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1)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섬은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두 섬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우산(독도)와 무릉(울릉도)이 별개의 두 섬임을 말하고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라고 한 것은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현재의 울릉도 가까이에는 관음도(깍새섬)와 죽도(대섬)이 있다. 이 섬들은 맑은 날이 아니더라도 울릉도에서 잘 보인다. 따라서 『세종실록』「지리지」에서 날씨가 맑으면 보인다고 한 “우산도”는 관음도나 죽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우산도(于山島)·울릉도(鬱陵島)
무릉이라고도 하고,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시대 군현의 역사와 땅의 모양, 인물, 풍속, 교통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의 제목이 ‘우산도·울릉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산도와 울릉도는 별개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첨부된 「팔도총도」에도 두 개의 섬을 그리고 있다.
3) 강계고(1756년)
내가 살펴보니, “여지지(輿地志)”에 ‘일설에 우산과 울릉은 본래 한 섬이라고 하나 여러 도지(圖志)를 상고하면 두 섬이다. 하나는 왜가 말하는 송도(松島: 마쓰시마, 독도)이다’라고 했으니 대체로 두 섬은 모두 우산국이다.
『강계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이 저술한 역사지리서이다. 우산도에 대해 일본이 송도(마쓰시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에도 시대에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라고 호칭했다. 그러므로 우산도가 독도임을 이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산도와 울릉도가 우산국에 속한다고 한 것은 두 섬 모두 조선의 영토임을 말한 것이다.
4) 동국문헌비고(1770년)
“여지지”에 말하기를 ‘울릉과 우산은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가 말하는 송도(松島)이다.’
『동국문헌비고』는 영조의 명에 따라 100권으로 편찬한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은 각종 제도의 연혁과 내용을 보기 쉽게 정리하여 국가통치에 활용하기 위하여 제작하였다. 본문에서는 “여지지”를 인용하여 독도가 우산국 땅임을 밝히고 있다.
5) 만기요람(1808년)
여지지에, ‘울릉(鬱陵)·우산(干山)은 다 우산국(干山國) 땅이며, 이 우산을 왜인들은 송도(松島)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다.
『만기요람』은 서영보와 심상규 등이 왕명에 의해 만든 책으로 조선 후기 경제사와 군사 제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이 책에서도 동국문헌비고와 거의 같은 내용이 보인다.
다음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우리 역사에서의 독도에 대한 인식을 마인드맵의 빈칸에 들어갈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사료 |
내용 |
삼국사기 |
512년 여름 6월에 우산국 사람들이 항복하고 매년 토산물을 신라에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
세종실록 지리지 |
두 섬은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
동국문헌비고 |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인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고 하였다. |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
안용복은 동래부 출신의 조선 후기의 어부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동래부의 전선(戰船)에서 노를 젓는 군인으로도 복무하였고, 동래부의 왜관에 출입하면서 일본어에 능숙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