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대신이 하얼빈에서 3등관 베베르에게 보낸 1909년 10월 13일자 전문
Телеграмма Министра Финансов из Харбина от 13 октября 1909 года на имя тайного советника Вебера
사본.
С. Д. 사조노프(Сазонов)에게 다음의 내용을 전해 주십시오. 이토 공작 살해에 대한 전문에 추가해서, 그리고 모든 설명이 상세히 들어 있는 기관의 전문에 근거하여, 저는 철도 당국의 주의 부족에 대한 불리한 판단에 대비해 귀하께 모든 사람들은 이름이 적힌 차표를 가지고 역에 출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청철도 관리국은 일본 영사에게 일본 국민들 중 누구에게 차표를 보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이틀 동안 요청했습니다. 영사는 그 대답으로 일본인들은 차표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출입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살해자는 순수한 일본인의 외모를 지녔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일본 국민 몇 명은 자기들은 그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영사가 일본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요청한 사실은 범죄자 심문에 배석했던 일본 공사관 서기가 제게 개인적으로 확인해 준 것으로, 회의록에도 기재가 되었으며, 역까지 공사를 수행하느라 일본인들 무리에 있었던 일본 공사 경비병이 통역을 거쳐 제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범죄자의 진술은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는 원산에서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왔고, 거기서 쉬지 않고 어제 저녁에 하얼빈에 도착해 역 주변에서 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 이 진술은 진실을 은폐하려고 꾸며낸 것입니다. 그는 더 일찍 하얼빈에 도착해 이토 살해를 위해 조직된 무리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믿을 만합니다. 역 내 경찰관 중 누구도 밤새 이방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역 경비와, 플랫폼 바로 옆에 있던 제 열차 칸의 경비는 상대적으로 삼엄합니다. 해외 언론, 특히 일본 언론의 사건 평가와 일본 정부의 입장을 알려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경의를 표하였고, 북경 주재 공사와 호르바트(Хорват)주 001는 시신이 남만주 철도로 이송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동행하고 있습니다. 상서 코콥초프.
원본과 같음. 서기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