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에 젖어 가요에 흥겨워하니, 황제의 법도가 창수까지 스몄다.
덕에 젖어 가요에 흥겨워하니, 황제의 법도가 창수까지 스몄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명제 영평 12년(69), 애로·박남 두 현을 설치하였는데, 익주군 서부도위주 001가 거느린 6현주 002을 분할해 [두 현과] 합하여 영창군으로 삼았다. [이에] 비로소 박남산주 003과 통하고 난창수주 004를 건넜으나 다니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였다. 노래하기를 ‘한의 덕이 널리 퍼져, 귀부하지 않던 곳까지 깨우치니, 박남[산]을 건너고 난[창]진을 넘었는데, 난창[수]를 건너면 타인이 되는구나’라고 하였다. 애로인들은 모두 코를 뚫고 귓불을 늘어뜨리는데,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는 그 거수는 귀가 모두 어깨 아래로 3촌이나 늘어지지만, 일반 사람은 어깨까지만 이르게 할 뿐이다. 토지는 비옥하여, 오곡과 잠상에 적합하다.”
• 참고
『後漢書』 卷86 哀牢夷 永平十二年 哀牢王柳貌遣子率種人內屬 其稱邑王者七十七人 戶五萬一千八百九十口五十五萬三千七百一十一 西南去洛陽七千里 顯宗以其地置哀牢博南二縣 割益州郡西部都尉所領六縣 合爲永昌郡 始通博南山 度蘭倉水 行者苦之 歌曰 漢德廣 開不賓 度博南 越蘭津 度蘭倉 爲它人」 哀牢人皆穿鼻儋耳 其渠帥自謂王者 耳皆下肩三寸 庶人則至肩而已 土地沃美 宜五穀蠶桑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