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1861년 영국과 바레인 간의 협정
F. 1861년 영국과 바레인 간의 협정
116. 앞서 언급했듯, 영국은 바레인 통치자인, 부족장 Mohamed bin Khalifah와 와하비 Hasa 항구 봉쇄를 힘으로 저지하였다. 영국의 군사적 개입은 1861년 5월 18일 걸프 지역의 영국 정치상주대표 Felix Jones이 바레인 추장인, 부족장 Mohamed bin Khalifah에게 보낸 서신 보다 선행되었는데, 그 서신의 단락3은 다음과 같다:
“다른 한편으로, 바레인에 의해, 혹은 바레인의 이름으로, 또는 어떠한 단체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이웃 부족들 간의 적대적 행동들을 엄격히 관리하는 저의 결단이 내려지면, 저는 섬을 온전하게 유지시킨다는 우리의 오랜 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그를 방해하는 적들의 의욕 또는 침략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동안, 이 걸프의 평화를 위해 귀하가 바레인의 모든 당사국들에게 명백히 전달해야 할 이 다짐이 저의 입장임을 분명하게 합니다.” (Ibid., Vol. 5, Ann. Ⅱ. 19, p. 43 .)
117. 영국의 이러한 군사적 개입 후, 영국과 바레인은 1861년 5월 31일 “바레인의 독립적인 통치자, 부족장 Mahomed bin Khuleefa 및 그의 계승자와, 걸프의 영국 여왕 폐하의 정치주재관, 여왕 폐하의 인도 해군 대령 Felix Jones 간의 우호협약” (ibid., Vol. 5, Ann. Ⅱ.20, p. 47)이라 명명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의 전문에는, 무역 증진과 더불어 이 영해를 항해하거나 영해에 거주하는 모든 계층 사람들의 안보를 위한 바레인의 독립적인 통치자와 영국 정부 사이의 “평화와 우정을 위한 영원한 조약”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118. 바레인 통치자와 영국 정부 사이에 체결된 모든 이전의 조약들 및 협약들이 시행 중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한 바레인의 독립적인 통치자는 1861년 협약의 제2조에서, “온갖 종류의 해양 침략 행위와, 바다에서의 전쟁, 해적 행위, 노예 제도 추진을 자제하기만 하면, 나는 걸프 지역의 다른 부족들과 통치자로부터의 유사한 침략에 대한 자국의 안보를 수호하는데 영국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라고 동의하였다, 게다가 제3조는, 바레인 통치자는 위의 약속들을 모두 이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획될 수 있거나 나 자신, 영토, 또는 국민에 대해 해양에서 자행될 수 있는 모든 침략과 약탈 행위를 그러한 상황의 중재자로써 가능한 한 빨리 걸프지역의 영국 정치상주대표에게 알린다. 그리고 영국 국왕이나 정부의 허가 없이 바레인 또는 바레인의 이름으로 나 또는 내 휘하, 혹은 다른 부족에 의해 자행되는 모든 침략과 보복행위는 허락되지 않음을 약속하며, 필요할 경우 허가를 구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바레인 통치자가 걸프 지역에서 바레인 또는 그의 속국이 가한 것으로 입증된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곧 밟을 것을 영국 정치상주대표가 보증한다. 마찬가지로, 나, 부족장 Mahomed ben Khuleefa는 바레인의 통치자로써 재판에 기소될 수 있는 모든 해상 공격 행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할 것이다.”
119. 위 협약은 바레인 통치자의 “소유”, “영토”, 그리고 “국민”을 언급하고 있고, “바레인” 또는 협약이 체결된 장소인 바레인 본섬과 “걸프 지역 내에서의 바레인의 종속지역”을 구별하고 있다. 하지만 협약은 관련된 영토, 소유, 혹은 종속 지역에 대한 정의는 내리지 않고 있다. 협약 내용 중에 카타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제3국은 “걸프 지역의 부족들과 추장들” 또는 “다른 부족들” 같은 용어로 묘사되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1868년 바레인 통치자의 도하 지역에 대한 공격이 있은 후에, 영국은 카타르 통치자와 부족을 1861년 바레인 통치자의 공격 행위에 대한 협약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국가로 간주하였고, 따라서 1861년 협정에 명시된 바레인 통치자의 “국민”, “소유”, “영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간주했다.
120. 1861년 협정은, 바레인 통치자의 그에 대한 위반으로 인해 1868년 영국이 처음으로 카타르를 Mohamed bin Thani의 통치 하에 있는 분리된 국가로서 공식적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