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카타르와 바레인의 지배 가문의 기원과 1783년 Al-Khalifah의 바레인 반도 정착
B. 카타르와 바레인의 지배 가문의 기원과 1783년 Al-Khalifah의 바레인 반도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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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과거에 아라비아 반도에 만연한 사회정치적 집단은 “부족 체제”였고, 비록 주로 해안 지역과 해안 도시에 정착 부족(hadar)이 존재하긴 했지만, 많은 베두인(Bedouin) 부족은 유목부족(bedu)이었다. 부족들이 정착하는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착은 단 한 번에 혹은 동일한 상황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적어도 카타르 돌기(岬, promontory)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유목 부족과 정착 부족이 서로 공존했었다. 반(半) 유목 부족 또한 존재했었다. 하지만, 결국 정착 부족은 바다의 기본적인 경제적 중요성(무역, 조개잡이 등)을 위해 정치적 생활을 영위하였다. 현재 카타르 및 바레인의 통치 가문을 포함하여, 육지로 카타르 곶에 접근한 대부분의 부족들의 조상들이 중앙 아라비아에서 발견된다.
78. 카타르에 의하면, Al-Thani 부족의 선조를 포함한 Al-Maadid 부족과 이와 상당히 밀접한 Al Bu Kawara 부족은, 17세기 말 Washmd의 Ashayquir에서 중앙 아라비아의 오아시스는 Jabrin으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 처음엔 카타르 반도의 남서부 끝단의 Salwa 지방 가까이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Al-Maadid 부족은 북서쪽 Ruways 근방의 주바라 지역으로 이동하여 정착하였고, Al Bu Kawara 부족은 반도의 북동쪽으로 이동하여 Al-Huwayla의 Musallam 지역 부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Al-Khalifah가 바레인으로 이동하고 주바라가 폐허가 되었을 때, 카타르 북동부의 정착은 더욱 심화되었다. 동명의 Thani는 Fuwayrat로 이동하였다. 이어서, Mohamed bin Thani는 Thani를 떠나 Doha에 정착하고 Bida의 총독(governor)가 되었고 1850년대 카타르의 최고 부족장(Sheikh,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다.
79. 바레인이 관련되어 있는 한, 또한 일반적으로, Al-Khalifah 부족은 Al-Utud 부족의 지파 (branch) 혹은 분파(section)이었다. Al-Utub 부족 또한 중앙 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처음에는 카타르 반도에 도착하였고, 1715년 주바라에서 2년간 정착하고 있다가 그 후에 쿠웨이트로 떠났다. 쿠웨이트에서, 부족의 세 지파가 생겨났다: 바레인이 내려갈 당시의 지배 가문 출신의 Bin Khalifah, Bin Sabah와 Al-Jalahma. 1766년 Bin Khalifah와 Al-Jalahma 집단은 1753년부터 페르시아에 점령당한 바레인을 위해 쿠웨이트를 떠나 카타르 반도로 이동해 1768년 주바라 도심의 외벽(1.5킬로미터 가량 떨어진)에 Al-Murair로 알려진 요새를 건축하였다. 그들은 주바라에 약 17년간 정착하며 그 곳의 진주 산업의 발전을 돕고 발군의 지에에 오를 수 있었다.
80. 하지만 1783년, 카타르 부족을 포함한 여타 아랍 부족들과 함께 Utub(Bin Khalifah와 Al-Jalahma의 지파)은 이전의 페르시아의 바레인 공격에 대한 바레인의 주바라의 페르시아 총독(Governor)에 대한 보복을 중지시켰다. 섬의 세력 다툼의 결과로, Bin Khalifah가 바레인의 지배 가문이 되고 섬에 정착하였고, Al-Jalahma는 카타르로 돌아갔다. 다시 말해, Al-Khalifah는 주바라에 대한 그들의 정착을 포기하고 떠났다. 바레인의 첫 번째 Al-Khalifah 통치자는 나중에 정복자 Ahmad로 알려진 Ahmad bin Khalifah였다.
81. “부족 체제”에서, 부족과 영토 간의 관련성은 “정착” 여부에 의해 확립되었다. 만약 정착한 부족이 정착을 포기한다면, 비록 다른 부족장들, 부족들 혹은 부족의 지파들과의 개인적 연결이 멀리서나마 지속된다고 해도, 영토적 연결은 사라진다. 1783년 바레인 섬으로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Al-Khalifah는 주바라 지역에서 떠났고, 따라서 그들이 가진 유일한 영토적 토대는 1766년 도착한 카타르 반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Al-Thani 부족은 카타르 반도 내에서 그들의 영토적 기반을 항상 보유하며 도하 지역에서 이동하지 않았다. 따라서 비록 그들의 권한을 모든 부족들과 반도의 영토에 대해 실효적으로 행사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Doha와 Bida를 차지한 그들은 지역의 부족들에게 카타르의 지배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바레인의 지도자가 여전히 카타르에 대한 명목상의 권한을 주장할 때, Palgrave는 그의 Narrative of a Year's Journey through Central and Eastern Arabia (1862-1863)에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Bedaa의 총독 Ebn-Thanee는 오만의 Sultan에 의지하고 있는 전 지방에 대한 일반적으로 확실히 인정된 수장이다; 비록 Bedaa'의 주민들은 각자의 지역 수장을 따르는 다른 마을에 대해 작은 권한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Ebn-Thanee는 진주 채취를 돌보고 연례적으로 공물을 받는 일종의 행정지휘관 혹은 일반적 세금 징수자이었다."(카타르의 준비서면, Vol. 2, Ann.Ⅱ.75, p. 415).
82. Al-Thani 부족이 본토에 정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Al-Khalifah 가문의 바레인 정착은 두 나라의 영토적 발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후의 사정들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당시부터, 미래의 분리된 정치적 실체로서의 바레인과 카타르의 광범위한 영토적 윤곽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바레인은 바레인 제도로 구성된 군도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카타르는 카타르 반도 내에서 대륙 또는 본토 국가로 비춰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비단 지역적 거주자들 때문이 아니고, 주로 대외 세력이 이 시기를 역사 속에서 현재의 국가로서 카타르와 바레인의 창설하고 형성하는데 참여한 역사라 부르기 때문이다.
색인어
- 지명
- 주바라, 주바라, 주바라, 주바라, 주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