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구저(久氐)를 천웅장언(千熊長彦)에 딸려 보내면서 칠지도, 칠자경 등을 보내옴
52년 가을 9월 정묘삭 병자(10일)에 구저 등이 천웅장언을 따라왔다. 이때에 칠지도(七枝刀)주 001
번역주 001)
한 자루와 칠자경(七子鏡)주 002 일본 奈良縣 天理市의 石上神宮에 소장되어 있는 七支刀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이는 74. 9cm로서 鍛鐵로 만든 양날 칼이다. 칼의 몸 좌우로 각각 가지 칼이 3개씩 뻗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七支刀라는 이름이 붙었다. 칼몸의 앞과 뒤에는 61자(앞 34자, 뒤 27자)가 金象嵌되어 있고 그 외곽을 가는 금선으로 둘렀다. 앞면은 紀年, 干支, 刀名, 사여의 대상, 제작자의 순이고, 뒷면은 칠지도의 제작 연유가 새겨져 있다. 칠지도 명문은 石上神宮의 大宮司로 있었던 菅政友가 1879년에 처음으로 확인한 이래 지금까지 명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칠지도 연구의 커다란 제약의 하나는 현재 명확히 판독하기 어려운 자가 많다는 것이다. 칠지도의 제작 연대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첫머리 연호 문제도 미해결 상태이고, 백제와 왜국의 정치사적 관계를 구명할 수 있는 개개의 문구나 문서의 형식을 둘러싸고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학계에서는 칠지도의 녹슨 부분과 단면 등의 분석을 토대로 주조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백제지역에서 발견되는 환두대도 등은 대부분 단조로 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지도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도 4세기 후반대부터 6세기 초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듯이 내용상의 문제뿐 아니라 형태학상, 서체상의 과학적·실증적 분석이 필요하다.
번역주 002)
한 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 그리고 “신국의 서쪽에 강이 있는데, 그 수원은 곡나철산(谷那鐵山)주 003입니다. 너무 멀어서 7일주 004 동안 가도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물을 마시다가 문득 그 산의 철을 얻으니 영원토록 성조(聖朝)에 바치고자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백제왕이) 손자 침류왕(枕流王)주 005에게 “지금 내가 교류하고 있는 바다 동쪽의 귀국은 하늘이 계시하여 세운 나라이다. 그러므로 천은을 베풀어 바다 서쪽을 나누어 나에게 주니, 나라의 기틀이 영원히 견고해졌다. 너도 마땅히 우호를 잘 닦아 토물을 모아 공물을 끊임없이 바친다면 죽어도 무슨 한이 남겠느냐?”라고 일러두었다. 이후로 매년 끊임없이 조공하였다. 둥글고 큰 거울 둘레에 6개의 小鏡을 붙인 거울로 추정된다. 『藝文類聚』 天部에 梁나라 簡文帝가 지은 望月의 詩에서 「形同七子鏡. 影類九秋霜」이라는 표현에 의하면, 七子鏡은 滿月처럼 둥근 거울이다. 칠자경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울 배면의 장식으로 紐 주위에 동심원을 몇 번 돌린 작은 보주를 문양으로 넣은 것을 작은 거울로 보고, 이것이 7개 있는 것을 칠자경으로 보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거울 가운데 이러한 모양의 거울이 있다. 그러나 칠지도 모양을 참고로 하면 칠자경의 모양도 보통의 거울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그 모양으로는 거울 가장자리에 6개의 작은 거울을 붙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 가운데 거울 가장자리에 작은 거울을 6개 붙인 것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 近江町 山津照神社古墳에서는 거울의 가장자리에 5개의 작은 거울을 붙인 五鈴鏡이 출토되었다. 이 거울은 칠자경 모양을 추론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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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1)
일본 奈良縣 天理市의 石上神宮에 소장되어 있는 七支刀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이는 74. 9cm로서 鍛鐵로 만든 양날 칼이다. 칼의 몸 좌우로 각각 가지 칼이 3개씩 뻗어 모두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七支刀라는 이름이 붙었다. 칼몸의 앞과 뒤에는 61자(앞 34자, 뒤 27자)가 金象嵌되어 있고 그 외곽을 가는 금선으로 둘렀다. 앞면은 紀年, 干支, 刀名, 사여의 대상, 제작자의 순이고, 뒷면은 칠지도의 제작 연유가 새겨져 있다. 칠지도 명문은 石上神宮의 大宮司로 있었던 菅政友가 1879년에 처음으로 확인한 이래 지금까지 명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칠지도 연구의 커다란 제약의 하나는 현재 명확히 판독하기 어려운 자가 많다는 것이다. 칠지도의 제작 연대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첫머리 연호 문제도 미해결 상태이고, 백제와 왜국의 정치사적 관계를 구명할 수 있는 개개의 문구나 문서의 형식을 둘러싸고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일본학계에서는 칠지도의 녹슨 부분과 단면 등의 분석을 토대로 주조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백제지역에서 발견되는 환두대도 등은 대부분 단조로 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지도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도 4세기 후반대부터 6세기 초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듯이 내용상의 문제뿐 아니라 형태학상, 서체상의 과학적·실증적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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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2)
둥글고 큰 거울 둘레에 6개의 小鏡을 붙인 거울로 추정된다. 『藝文類聚』 天部에 梁나라 簡文帝가 지은 望月의 詩에서 「形同七子鏡. 影類九秋霜」이라는 표현에 의하면, 七子鏡은 滿月처럼 둥근 거울이다. 칠자경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울 배면의 장식으로 紐 주위에 동심원을 몇 번 돌린 작은 보주를 문양으로 넣은 것을 작은 거울로 보고, 이것이 7개 있는 것을 칠자경으로 보고 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거울 가운데 이러한 모양의 거울이 있다. 그러나 칠지도 모양을 참고로 하면 칠자경의 모양도 보통의 거울과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그 모양으로는 거울 가장자리에 6개의 작은 거울을 붙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 가운데 거울 가장자리에 작은 거울을 6개 붙인 것은 출토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 近江町 山津照神社古墳에서는 거울의 가장자리에 5개의 작은 거울을 붙인 五鈴鏡이 출토되었다. 이 거울은 칠자경 모양을 추론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번역주 003)
- 번역주 004)
- 번역주 005)
색인어
- 이름
- 구저, 천웅장언, 침류왕
- 지명
- 곡나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