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을 넘어 ‘이야기’로 듣는 ‘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글 : 박정애 (숙명여자대학교)
출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 6: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 여성과인권, 2004.관련 사이트 열기

연구자·활동가 11명이 모여 구술팀을 꾸리고 ‘위안부’ 피해여성 12명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 목소리를 글자로 옮겨 적은 기록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의 6집이라는 머리 제목을 달았다. 1993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의 6번째 간행물로서 시리즈의 마지막에 해당한다. 증언집 5집까지 꾸준히 중심을 이루었던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제목을 과감하게 버리고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역사에서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이 문제의 책임주체인 일본정부의 부정과 회피, 정치적 공격 속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은 ‘강제로 끌려간……’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증언집 발간의 역사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강제로 끌려간 군위안부’는 한국사회의 집합기억 속에서 ‘위안부’ 피해를 기억하는 전범(典範)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기억에 균열을 일으키는 피해자의 어떠한 사적 기억은 피해자의 머뭇거림 속에서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책이 증언집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이 책에 자기 경험을 담은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위안부’ 증언 10여년의 시간을 기다리고, 앞선 60여명의 증언을 다 들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기억을 말할 수 있었던 여성들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앞서 증언을 풀어놓은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용기의 축적과 ‘묻기’에서 ‘듣기’로 증언채록 방식을 전환한 ‘위안부’ 여성 구술사 방법론의 진전이라는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연구팀은 “사실의 엄밀성이 요구되는 다분히 엄숙한 증언과 달리, 우리가 구술을 ‘이야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주관적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서”(13쪽)관련 사이트 열기라고 밝힌다. 정치적인 쟁점으로 규정된 ‘강제성’ 문제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14-15쪽)관련 사이트 열기하기 위해 ‘증언’을 넘어 ‘이야기’로서 ‘위안부’ 피해여성의 경험을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책에서 만나는 여성들 12명이 공통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라고 불리기는 하나, 이들 여성 각자의 삶의 경험은 구체적인 위안소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그 생활 이전과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르고 특이하며, 과거의 경험들은 현재의 삶과 상호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위안부’ 피해여성의 이야기를 생년월일과 고향, 형제 및 가족관계, 동원상황, 이동경로 및 수단, 위안소 생활, 귀환과정, 이후 생활 등으로 유형화하기는 했으나 그 안을 각자의 색으로 채색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결들에 독자들이 귀를 기울이기를 당부한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의 ‘위안부’ 피해 여성 12명, 곧 공점엽, 김화자(가명), 정서운, 강일출, 석순희(가명), 이옥선, 임정자(가명), 노청자, 장점돌, 김봉이(가명), 김순악, 길원옥의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반드시 연구팀이 작성한 총론을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총론에서 ‘증언’이 아닌 ‘이야기’로 읽었을 때 독자와 구술자, 면접자는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이야기’로 읽기 위해서 소제목과 표제, 따옴표, 쉼표 등의 부호, 괄호 안의 내용들, 면접자의 참여기는 어떻게 눈여겨봐야 하는지 세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얄팍한 ‘강제성’ 논쟁을 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의 목소리를 두터운 생존의 이야기로 문자화하고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연구팀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총론을 다 읽은 뒤에는 12명 중 누구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인터뷰 실패기〉도 함께 싣고 있는데, 두려움과 머뭇거림 앞에서 여전히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의 현재의 이야기이다. 이 또한 함께 챙겨 읽으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우리의 공감지수가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지 가늠하기 바란다. “이 책이 여섯 번째 반복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섯 번째 인식과 성찰의 지평을 넓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연구팀의 소망은 책 발간 후 다시 10여년이 지나버린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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