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계비의 위치
- ▶ 백두산정계비는 원래 소백산에 있었다.
- ▶ 백두산정계비는 세워질 때부터 1931년까지 백두산 기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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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백두산정계비close백두산정계비
1712년 조선과 청국의 조사단이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지역을 조사하고 백두산 동남쪽 기슭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 새겨진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라는 구절 중 토문강이 어느 강을 가리키는 가라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1931년 비석은 사라지고 현재는 받침돌만 남아 있다.
를 소백산에서 백두산으로 옮겼다는 ‘정계비 이동설’을 주장하여 국경문제에 새로운 파문을 던지고 있다. ‘정계비 이동설’에 따르면 당시의 기록과 지형, 경계 표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두만강이 시작하는 지류는 홍단수(紅丹水)고 백두산정계비의 원래 위치는 소백산 정상이다. 정계비 건립 직후 조선측 관리들이 정계비를 백두산 남쪽 기슭으로 옮기고 정계비와 토문강 사이에 목책·돌무더기·흙무더기 같은 경계 표지를 설치하여 경계를 조작하였다고 한다. 19세기 이래 국경회담에서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경계를 정했음을 생각할 때, 이 논리대로라면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20km가량 내려온 소백산이 정확한 국경이 되는 셈이다.
‘정계비 이동설’은 이미 일·청 간의 간도문제 교섭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인데, 최근에는 이를 더욱 정교화하여 4차례에 걸친 위치 이동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나 고지도를 살펴보면 ‘정계비 이동설’이 허구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백두산정계비 건립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기록이나 백두산정계비 건립 이후 백두산에 오르면서 백두산정계비를 보았던 사람들의 기록에서 백두산정계비의 위치는 대체로 일치한다.
▲ 백두산정계비도(1712년, 서울대 규장각 소장) 설명이 지도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직후 청의 관리 목극등(穆克登)이 수행원에게 백두산 및 압록강, 두만간의 지류를 그리게 하고 이를 모사하여 조선의 관리 박권(朴權)에게 건네준 것이다. 백두산 기슭에 세워진 정계비가 강원비(江原碑)로 표기되어 있으며, 소백산은 정계비 서남쪽에 대각봉, 연지봉과 나란히 별도의 봉우리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