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거사(車師)를 공격하자 거사가 흉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곧 한나라에 투항하고자 함
지절(地節) 2년(전68), 한나라는 시랑(侍郎) 정길(鄭吉)
주 001
각주 001)
, 교위 사마희(司馬憙)
주 002로 하여금 형벌을 면제받은 죄인들을 이끌고 거리에서 둔전케 하였는데, 이는 곡식을 축적하여 거사를 공격하려 함이었다. 가을이 되어 곡식을 거두게 되자 정길과 사마희는 성곽이 있는 여러 나라의 병사 만여 명을 징발하고, 자신들은 둔전하던 1,500명을 이끌고 거사를 공격하였다. 교하성을 공격하여 그것을 파괴하였다. 왕은 여전히 북쪽의 석성(石城)
주 003안에 있어서 붙잡지 못했다. 마침 군대의 식량이 다 떨어져서 정길 등은 군대를 일단 해산시키고 거리 둔전으로 귀환했다. 추수가 끝난 뒤 다시 군대를 징발하여 석성에 있는 거사왕을 공격하였다. 왕은 한나라 군대가 막 도달한다는 소식을 듣고 북쪽으로 흉노에게 도망쳐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흉노가 아직 군대를 파견하기도 전에 왕은 돌아와서, 귀족 소유(蘇猶)와 의논하고 한나라에 투항하려고 했으나, [한나라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소유는 왕에게 흉노의 변방에 있는 나라인 소포류(小蒲類)주 004를 공격케 하여, 그 사람들을 참살하고 약탈한 뒤 정길에게 투항하였다. 거사 주변에 약소한 나라인 금부국(金附國)
주 005이 한나라 군대의 뒤를 따라와서 거사를 약탈했었는데, 거사왕은 금부를 공파하겠다고 스스로 다시 청하였다.鄭吉(?~전49년) : 『漢書』 卷70에 立傳된 인물. 會稽人. 처음에는 兵卒로 從軍하여 여러 차례 西域에 갔으며 이로 인하여 郎이 되었다. 神爵 연간(전61-58)에 匈奴에 변란이 일어나, 日逐王 先賢撣이 한나라에 투항하려고 鄭吉에게 사람을 보내 알리자, 鄭吉은 渠黎․龜茲 諸國의 五萬人을 동원하여 日逐王을 맞이하고 口萬二千人, 小王將十二人 등이 鄭吉을 따라 河曲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도망친 사람도 많았는데, 그는 추격하여 참수하고 이들을 京師로 호송해 왔다. 그는 이 공으로 歸德侯에 봉해졌다. 이렇게 車師를 격파하고 匈奴의 일축왕이 투항하면서 西域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자, 한나라는 西域都護를 설치하고 鄭吉을 최초의 도호로 임명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정길은 幕府를 세우고 治所를 烏壘城에 설치하여 서역을 鎭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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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鄭吉(?~전49년) : 『漢書』 卷70에 立傳된 인물. 會稽人. 처음에는 兵卒로 從軍하여 여러 차례 西域에 갔으며 이로 인하여 郎이 되었다. 神爵 연간(전61-58)에 匈奴에 변란이 일어나, 日逐王 先賢撣이 한나라에 투항하려고 鄭吉에게 사람을 보내 알리자, 鄭吉은 渠黎․龜茲 諸國의 五萬人을 동원하여 日逐王을 맞이하고 口萬二千人, 小王將十二人 등이 鄭吉을 따라 河曲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도망친 사람도 많았는데, 그는 추격하여 참수하고 이들을 京師로 호송해 왔다. 그는 이 공으로 歸德侯에 봉해졌다. 이렇게 車師를 격파하고 匈奴의 일축왕이 투항하면서 西域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자, 한나라는 西域都護를 설치하고 鄭吉을 최초의 도호로 임명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정길은 幕府를 세우고 治所를 烏壘城에 설치하여 서역을 鎭撫하였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색인어
- 이름
- 정길(鄭吉), 사마희(司馬憙), 정길, 사마희, 정길, 소유(蘇猶), 소유, 정길
- 지명
- 한나라, 거리, 거사, 거사, 교하성, 석성(石城), 거리, 석성,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거사, 금부국(金附國), 한나라, 거사, 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