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뢰를 경계로 삼으니, 날뛰던 행적이 이윽고 쇠퇴하였고,
현뢰를 경계로 삼으니, 날뛰던 행적이 이윽고 쇠퇴하였고,
『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오유선우주 001가 즉위하고서 무제가 처음으로 순수하였다. 친히 삭방[군]까지 이르러주 002 병사 18만 기를 정돈하여 용맹스러운 기개를 보였다. 이때 한은 동쪽으로는 예맥과 조선을 공략하여 군으로 삼았으며주 003, 서쪽으로는 주천군을 설치하여 호가 강과 통하는 길을 차단하였다. 게다가 [한은] 서쪽으로 월씨(월지)·대하와 통교하고, 공주주 004를 오손왕에게 시집보내 흉노가 서쪽에서 [받는] 원조를 [그들로부터] 분리시켰다. 또한 북쪽으로 차츰 농지를 확대하여 현뢰주 005[가 거주하는 곳]까지 이르러 새로 삼았다. 그런데도 흉노는 끝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 참고
『漢書』 卷94上 匈奴 是歲 元鼎三年也 烏維單于立 而漢武帝始出巡狩郡縣 其後漢方南誅兩越 不擊匈奴 匈奴亦不入邊 … 是時 天子巡邊 親至朔方 勒兵十八萬騎以見武節 而使郭吉風告單于 漢使楊信使於匈奴 是時漢東拔濊貉朝鮮以爲郡 而西置酒泉郡以隔絶胡與羌通之路 又西通月氏大夏 以翁主妻烏孫王 以分匈奴西方之援國 又北益廣田至眩雷爲塞 而匈奴終不敢以爲言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