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 1939년 영국의 “결정”은 기판력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중재판정이 아니다
B. 하와르 제도에 대한 1939년 영국의 “결정”
1. 1939년 영국의 “결정”은 기판력의 효력을 가지고 있는 중재판정이 아니다
295. 하와르 제도에 대한 파생적 권원을 찾는 과정에서, 바레인은 1939년 영국의 하와르 제도에 대한 “결정”을 적용하였다. 이 결정은 사실 1939년 7월 11일 걸프 지역의 영국 정치상주대표T. C. Fowle이 서명한 서신에 의해 카타르 통치자와 바레인 통치자에게 알려졌다. 이 서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술했다:
“하와르 제도의 소유권 문제에 대해, 나는 영국 정부로부터 당시에게 통지된 [카타르 통치자와 바레인 통치자]가 제시한 증거에 대한 신중한 고려 후에, 그들이 해당 섬들은 카타르 국이 아닌 바레인 국에 속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알리라는 지시를 받았다.”(바레인의 준비서면, Vol.5, Anns. 287-288, pp. 1 182-1183).
296. 바레인은 위 “결정”을 기판력을 가지는 중재판정으로 특징지었다. 바레인이 제시한 단품(á la carte) 메뉴에서도 이 주장을 기술하기 위해 하나의 용어, 즉 기판력(res judicata)을 사용하였다: . 뿐만 아니라, 바레인은 1939년 하와르 제도의 주권에 대한 영국의 결정과 관련해 카타르가 제기하는 여러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재판소의 관할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본 판결은 1939년 영국의 “결정”을 기판력을 가지는 중재판정으로 보는 바레인의 주장을 거부하고, 1990년 도하 회의록에 “바레인 공식”이라고 표기된 본문을 감안하여 본 사건에서 하와르 제도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재판소의 관할권을 확인시켜 주었다.
297. 나는 본 판결에서 그러한 결정에 동의한다. 1939년 영국의 “결정”이 하와르 제도의 주권 문제를 명확하게 결정짓기 위해서, 이 “결정”은 그것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국제법상 카타르와 바레인에게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종적 결정이어야만 한다. 요지는, 이 “결정”이 1936년 4월 28일 바레인의 첫 번째 서면 주장과 1937년 자지라트 하와르 북부에 대한 은밀한 점령에서 비롯한, 하와르 제도에 대한 분쟁을 명확히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영국의 “결정”을 국제적 중재판정 또는 기판력을 가진 판결로 나타내려는 바레인의 노력을 이해할 수 있다.
298. 1939년 영국의 “결정”에는 “국제적 중재”를 정의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이 부재했기 때문에, 그것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중재판정으로 자격을 가질 수 없었다. 특히, 영국 “결정”의 공식적으로 선언된 목표는, “국가 간 분쟁”, 즉 바레인과 카타르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레인의 기판력(res judicata)에 대한 주장을 위해 그래야한 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이 제안이 현상유지법칙 주장과 조화될 수 있었겠는가? 기판력의 주장과 현상유지법칙의 주장 사실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양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레인은 본 사건에서 두 가지 모두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각각에 대한 바레인의 주장이 아니고, 그것에 관련한 사실들이었다. 바레인과 카타르가 1936-1939년에 국제적 중재에 참여할 만한 “국가”였다가 그 후 1971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어째서?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바레인은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바레인이 분명히 해야 할 사실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들은 상호간 배타적이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필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299. 1936-1939년과 1971년에 바레인과 카타르 모두 국제법상 국가였다(그리고 영국도 각 날짜에 그렇게 인정했다). 그러므로 바레인과 카타르는 1930년대에 국제적 중재의 당사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국가도 주장된 중재의 당사국이 될 수 없었는데, 1939년 영국의 “결정”과 그에 관련된 과정에는 “국제적 중재”를 정의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이 부재했기 때문에 사실상 1938-1939년에는 그러한 중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빠진 요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중재에 회부할 분쟁에 대한 당사국들의 동의; (2) 당사국들에 의한 중재자 또는 중재자들의 선택; (3) 당사국들에 의한 중재 주제의 정의; (4) 무기평등 원칙에 근거한 절차적 중재 규칙의 적용; 그리고 (5) 중재재판의 근거로서 국제법 존중, 그렇지 않으면 중재합의가 도출될 수 없는 경우 제외. 게다가, 그 과정은 재판 없이 판정(award)(선고(sentence))되었다. 그러므로 국제법의 특징상 그 시작도, 끝도, 개입 과정도 중재라고 할 수 없다.
300. 전체 행정부를 동반한 영국 정부와 인도의 영국 정부가 중재 재판소를 구성했다는 것은 나의 상상과 어긋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그들이 외교적 또는 정치적 지위에서 행동하거나 중재자로서 역할을 행동하는데 어떠한 탁월함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301. 어쨌든, 1939년 영국의 “결정”의 근거로서 1939년 4월 22일 웨이트만이 Fowle에게 제출한 “하와르 제도의 소유권”이라 명명된 보고서가 고려되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 이유는 웨이트만이 보고서에 “바레인 주재관”으로서 서명하고, 그것을 “걸프의 영국 정치상주대표,” 즉 Fowle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단계라면, “중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바레인 및 카타르 통치자와 바레인 통치자의 고문 Mr. Belgrave, 또는 관련된 석유회사의 대표 등을 다룰 만한 능력을 가진 정치적·외교적 권위자이어야 한다! 나는 George Scelle과 그의 “이중 기능(dedoublement fonctionnel)” 원칙을 신뢰하지만, “국제적 중재”에 관련해서는 국제법상 오래되고 훌륭한 제도라도 무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302. 국제적 중재, 사법적 해결, 그리고 기타 평화적인 해결 방법들은 합의의 원칙에 근거한다. 분쟁의 당사국들이 앞서 언급한 다른 요소들보다도, 우선 중재에 합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카타르와 바레인은 1938년 중재를 위한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그들의 중재자 혹은 중재자들을 선택하지도 않았으며, 중재를 규율하고 그 목적 및 적용 가능한 법 또는 절차 규칙 등을 정하는 중재 합의(compromis)도 체결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아직 국제적 중재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1939년 영국의 “결정”이(그 유효성과는 별개로) 국제법상 기판력이 있거나 또는 그렇게 될 수 있는가? 1939년 영국의 “결정”은 사실상 사법적 능력을 지닌 사법 기관 또는 정치 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결정”은 최종적 기판력을 가질 수 없으며, 불변의 법적 진실(vérité legale)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정치적 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는 있으나 기판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유엔 안정보장이사회가
유엔 헌장
의 제7장에 근거하여 채택한 결정은 법적 구속력 이 회원국에게는 있지만, 기판력은 없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언젠가 그들의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
303. 1939년 걸프지역의 영국 정치 당국자들이 카타르와 바레인의 각 통치자에게 보낸 두 통의 앞서 언급한 서신은 단순한 외교적 의사소통 또는 통지였다. 그것들은 그것이 타당하든 아니든, 어떠한 중재판정(문장(sentence))도 동봉하거나 첨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재판소의 판결과 과 같은 국제적 중재판정은 공식적인 국제적 문서이고 또한 동등한 공식적 국제 절차의 결과이다. 기판력은 정확히 관련 과정과 결과에 적용된 형태 및 적용 기관의 사법적 특징과 본질적으로 연관이 있는 절차법의 개념이다. 그것에 어떠한 이름을 붙이든지(중재, 판결, 조사 등), 1938-1939년 영국의 “과정”은 1939년 “결정” 이후 영국의 문서들에서 인정되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Long의 외무부 기밀 회의록의 결론 부분은 다음을 포함한다 :
“두 통치자 모두 사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판정 동의를 약속할 것을 요구받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단순하게 판정(award)을 ‘만들었다’. 비록 그것이 어떠한 면에서는 중재의 형태를 따랐다고는 하나, 그것은 상부에서 부과된 것이고, 그것의 유효성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없었거나 주장되지 않았다. 그것은 상당히 석유채굴권을 위한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실용적 목적을 위한 단순한 결정이었다.”(바레인의 항변서, Vol. 2, Ann. 2, p. 4; 강조 추가.)
304. 그러므로 그 목적은, 카타르와 바레인의 통치자들이 동의한 중재를 통해 해당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1938-1939년 바카르와 바레인 사이에 국제적 중재판정이란 없었고, 통치자들에게 전달된 1939년 영국의 “결정”은 그 “결정”을 옳다고 믿고 받아들일 국제적 법적 의무를 수반하는 국제적 중재가 아니었다. 내가 봤을 때 본 사건의 이 결론에서 중요한 것은, 1939년 영국의 “결정”이 본 사건에서 당사국들에게 적용 가능한 법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이 “결정”은 본 사건에서 많은 여타의 역사적 사실 또는 사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당사국들의 상호 관계를 좌우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영국의 국내질서에서 그것은 영국 정부 또는 영국 행정부 혹은 무언가 다른 것의 행동이 될 수 있겠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그것은 본 사건의 어떠한 당사국에게도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므로 국제적 중재판정은 아니다.
305. 하지만 바레인이 1939년 영국의 “결정”을 중재판정 또는 기판력(res judicata)을 가진 판결로서 보는 것이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본 판결은 바로 그 영국의 “결정”에 의해 바레인이 하와르 제도에 대한 주권을 가진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불완전하고 법적으로 잘못된 몇몇 서신에 대한 형식적 해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본 사건에서, 사실 재판소의 재판관 대다수에게는, 1939년 영국의 “결정”(본 판결은 “결정”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떠한 형용어구(epithet)도 보태지 않았다)은 1938년 카타르 통치자와 바레인 통치자가 1938-1939년 영국의 과정에 대해 동의하였으므로 -본 판결에 따르면- 당사국들에 대해 사실상 영구적인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결정이다. 이러한 판단이 국제법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음 단락에서 나는 주요한 문제들에 대해 나의 의견을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306. 먼저, 본 판결이 1938-1939년 영국의 과정에서, 다수의 결론을 이끈 통치자들의 동의를 확인한 방식은 꼭 언급되어야 한다.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 동의를 확인하는데 사용되었던 방법은, 특히 카타르 통치자의 동의에 대한 문제는, 비교적 추상적인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1938-1939년 영국 과정의 배경과 그 과정에 카타르 통치자가 참여했다는 사실과 관련한 상황이 분리되었다. 다음에 내가 언급할 1936년과 1937년의 중대한 사건들은, 본 판결에 의한 결정에서 언급한 과정에 대한 카타르 통치자의 동의 확인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재판소는 이 문제에서, 카타르 통치자가 영국의 승인으로 1936년부터 하와르 제도의 시원적 권원의 소유국이었다는 사실과, 하와르 제도가 카타르 통치자의 영토의 일부라는 영국의 이전 승인의 변경을 가지고 온 1936년 석유 협상 같은 일련의 “법적 세부 사항”(legal details)의 영향력을 전적으로 무시하였다.
307. 1936년 하와르 제도에 대한 바레인의 첫 번째 서면 주장은 1938-1939년 영국의 판결에 대한 카타르 통치자의 알려진 동의보다 앞섰고, 따라서 사건 순서상 바레인의 주장은 알려진 과정에 대한 통치자들의 동의의 진실을 확인하는 특정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부분이, 1939년 영국 “결정”의 타당성과, 바레인의 관련 진술과 주장의 우월성을 분석하는 데 기본적인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과 다름없어 보였다. 1938-1939년 하와르 제도에 대한 영국의 과정과 재판소에서의 현재의 소송절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1939년 영국의 “결정”은 그것의 본래 성질로 인해 본 사건에서 재판소를 구속하는 성질의 결정이 아니다. 하와르 제도 분쟁에 있어 국제법이 1939년 영국의 “결정”과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후자가 분쟁의 요소들에 대해 재판소가 국제법에 의거한 판단을 하는 것을 막는 법적 장애물은 결코 아니다.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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