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페이예르가 М.Н. 무라비요프 공에게 보낸 보고서
Донесение Шпейера графу М.Н. Муравьеву
№ 91 1898년 2월 10
№ 16.
서울, 1897년 11월 18일
존경하는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공후
제가 11월 10일자로 각하께 보낸 전문의 보고서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날은 1895년 암살당한 왕후가 마침내 편안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엄중한 장례식이 거행된 날입니다.
이곳 공사관에서는 궁정의 운구 행렬에 참석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9일 아침 6시에 장지로 가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을 성대한 장례식 행사에 참여토록 하는 것입니다. 이후 외국 공사관 대표들은 오후 2시에 국왕과 왕세자와 함께 수도에서 동쪽으로 4 베르스타 떨어진 장지로 동행하기 위해 외부에 모여야만 했습니다. 무덤 근처에 국왕과 모든 외국 공사관 대표들, 그리고 왕후의 친척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임시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장례행사는 다음날 아침 4시에 거행되었습니다. 무덤에는 잘 다듬은 돌을 둘러 세우고, 위에는 둥근 봉분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무덤 아랫부분에 작지만 아름다운 사당이 세워졌습니다. 아침 10시에 우리 모두는 국왕의 임시거처에서 국왕을 알현했습니다. 알현장에서 국왕은 왕후의 평안을 추도하는 우리에게 성은을 표하시고, 불편하고 누추함을 참아준 것에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런데 국왕은 왕후의 장례에 사용하도록 일본 천왕의 이름으로 국왕에게 전달된 은 향로 한 쌍을 일본정부의 특별대표 성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가져온 일본 외무참사관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표명하셨습니다.
개인적인 희망에 따라 국왕은 수도에서 장지까지 왕래할 때 우리 군사교관단의 하사관들이 국왕을 호위했으며, 장지에서도 우리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지근거리에서 국왕을 지켰습니다.
왕궁으로의 복귀는 오후 2시에 있었는데, 그 행렬에 외국 공사관 대표들도 같이 참여했습니다.
무덤 축조와 장례행사 거행에 한국 정부는 대략 35만 달러를 경비로 사용했습니다.
깊은 존경과 충성을 담아.
당신의 충신
시페이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