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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산산성; 장루자산성(靑龍山山城; 張樓子山城)

 
  • 구분유적
  • 시대고구려 후기
  • 문서번호S000886
  • 위치(출토지)遼寧省 鐵嶺縣 崔陣堡鄕(李家堡鄕) 張樓子村
  • 지역철령(鐵嶺市)
  • 유형성곽>산성
  • 형태사항성벽 둘레 2,213m(주영향·왕조화 2001)│남북, 동서 너비 각각 1㎞(조계림·왕철군 1994)│둘레 약 4㎞(여호규, 1999)│산성 각 변의 길이 1㎞[2리, 조계림·배약군 1983)│둘레 2㎞[4화리(華里), 조계림·배약군 1983; 왕우랑·왕굉북 1994] 
 

출토지

 

요녕성 철령현 최진보향(이가보향) 장루자촌(遼寧省 鐵嶺縣 崔陣堡鄕(李家堡鄕) 張樓子村)

 

조사내용

 

 
:1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0철령시박물관
(鐵嶺市博物館)
여러 차례 조사함.
2007 요녕성 성급보호문화재로 지정됨.

 

구조특징

 

청룡산산성은 6개의 작은 산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해 이루어졌음. 지세는 남쪽이 높고 북쪽은 낮으며, 성 안에 남북방향의 작은 언덕산이 있어 성내를 자연적으로 동서 두 부분으로 나누므로, 현지 주민들은 “동성(東城)”, “서성(西城)”이라고 부름. 성내 지세는 비교적 평탄하여 비록 산중에 있지만 성 바깥쪽 평지에 비해 10여m 높을 뿐이어서 평지성으로 여길 수 있을 정도임(조계림·왕철군, 1994). 청룡산산성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음. 성벽은 토축으로, 산등성이에 연결하여 축조했음. 자연적으로 낮고 오목한 곳은 인공적으로 평평하게 메웠음. 그러므로 성벽은 비교적 평평하고 완만하며, 기복이 심하지 않음. 성벽 기초의 너비는 약 8m, 윗너비 약 2m, 잔고 약 3~4m임(조계림·왕철군, 1994). 산성의 평면은 대체로 방형(조계림·왕철군, 1994)인데, 정방형(여호규, 1999), 타원형(주향영·왕조화, 2001)으로 보기도 함.
서성(西城) 구역은 남북방향의 기다랗고 좁은 골짜기(溝谷)임. 골짜기의 너비는 약 20m이며 길이는 서벽과 대략 같음. 골짜기 내 지세는 특히 평탄하며 계곡 입구(溝口) 북단은 비교적 좁아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성안의 성(城中之城)”을 이루고 있음. 그 위치가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골짜기는 비교적 규정적이며, 현지인들은 이 곳을 땅의 형상을 따라 “마권구(馬圈溝)”라 부름.
동성(東城) 구역은 상대적으로 넓은데 현재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음. 동성 구역 중부에는 동서방향의 말안장 모양의 등성이(山梁)가 있어 골짜기를 다시 남과 북 두 부분으로 양분하고 있음. 남부는 약간 작고 북부는 약간 큼.
성벽은 언덕산의 산등성이나 가장자리, 언덕산 사이의 평탄지 등에 축조하였는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임. 성벽은 겉모습만 보면 토성처럼 보이지만, 위치에 따라 다양한 축성법을 사용하였음(여호규, 1999). 토벽은 판축기법을 사용한 경우와 성토(盛土)만 한 경우로 분류됨. 동성 북벽이나 서성 북벽의 동단처럼 언덕산 사이의 평탄지에는 판축기법을 이용하여 토벽을 축조한 반면, 동성 남벽처럼 가장자리가 평탄한 언덕산에는 황갈색 사질토로 성토하여 성벽을 축조하였음. 특히 범하 연안으로 이어지는 동성 북벽은 청룡산산성에서 방어상 가장 취약한 곳이기 때문에 성벽을 튼튼하게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음. 3-4단의 계단상으로 성벽을 축조한 것, 성벽 가장자리에 막돌을 한 두겹 깔아 성벽을 보강한 것 등은 이를 보여줌. 동성 북벽 중간에는 배수시설을 만들기 위해 성벽을 판 절단면이 있는데, 흙을 층층이 다져 쌓은 층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음. 언덕산의 산등성이에는 대체로 토석혼축법으로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됨. 그렇지만 이 경우도 순수한 토석혼축성벽과 아래쪽에 돌로 성벽을 쌓은 다음 그위에 성토를 한 석축·토축 성벽으로 나누어짐. 동성의 동북모서리처럼 산등성이가 경사진 곳에는 성벽 윗면 곳곳에 성돌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대체로 돌과 흙을 섞어서 축조한 순수한 토석혼축성벽으로 추정됨. 반면 서성 북벽 서단의 경우, 성벽 하단부 가장자리에는 성돌이 드러나 있지만 윗면에는 성돌이 보이지 않음. 이로 보아 서성 북벽 서단은 석축·토축 성벽일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 서성 북벽 서단과 이어지는 서벽 북단에서 석축·토축의 성벽 단면을 확인할 수 있음. 한편, 성 북벽 안쪽에는 너비 5m 전후의 회곽도(마도)가 둘러져 있음. 안쪽 가장자리 하단부에 돌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안쪽 경사면에 돌로 기초부를 다진 다음 일정한 너비의 평탄한 회곽도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됨. 이와 같이 성벽의 입지조건에 따라 다양한 축성법을 활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였음.
북벽은 언덕산(山崗) 양쪽에 나란히 축조하여 “요(凹)”자 형태의 벽체를 형성하였음. 북벽의 잔고는 약 8m, 전체 길이 386m임. 성벽 기초부는 석축임. 성돌은 일반적으로 약간 다듬었으며, 규격은 대체로 30×15×20㎝ 정도임. 틈새는 마사토(山皮土)와 작은 깬돌을 채워 넣었음. 성벽 기단부의 너비는 11.7m, 높이는 0.7m임. 성벽은 석축 기초부 위에 판축토벽으로 사다리꼴을 띰. 판축한 흙은 황갈색의 마사토이며, 안쪽에는 대량의 깬돌(碎石)이 섞여 있음. 북벽 서단 부근의 성벽은 서남방향으로 약간 굽었는데 북벽 서단 북쪽의 언덕산(山崗) 구간의 성벽과 서로 맞물려 북문 문길(門道)을 형성하고 있음. 북벽 동단 부근에 트인 곳(豁口)이 한 곳 있음(K1). 북벽의 트인 곳(豁口)은 성안에서 저수지로 출입하기 위해 개설하였음. 이 곳(此口)을 통해 출입함으로써 산문(山門)을 경유하지 않고 각수(用水)에 접근할 수 있음. 또한 이 트인 곳(豁口 K1)은 성내 동북부의 평대(平臺)시설(속칭 점장대)과도 관련이 있음. 트인 곳(豁口 K1)의 위쪽 너비는 11m, 바닥 너비는 1.5m임. 북벽 중간 구간의 벽체 기초부에는 원래 저수지로 배수시설(泄水涵洞)이 있었는데, 1972년에 훼손되었고, 그 뒤 빗물에 침식되어 너비 10여m로 확대되었음. 바닥에는 배수시설(涵洞)을 축조하는데 사용된 돌이 산재해 있는데, 석괴는 단단하고 크며 잘 다듬었고 대부분 납작하고 길쭉한 모양(扁長條形)임. 배수시설(涵洞) 북단의 벽체 기초 아래에 샘(泉水)이 한 곳 있음. 샘위에는 대량의 석괴가 퇴적되어 있는데, 샘(泉水)은 돌무지를 지나 저수지에 유입됨. 북벽이 아직 훼손되지 않았을 때, 북벽 벽체는 배수시설(涵洞) 및 그 샘 위를 경유하여야만 했음.
동벽은 산성의 네 성벽 가운데 가장 험준한 구간임. 절벽에 잇닿아있기 때문에 동벽 벽체는 기타 삼면의 벽체에 비해 비교적 낮음. 평균 높이는 1m가 안됨. 동벽 전체 길이는 554m임. 해발 128.4m 지점 부근에서 트인 곳(豁口)이 있는데, 고압선로를 깔 때 확장되었음. 너비는 약 5m. 이 트인 곳(豁口)의 단면상에서 다진 층(夯層)이 선명하게 확인됨. 다진 흙(夯土)은 황갈색의 마사토로 깬돌이 섞여 있음. 각 층의 두께 11㎝. 벽체 기단부 너비 2.5m, 윗 너비 0.7m임. 트인 곳(豁口)을 지나 남쪽으로 50m 가면, 성내부 통로(盤道)가 하나 있는데, 이 트인 곳(豁口 K2)을 지나 동벽을 따라 성 바깥으로 왕래할 수 있음. 성내부 통로(盤道) 종점에 천연의 탁자 모양(棚狀)의 암석이 하나 있는데 동벽 중부의 벽체 바깥에 위치하여 성벽을 등지고 아래로는 절벽에 잇닿아있음. 강을 사이에 두고 하곡 평지(谷地)를 마주 바라보고 있어 시야는 개활함. 천연 암석 아래에 약 4㎡에 달하는 평탄지가 있는데 평탄지는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며, 성벽 아래에 있지만 멀리 감시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 회곽도는 성내 언덕 “마안강(馬鞍崗)” 남측의 평지 가장자리를 경유해 동남 요망대를 통과한 후 남문으로 연결됨. 회곽도의 너비는 약 3m이고 길이는 86m임.
남벽은 해발 108.8m인 동남 요망대를 기점으로 서쪽의 해발 164.2m의 되는 서남 요망대까지 해당됨. 남문 있는 곳은 약간 안으로 오목하며, 그 나머지 벽체 구간은 모두 평탄하며 곧음. 남벽은 잔고 1.6m, 윗 너비 0.5m, 전체 길이 547.5m임. 동남 요망대에서 서쪽 38m 되는 곳에 물이 넘쳐 형성된 트인 곳(豁口)이 한 곳 있는데, 트인 곳(豁口) 저부에는 대석괴를 쌓아 만든 평평하고 가지런한 면(臺面)이 확인됨. 이 곳은 당시 남문 동측의 배수시설(泄水涵洞)로, 지금은 너비가 10여 m에 이름. 성내 지표에서 트인 곳(豁口) 바닥 석대면(石臺面)까지의 고도차는 12m임. 이곳에서 서쪽으로 65m 지점 되는 곳에 또 하나의 성벽 트인 곳(豁口 K3)이 있는데, 윗 너비 7.5m임. K3 바깥은 비교적 낮고 완만한 산비탈인데, 이 곳을 통해 산비탈 아래의 하곡 평지로 나아갈 수 있음. K3에서 서쪽으로 143m 쯤 되는 곳에 또 하나의 트인 곳(豁口 K4)이 있는데, K4는 서남 요망대 아래에 위치하며 요망대로 가는 통로로서 너비 10m임. 남문 서측 내벽에서 서남 요망대에 이르는 남벽 내측에 회곽도(마도; 반도)가 시설되어 있으며 너비 약 2.5m, 길이 390m임.
서벽은 남쪽 해발 164.2m의 가장 높은 지점인 서남 요망대에서 시작해서 북쪽의 해발 114.5m인 서북 요망대까지임. 서벽 전체 길이는 725.5m임. 서벽은 산성의 사면 벽체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구간에 해당함. 서벽은 비교적 평평하고 곧은 산등성이상에 축조하였으며 서벽 내 회곽도는 평탄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서벽과 나란히 시설되어 있음. 회곽도 가장자리에는 현재 매우 많은 석괴가 남아 있는데, 이 석괴들은 통나무를 굴리고 돌을 퍼붓던(“滚木擂石”) 투석용 돌 용도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서벽의 잔고는 약 5m, 기단부 너비가 약 7m, 윗 너비 1.5m. 전체 길이 725.5m임. 서벽 남단에서 36.5m 떨어진 곳에서 트인 곳(豁口 K5)이 한 곳 확인되었는데, 남벽의 트인 곳(豁口 K4)과 회곽도로 서로 통함. 상구(上口) 너비 7m, 저구(底口) 너비 1m. 트인 곳(豁口 K5) 양단에 바깥으로 돌출한 “철(凸)”자 모양의 시설물이 있는데, 모두 치(垜口馬面)와 유사함. 남쪽 측벽(南垜)의 기단 너비 12m, 북쪽 측벽(北垜)의 기단 너비 8m임. K5에서 북쪽 100m, 340m 되는 곳에서 각각 치(馬面) 하나씩 발견하였는데, 2개의 치(馬面)는 모두 반원형으로 벽체에 연결하여 축조하였음. 남쪽의 치(馬面) 길이 7.5m, 너비 2.5m. 북쪽의 치(馬面) 길이 6m, 너비 1.8m임. 북쪽의 치(馬面)에서 북쪽으로 287.7m 되는 곳에서 또 하나의 트인 곳(豁口 K6)을 발견하였음. 이 트인 곳의 북쪽에서 서북 요망대까지는 30.4m이고 K6의 윗너비 5m, 바닥 너비 0.6m임. 서벽은 서북 요망대에서 동남쪽으로 급격히 꺽여 북벽에 이르고, 양 벽체에 끼인 성내 좁은(銳角) 부분이 가늘고 길쭉한 형태(細長條形)의 엄폐된 벽체(掩體)를 이루고 있음.
성내에서 원형 구덩이(圓坑) 2곳과 파손된 석축성벽 한 구간과 점장대 한 곳을 발견하였음. 원형 구덩이는 점장대 위 및 남벽 중간 지점의 성벽 안측 산비탈에서 발견되었고 2개의 원형 구덩이는 모두 직경 5m, 깊이 0.5m임. 남벽 중간 지점 안측의 원형 구덩이에서 파괴된 석축시설이 조사됨. 드러난 짧은 벽체는 원형 구덩이 내 석축 건축물의 서북 모퉁이에 축조한 것임. 벽체의 남은 길이 1m, 너비 0.65m, 잔고 0.4m임. 벽체는 다듬은 방형의 커다란 돌덩이(大塊方石)로 축조하였고 혹은 작은 판석으로 평평하지 않은 곳을 메워 채웠음.
점장대는 동북모서리에 위치하며 삼각형 대지(臺地)로 조성하였는데, 각 변의 길이는 약 20m임.
북벽 바깥에 위치함. 고구려 산성의 저수지가 일반적으로 성내에 위치한 것과 비교해 특수한 형식에 속함.
저수지(연못)와 배수시설이 확인되었음. 저수지(水池) 서측은 성으로 진입하는 통로임. 동측에는 넓고 두터운 토벽이 있는데, 토벽의 현존 길이 35m, 너비 20m, 높이 약 6m임. 토벽 아래는 원래 돌로 축조한 배수시설(泄水涵洞)이 있으며, 북벽 아래의 배수시설(泄水涵洞)과 남북으로 대응하여, 현재는 11.7m의 트인 곳(豁口)을 이룸. 저수지의 평면은 타원형이며, 긴 지름의 너비 97m, 짧은 지름의 너비 5.5m임. 저수지의 중심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음. 성안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고 마을 사람들 이 배수구를 판 곳에서 흙으로 다져 축조한 성벽 단면과 길쭉한돌(三條石)로 쌓은 배수로를 볼 수 있음(조계림·왕철군, 1994).
건물지와 도로유적이 확인되었음(여호규, 1999). 동성(東城)의 높은 지대에 건물지가 있었고, 주변에는 기와편이 널리 산포되어 있다고 함. 또한 동성의 북벽 동단에 붉은색 방격문(方格文) 기와편이 흩어져 있고, 북벽 바깥쪽 저수지에 건물초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벽 근처에도 건물지가 있었다고 추정됨. 중앙의 언덕산의 동쪽 기슭 아래에는 동성의 북문과 남문을 연결하는 폭 4m 전후의 도로가 일직선으로 나 있음. 두 성문을 일직선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축성 당시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됨. 건물지는 주로 성의 동부쪽, 비교적 높은 곳에 분포함(조계림·왕철군, 1994).

 

역사적 의미

 

최진보산성에 대해서는 먼저 주거용 평지성설이 있음. 청룡산산성의 성격을 동북 5㎞에 위치한 최진보산성과 관련하여 검토하기도 함. 최진보산성은 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건물을 짓기에 불편할 뿐아니라 생활도구도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방어용 산성으로 추정하는 한편, 청룡산산성은 내부가 평탄하고 기와편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등 평지성의 성격이 강함. 두 성은 방어용 산성과 주거용 평지성의 관계로서 청룡산 산성은 최진보산성에 대해 주거용 평지성의 기능을 가짐(조계림·배약군, 1983; 왕면후, 1994).
다음으로 고구려 은성(銀城)설이 있음. 철령 경내의 10여기 고구려산성 가운데 사료로 고증할 수 있는 곳은 몇 곳 안되며 그나마 교통 요충지에 있는 산성만이 고증이 가능함. 서풍 성자산산성은 고구려 부여성이고 철령의 최진보산성은 고구려 금산성이며 청룡산산성은 고구려 은성(延津州城)임. 『신당서』, 『구당서』, 『요사(遼史)』 등 기록에 따르면 청룡산산성의 축조연대는 고구려 말기이며 “연진주”라는 산성 이름은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안동도호부의 관할 하에 설치한 14개 주 가운데 하나임. 그 후 5백여년이 지난 후 거란인이 요북지역을 점령하고 이곳에 “은주”를 설치하였음. 『요사』지리지 은주편에 따르면 당시의 은주는 3개 현을 통괄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연진현(延津縣)이었음. 연진이라고 한 것은 옛 당나라의 연진성이 있었기 때문임. 연진이 요나라 시기 은주성 관할 하의 연진현이며, 연진현이 은주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 지리적으로 보아 청룡산산성은 철령(은주)과 18㎞ 떨어져있어 “(은주) 경내에 연진성이 있다”는 옛 사료의 기록과 맞아떨어짐(주향영·왕조화, 2001).

 

자연환경

 

산성은 철령시에서 남쪽으로 18㎞ 정도 떨어진 최진보향(현재는 이가보향으로 통합됨) 장루자촌 서남쪽 1.5㎞ 떨어진 범하(汎河) 남안(좌안)의 청룡산에 위치함. 장루자마을이 바로 산성 옆에 있으므로 장루자산성이라고도 부름. 청룡산산성의 동북쪽으로는 범하를 사이에 두고 청룡산산성의 2배 규모에 해당하는 최진보산성과 5㎞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서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움. 산성의 소재 위치는 동경 123도 59분, 북위 42도 11분임.
청룡산산성의 동편 아래로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온 범하가 북류하다가 동벽 북단 근처에서 방향을 바꾸어 서북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으며, 범하 건너편 동북쪽 충적대지에 장루자촌이 자리잡고 있음. 범하는 청룡산산성의 북벽에서 700m 떨어져 있는데, 산성의 동, 북 양면에서 반고리 모양을 띠며 동에서 서로 흘러가고 있어 성을 보호하는 천연 해자 역할을 함.

 

유물정보

 

철제 솥(鐵鍋) 1점, 철제보습(鐵鏵) 1점, 철제 등자(鐵馬鐙) 1점, 철제칼(鐵刀) 1점, 철제전촉(鐵箭頭) 1점, 동제거울(銅鏡) 1점, 격자문(方格文) 기와편(瓦片) 1점, 망격문(罔格文)기와편 1점, 붉은색민무늬수키와편(素面紅筒瓦) 1점, 붉은색민무늬암키와편(板瓦殘片) 1점, 홍갈색내면마포흔(布文) 기와 1점, 호(大口陶罐) 1점, 건축재료(建築飾件) 잔편 1점, 생활토기(器皿) 잔편 1점, 능격문(菱格文) 기와 1점, 니질홍회갈색토기구연부(卷沿口沿) 1점, 니질홍회갈색대상파수(橋狀器耳) 1점, 철제차관(車輨) 1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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