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장군 유상]이 장병들을 격려했으나, 위태롭고 좁은 길에 가로막혀 목숨을 잃었고,
무위[장군 유상]이 장병들을 격려했으나주 001, 위태롭고 좁은 길에 가로막혀 목숨을 잃었고,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무[제](재위: 25~57)가 중흥하였을 때, 무릉의 만이가 매우 번성하였다. 건무 23년(47), 정부와 상단정 등이 그 좁고 험함에 의지하여 군현을 대대적으로 노략질하였다. 무위장군 유상을 보내 남군·장사·무릉의 병사 1만여 인을 징발하여, 배를 타고 원수주 002를 거슬러 올라가 무계주 003로 들어가 그들을 공격하였다. [유]상이 적을 가벼이 여겨 좁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산이 깊고 물[의 유속]이 빨라 배가 올라갈 수 없었다. 만[이]는 [유]상이 군량은 적은데 깊이 들어왔고, 또 길에 밝지 못함을 알고, 무리를 모아서 좁은 곳에서 지켰다. [유]상이 식량이 다하여 [병사를] 이끌고 돌아가는데, 만[이]가 길을 따라오며 공격하여 싸웠다. [유]상의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 참고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76 光武中興 武陵蠻夷特盛 建武二十三年 精夫相單程䓁據其險隘 大寇郡縣遣武威將軍劉尚發南郡長沙武陵兵萬餘人 乘船泝沅水入武谿擊之 尚輕敵入險 山深水疾 舟船不得上 蠻氏知尚糧少入遠 又不曉道徑 遂屯聚守險 尚食盡引還 蠻緣路徼戰 尚軍大敗 悉爲所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