화 등의 그림 가운데도 조익관을 사람형상이 있으며, 연구자들은 고구려인으로 보고있다(최광식(2008), 위의 글, 126쪽.


 그러니까 우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리와 문화사적으로 친연성이 농후한 북방 지역의 선사 및 고대 미술의 세계 그리고 연구 현황 파악에 그만큼 소홀히 하여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절감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은 북방 지역 선사시대 바위그림을 조사하고 있다. 우리의 조사 목적은 중앙아시아 선사 및 고대 미술의 보편성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한국 선사 및 고대 문화의 독자성을 추출해 내기 위함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의 하카스코-미누신스크 분지와 투바 지역의 암각화 조사에 이어, [주016]
각주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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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물로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동북아역사재단, 2007)이 발간되었다.

2007년도에는 몽골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 올 솜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의 암각화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하여 우리들은 학술적 차원에서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선사시대 암각화를 지도 속에 추가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형상들을 채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지역 바위그림 유적지의 입지 조건, 주제의 구성 방식 그리고 양식 등이 선사 및 고대 중앙아시아 바위그림의 보편성과 부합하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지역적 독자성이 깃들어 있는 흥미로운 형상들을 학계에 보고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중앙아시아라고 하는 광역의 문화권 속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 6
- 우차(덕흥리, 주영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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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

    우차(덕흥리, 주영헌, 1986)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조스틴 하드 암각화 속의 개마 무사[사진 1, 도면 1] 이외에도 예를 들면, 고비 알타이 아이막 바양올 솜의 ‘이흐 베르흐’ 산 암각화 가운데서는 소가 끄는 우차 행렬도[사진 5]를 촬영하고 또 그 형상을 채록할 수 있었다[도면 2]. 같은 솜의 ‘돈드 햐린 혼드’ 암각화 가운데서는 깃발을 든 기마병들[사진 7]과 창을 들고 싸우는 기마전투도[사진 8, 도면 3]도 역시 촬영하고 채록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형상들을 통해서 알타이 산맥과 고비 알타이 일원에서 꽃 핀 물질문화의 발달 단계와 사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암각화 속에 그려진 형상 하나하나는 중앙아시아의 선사 및 고대사를 복원시켜 나가는데 더 없이 중요한 단서들이 되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사진 7
- 깃발을 든 기마병(돈드 햐린 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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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7

    깃발을 든 기마병(돈드 햐린 혼드)

사진 8
- 전투도(돈드 햐린 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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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8

    전투도(돈드 햐린 혼드)

도면 3
- 전투도(돈드 햐린 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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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면 3

    전투도(돈드 햐린 혼드)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바위그림 속에 마차가 그려지기 시작하지만, 소가 끄는 우차가 표현된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주017]
각주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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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차가 마차보다 고형으로 편년되지만(宮脇淳子(2002), 앞의 책, 5쪽), 마차가 등장한 이후 측면에서 포착하여 그린 우차 형상의 발견 사례는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암각화 속의 마차는 일반적으로 둘 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모습이며, 그것은 주로 다시점(多視點) 화법에 의해 전개도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우차는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며, 그래서 차체와 그 장식 그리고 바퀴 등의 관계를 분명히 살필 수 있다. 그것은 곧 이 그림의 제작 집단이 이전과는 다른 지각 및 표현 방식을 갖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형상을 통해서 마차의 외형 및 이용 방법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되살려 낼 수 있다. 특히 이 형상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와 유사한 형상이 덕흥리 등 고구려 고분 벽화[사진 6] 속에서도 살펴지기 때문이다.
 돈드 햐린 혼드 암각화 속의 깃발을 든 기마병[사진 7]과 전투도[사진 8, 도면 3]도 비단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당시 중앙아시아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같은 계통의 그림들을 우리는 레나 강 상류의 ‘쉬쉬키노’, 예니세이 강변의 ‘술렉크’와 ‘바야르’ 산맥 등지의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주018]
각주 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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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2007), 앞의 책, 168쪽

레나 강변의 깃발을 든 기마병이나 술렉크의 철갑기병 등은 당시 튜르크계 쿠르이칸(骨利幹, ÍÛ˚͇Ì)이나 키르기스족이 남긴 암각화의 특징적인 제재이자 주제이기 때문이다. 깃발을 든 기마병이나 창을 들고 서로를 겨냥한 전투도 등을 통해서 흉노 이후 튜르크까지의 약 1,000여 년 동안 문화 주체의 교체 및 민족 이동과 그에 따라 파생한 전투로 인하여 이 지역이 격동의 시기였음을 살필 수 있고 아울러 무기와 전투 방식, 특정 집단의 전사 등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9
- 공성도(삼실총, 전호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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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9

    공성도(삼실총, 전호태, 1999)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와 같은 형상들이 우리나라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서도 그대로 살펴진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실총의 ‘공성도’ 중에는 창을 든 기병이 적을 쫓는 모습[사진 9]과 적의 머리를 베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으며, [주020]
각주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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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2007), 앞의 책, 140쪽

안악3호분 속의 행렬도 가운데는 창을 든 기마병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사진 10]을 살필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약술한 조스틴 하드 암각화 속의 개마 무사[사진 1, 도면 1]들도 덕흥리나 안악3호분 등 고분벽화[사진 2] 속에서 확인한 바 있다. 한마디로 말해 고대 중앙아시아의 전 지역에서는 군사력 증대가 중대한 과제였으며, 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이 시대적 이슈였음을 예의 그림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중앙아시아의 선사 및 고대 미술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도상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서 문헌 사료가 없는 이 지역의 선사 및 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한 중국 측 문헌사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 그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함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앙아시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은 소위 ‘스키토-시베리아의 세계’ 이후 여러 차례 문화의 주인공이 교체되었지만, 언제나 북방 기마유목민이 이 지역의 패자였으며, 이들은 만리장성을 세우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그것을 넘나들며 유목국가를 세웠거나 중원 지역의 국가들과 전쟁과 교류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그들의 문화상을 선명하게 각인시켜 놓았다. [주021]
각주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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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다 이사오 지음, 김숙경 옮김(2007), 『흉노』, 아이필드, 32~33쪽; 니시노 히로요시 지음, 김석희 옮김(2007), 앞의 책, 301쪽.


 물론 우리들은 그 흔적을 멀리는 레나 강 상류, 예니세이 강 중상류, 카자흐스탄의 동북부, 오늘의 중국 북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바위그림과 거석 기념물 그리고 지표 속에서 발굴한 각종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오늘날의 국경선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권이 있었으며, 동시에 특정 지역사가 단선적인 문화전통을 기반으로 성립될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 준다. 암각화 속의 몇몇 도상들은 고구려 초기 고분벽화가 북방 지역 유목민의 문화상과 훨씬 더 많은 친연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런 점에서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에 남겨져 있는 선사 및 고대 바위그림들은 비단 이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상고사의 공백을 채워줄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지난 2007년도 여름에 고비 알타이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한·몽 공동 암각화 조사단이 수행한 조사 결과물인 이 자료집이 선사 및 고대 문화의 연구는 물론이고 답보 상태를 띠고 있는 고분벽화의 세세한 시대별 문화상 구분, 주변 지역과의 관계, 고분벽화의 양식상의 특징 등을 해명하는데 커다란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사진 10
- 행렬도(부분, 안악3호분, 고구려연구재단,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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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0

    행렬도(부분, 안악3호분, 고구려연구재단, 2004)


 

주 001
宮脇淳子(2002), 『モンコ ルの歷史』, 刀水書房, 6쪽; 니시노 히로요시 지음, 김석희 옮김(2007),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북북서, 84~85쪽.
주 003
손진기는 周偉州의 주장 중 유연은 선비와 흉노족의 융합을 거친 후 형성된 종족이라는 시각을 소개함(『尋勒與柔然』; 손진기 지음, 임동석 옮김(1992),『동북민족원류』, 동문원
주 004
宮脇淳子(2002), 앞의 책, 31쪽.
주 006
E. V. 뻬레보드치꼬바, 정석배 역(1999), 『스키타이 동물양식』, 학연문화사.
주 009
장석호(2007), 「오르도스 암각화와 한국의 암각화」, 『오르도스 청동기 문화와 한국의 청동기 문화』, 한국고대학회, 280~302쪽.
주 010
이은창(1972), 「고령양전동암화조사약보」,『고고미술』 제112호, 25~40쪽.
주 011
임세권(1994), 「선사 시대 한국과 중국의 암각화 비교 연구」,『미술사학연구』204, 한국미술사학회.
주 012
R. 아른하임이 『미술과 시지각』(홍성사) 가운데서 주장한 말로, ‘본질적 특성’이 구현될 때 감상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를 뻬레보드치코바는 ‘속성’으로, 쉐르는 ‘표준적 블록’으로 파악하여 논한 바 있다.
주 013
장석호(2007), 앞의 글, 280~281쪽.
주 014
김원룡(1976),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사절단」,『미술사연구』129~130호, 한국미술사학회, 162~169쪽; 우덕찬(2004), 「6~7세기 고구려와 중앙아시아 교섭에 관한 연구」, 『한국 중동학회 논총』 24권2호, 한국중동학회, 237~252쪽; 권영필(2008), 「아프라시압 궁전지벽화의 ‘고구려 사절’에 관한 연구」,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동북아역사재단, 14~59쪽; 최광식(2008), 「고구려와 서역의 문화교류」, 『중앙아시아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동북아역사재단, 102~136쪽.
주 015
이현의 묘, 둔황 22호 벽화 등의 그림 가운데도 조익관을 사람형상이 있으며, 연구자들은 고구려인으로 보고있다(최광식(2008), 위의 글, 126쪽.
주 016
조사결과물로 『중앙아시아의 바위그림』(동북아역사재단, 2007)이 발간되었다.
주 017
우차가 마차보다 고형으로 편년되지만(宮脇淳子(2002), 앞의 책, 5쪽), 마차가 등장한 이후 측면에서 포착하여 그린 우차 형상의 발견 사례는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주 018
동북아역사재단(2007), 앞의 책, 168쪽
주 020
동북아역사재단(2007), 앞의 책, 140쪽
주 021
사와다 이사오 지음, 김숙경 옮김(2007), 『흉노』, 아이필드, 32~33쪽; 니시노 히로요시 지음, 김석희 옮김(2007), 앞의 책,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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