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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문화유산자료

육도구동광지(六道溝銅礦址, 夾心崗古銅鑛址)

  • 구분
    유적
  • 시대
    고구려~발해
  • 위치
  • 유물번호
    S000332
  • 위치(출토지)
    臨江市 錯草頂子鄕[현재의 寶山鎭] 銅山鎭
  • 지역
    임강(林幹市)
  • 유형
    생산유적
  • 형태사항
    7점 
출토지
임강시 착초정자향(현재의 보산진) 향산진 (臨江市 錯草頂子鄉[現在 寶山鎮] 銅山鎮)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84혼강시문물보사대
(渾江市文物普査隊)
6월 하순에 동광 발견의 한 사람인 錯草頂子鄕 黨委 書記 周正發 등이 참가하여 광산 간부 등의 도움을 받아 동광의 흔적을 확인하고, 『渾江市文物志』중의 ‘六道溝銅鑛址’에 발표함.
1995백산시문물보사대
(白山市文物普査隊)
5월에 張殿甲 등이 참가하여 古銅鑛 부근의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四社(舊名 後小溝)의 경작지에서 冶鍊 유적을 발견하고, 『北方文物』2000-2에 발표함.
1885(光緖 11) 臨江市 六道溝 동북쪽 산에서 깊이 6m인 오래된 채광 갱도 4개를 발견했고, 이때 제련시에 남긴 찌꺼기[鑛渣]도 많이 발견함.
1887-1958 동광 개발 연혁을 보면, 1887년경 鄭鐸民, 孟蘭亭, 郝金堂 등이 채광을 시도하다가 기술적 낙후로 모두 그만뒀고, 1923년부터 개발되어 ‘臨江銅鑛’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932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채광을 함. 1940년 이후에는 구리보다 군사적 목적에서 몰리브덴[鉬]을 주로 채광했고, 중국 정부 성립 이후 동광 매장량을 조사했으며,1958년부터 광산을 건설해 채광하다가 1983년에 폐광함.
1954-1958 이 무렵 중국 정부가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했는데, 당시 沈陽地質勘探公司 108隊[吉林省 冶金 地質 601 勘探隊]의 周正發이 六道溝 銅山鎭(舊名 老黑頂子) 일대를 탐사하다가 2호 동굴에서 오래된 좁은 갱도를 발견했고, 당시 601대가 그린 갱도의 평면도가 欓案 자료로 남아 있음.
구조특징
礦脈은 동서 2,600m, 남북 1,000m 범위에 분포하고, 礦石品位는 대체로 0.2% 정도이며, 개별 富礦脈 品位는 20% 정도임. 鑛床은 矽卡岩型의 小型 礦床, 黃銅礦, 斑銅礦과 輝鉬礦 등이 매장됐는데, 매장량(1950년대)은 총 245만톤, 銅 1.7만톤, 몰리브덴[鉬] 1,824톤임.
1885년에 깊이 6m인 채광 갱도 4개를 발견했다고 함. 1950년대에 광산 개발을 위해 이 일대를 탐사하다가 2호 동굴에서 발견한 갱도는 方圓形으로 폭이 0.7m에 불과하며, 깊이는 알 수 없었으나, 갱도에서 靑銅製 등잔과 목제 가래 등이 발견됨. 臨江銅鑛에서 일했던 인부들이 古礦洞의 현황에 대한 전언에 따르면, 채굴하다가 고갱도 발견했고, 고갱도에서 소나무 횃불[明子]을 발견했다고 함. 현대의 갱도는 平行 巷道式 채굴법을 채용하여 여러 갱도를 평행으로 굴진한 다음 다시 주 갱에서 관통해 폭파시켜 광석을 채취하므로 처음 팠던 갱도는 모두 커다란 동굴로 변함. 이에 비해 古坑道는 수직 구덩이식[竪井]을 위주로 했고, 대부분 富礦脈을 따라 굴진해 분포 상태가 불규칙함. 1950년대 말 이래 20여년간 채광하면서 고동광은 거의 모두 사라짐.
1950년대말 六道溝鄕 曲柳樹[현재의 錯草頂子鄕 立新村, 夾心崗이라고도 불림)일대의 冶鍊址에서 석제 도끼, 석제 화살촉, 철제 화살촉, 철제 솥, 동제 불상(銅佛), 마제 석촉이 발견되었고, 부근에서 아궁이[炕址]와 재 구덩이[灰坑] 등도 발견됨. 이 일대 언덕에는 冶鍊址와 목탄과 야련 찌꺼기[溶渣] 등이 남아 있음. 동광 전문가에 따르면 노천 야련은 온도가 높지 않아도 되며, 목탄을 연료로 사용해도 가능하다고 함.
冰湖村 산 위의 冶鍊址는 吉林 冶金 地質 602隊를 퇴직한 趙興國씨의 회상에 따르면, 1950년대 冰湖村 산 위에 가득 흩어져있는 銅渣堆가 발견되었는데, 이 동 찌꺼기들은 近代의 것이 아니었다고 함.
1995년 曲柳樹[夾心崗] 야련지에서 서남쪽으로 2㎞ 정도 떨어진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4社(舊名 後小溝) 경작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유적지 북쪽 300m 거리에 四社, 남쪽 50m 거리에 七道溝河가 있으며, 七道溝河 右岸 2단 대지 위에 위치해 지세는 확 트였고 평탄함. 유적지 규모는 동서 약 200m, 남북 약 100m로서 토질이 비옥하며, 층위는 耕土層 약 15-20㎝, 그 아래 문화층에 탄층[炭層]과 붉게 탄 흙덩이[紅燒土]가 있음. 유적지 표면에 토기편과 銅渣(동 찌꺼기) 등이 흩어져 있고, 현지 학생이 四社 동측의 두 번째 산골짜기에서 동 찌꺼기를 채집함.
1950년대에 발견한 古坑道에서 청동제 등잔과 목제 가래가 발견되었고, 曲柳樹[立新村, 夾心崗] 일대의 冶鍊址에서 석제 도끼, 석제 화살촉, 철제 화살촉, 철제 솥, 동제 불상(銅佛), 마제 석촉 등을 발견했다고 함. 寶山鎭(原名 錯草頂子鄕) 下亂泥塘四社 冶鍊址에서는 동찌꺼기와 함께 토기편을 다수 채집함.
역사적 의미
근현대 坑道와 다른 古坑道 현황, 주변의 冶鍊址에서 채집된 유물과 야련 찌꺼기 등으로 보아 고대 銅鑛 및 冶鍊 유적으로 추정되며, 고구려시기부터 개발되어 발해 시기에도 채굴했을 것으로 추정됨. 高麗에 銅이 많다는 『宣和奉使 高麗圖經』의 기록, 周나라 世宗이 비단을 고려의 銅과 교환해 鑄錢했다는 『五代史証』의 기록 등은 본래 고구려 경내에도 銅礦이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추정됨. 『冊府元龜』권999에는 ‘唐 文宗 開成 元年(836년) 6월에 淄靑節度使가 상주해 발해가 銅을 정련해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 압록강 수로를 경유하던 ‘朝貢道’를 통해 발해가 당과 무역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 기록의 銅은 臨江 銅鑛에서 채굴해 제련(冶煉)한 純銅을 六道溝 河谷-압록강 수로를 거쳐 唐의 淄靑節度使가 주재하던 登州까지 보냈을 가능성이 높음.
자연환경
臨江市 六道溝鄕에서 동북쪽 13㎞ 떨어진 錯草頂子鄕[현재의 寶山鎭] 관할의 銅山鎭 서측 산 위에 위치하며, 지금은 폐광된 臨江銅鑛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평탄한 산등성이에 위치함.
古銅鑛이 위치한 산등성이는 해발 760m, 比高 300m로 평탄하며, 둥그스럼한 방형으로 면적은 20여만㎞2에 이름.
참고문헌
· 吉林省文物志編委會, 『渾江市文物志』, 1987
· 國家文物局 主編, 「夾心崗古銅鑛址」『中國文物地圖集』 吉林分冊, 中國地圖出版社, 1992
· 張天鵬, 「鑛業」『渾江市志』, 中華書局, 1994
· 張殿甲, 「鴨綠江中上游高句麗·渤海遺址調査綜述」『北方文物』 200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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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구동광지(六道溝銅礦址, 夾心崗古銅鑛址) 자료번호 : ku.d_0001_0010_0010_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