Ⅶ. 지도 증거
Ⅶ. 지도 증거
* * *
144. 이제 우리는 지도 증거(map evidence)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재판소의 판례는 지도제작상의 자료가 증거로서 가지는 상대적인 중요성을 명확하게 결정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에리트레아/예멘의 사건
에서 중재법정은 일반적인 의견과 평판(repute)에 대한 반영이라고 여겨지는 지도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비록 법정(Tribunal)은 이것이 법적 권원의 표현(indicative)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근거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예멘에 의해 앞당겨진 의미로써, ‘일반적 의견과 평판의 중요한 증거’이다.주 070
145. 바레인이 제출한 지도제작상의 자료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카타르는 하와르 제도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그들의 지위를 확인해 주는 지도상의 증거들의 상당한 집합체를 나타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터키,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 미국, 호주 그리고 이란으로부터 온 많은 양의 지도들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세계 각지에서 표출된 일반적 견해에 따라, 하와르가 카타르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46. 그 중에서도, 1868년(바레인과 카타르의 전쟁과 영국-카타르, 그리고 영국-바레인의 조약) 이후의 지도들은 그 때까지는(by-then) 분리되어 있던 다섯 개의 섬들의 압축된 집합체인 바레인과, 하와르 제도를 포함하는 인접한 섬들과 작은 섬들 및 반도로 이루어져 있는 카타르 두 개의 정치적 실체들을 보여준다.
147. 그러므로 카타르에 의해 제작된 지도상의 증거는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1901년, 1908년 그리고 1911년에 영국 전쟁 부서에 의해 준비된 지도 및 1934년에 그 부서에 의해 준비되었으며 ‘하와르 제도를 포함하는 반도 전체가 카타르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약도에 대한 특별한 기록을 한다.
148. 카타르에 의해 재판소에 보여졌던 것과 같이 매우 광범위하며, 19세기 및 20세기 모두 걸쳐 다양한 원천들과 같은 것들에 의해 유래된 지도상의 증거들의 집합체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증거들이 정치적 및 지리학상의 카타르와 바레인의 상황을 오랜 기간 동안 사실상 단일하게 기술한다는 점에서, 하와르 제도 및 주바라를 소유하는 카타르의 권원의 존재를 확증하는 상당한 부담에 일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판소의 본 판결에서 하는 것과 같이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은 채 증거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색인어
- 지명
- 하와르 제도, 하와르, 하와르 제도, 하와르 제도, 하와르 제도, 주바라
- 사건
- 에리트레아/예멘의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