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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반도 연안

건안성(建安城), 성산산성(城山山城), 위패산성(魏覇山城), 비사성(卑沙城), 득리사산성(得利寺山城)

 
요동반도 연안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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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동반도 연안 위치도


고구려와 전연(前燕)이 격돌하던 4세기 무렵, 전연의 대고구려 군사거점은 양평(襄平)과 평곽(平郭)이었다. 양평은 요양(遼陽)의 옛 지명이며, 평곽은 현재의 요녕성 개주시(蓋州市)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5세기에 들어서 요동 전역을 장악한 고구려가 대중국전략의 거점으로 삼은 곳도 이 두 곳이었다. 특히 고구려는 436년 동진해 오는 북위(北魏)에 맞서고자 요서(遼西)의 북연왕(北燕王)과 그 백성을 영입하여 평곽에 안치한 바 있었다.
양평이 요동평원의 중심지였다면, 평곽은 요동반도에서 해안가를 따라 요동평원으로 들어오거나 요동평원에서 요동반도를 횡단하여 압록강(鴨綠江) 방면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던 요충이었다. 또한 이 곳은 요동반도 지역의 경영에서도 구심점이었다. 현재 개주 청석령(靑石嶺)에 있는 건안성(建安城)은 고구려가 요동반도의 중진(重鎭)이자 경영 거점으로 쌓은 성이다.
한편 개주의 외곽을 흐르는 대청하(大淸河)를 따라가면 벽류하(碧流河)로 들어가서 황해에 면한 장하(莊河)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이 요동반도 횡단로의 하나였던 벽류하 연안로인데 장하 성산산성(城山山城)과 위패산성(魏覇山城)이 세워져 있다.
요동반도는 육로 교통만 아니라 해상교류에서도 주요한 경유지였다. 수로를 이용할 경우, 집안(集安)이나 평양(平壤) 어디에서건 황해로 나가는 배는 요동반도 연안을 따라 산동반도(山東半島)에 이르는 항로가 일반적이었다. 남중국의 손오(孫吳)와 송(宋)이 보낸 사절이나, 훗날 수·당(隋·唐)의 수로군(水路軍)도 이 연안항로를 이용하여 고구려로 들어왔다. 이러한 경로와 관련이 깊던 성이 비사성(卑沙城)이다.
한편 비사성이 있는 요동반도 남단에서 개주시로 이어지는 경로는 645년 대당전쟁에서 비사성을 떨어뜨린 당군이 건안성을 향해 북상해 오던 길이었다. 이 경로를 따라 여러 곳에 고구려성이 있었는데 특히 와방점시(瓦房店市) 북쪽의 득리사산성(得利寺山城)이 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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