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西域)의 지리적 위치
서역(西域)은 효무(孝武)
주 001때에 처음으로 소통되기 시작하였다. 본시 36국주 002
각주 002)
이었으나 그 뒤에 차츰 나뉘어져 50여 개가 되었는데,주 003모두 흉노의 서쪽, 오손의 남쪽에 있다. 남북으로 큰 산이 있고 중앙에는 강이 있으며, [그 범위는] 동서로 6천여 리이며 남북이 천여 리이다.주 004三十六國 : 이 같은 표현은 張騫이 西域을 다녀온 武帝時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三十六國’이라는 표현이 사료상 처음 등장한 것은 建平 4년(전3) 黃門侍郞 揚雄이 哀帝에게 올린 諫言이다(『漢書』 卷94下 「匈奴傳下」 ∶ “과거에 西域을 도모하고 車師를 견제하기 위해 城郭을 설치하여 ‘三十六國’을 都護하였습니다.”). 宣帝時인 神爵 2년(전59) 鄭吉을 西域都護로 임명하면서 漢의 서역진출과 경영이 본격화되었고, 흉노의 분열로 인해 呼韓邪單于가 漢에 入朝稱臣한 뒤 元帝 建昭 3년(전36)에는 흉노의 郅支單于가 西域都護 甘延壽와 副校尉 陳湯 등의 공격을 받아 살해되어 서역의 정세가 一轉되면서, 서역의 여러 도시들이 漢에 복속하게 된 것이다. 西域都護는 이를 계기로 각 도시국가들의 土地․山川․王侯․戶數․道里․遠近 등을 상세하게 조사하였는데, ‘三十六國’은 바로 이때 정착된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三十六國’은 위의 본문에 “모두 흉노의 서쪽, 오손의 남쪽에 있다. 남북으로 큰 산이 있고 중앙에는 강이 있는데, 동서로 6천여 리이며 남북이 천여 리이다. 동쪽으로는 한나라와 접하고 옥문과 양관에 의해 막혀 있으며, 서쪽으로는 총령(葱嶺)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설명이 보여주듯이 기본적으로는 타림분지 연변, 즉 東투르키스탄의 도시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三十六’이라는 숫자가 정확한 實數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後漢書』 卷115 「東夷傳」에 周의 穆王에게 복속한 陸地의 “三十有六國”, 卷116 「西南夷傳」에 降附한 “三十六種” 등의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三十六’은 占星術에서 律曆의 數인 360 및 36과 연관된 것으로, 고대 중국인들의 思惟世界 속에서는 ‘多數’․‘無數’ 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던 숫자였다. 이에 관해서는 伊瀨仙太朗 (1955 : 21-37) 참조. 한편 『漢書』 「匈奴傳」에 묵특선우가 “樓蘭․烏孫․呼揭와 그 근방의 二十六國”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대체로 학자들은 ‘二十六國’을 ‘三十六國’의 오류로 보고 있다.
각주 004)
동쪽으로는 한나라와 접하고 옥문(玉門)주 005과 양관(陽關)에 의해 막혀 있으며,주 006서쪽으로는 총령(葱嶺)으로 차단되어 있다.주 007『漢書』는 여기서 ‘西域’의 지리적 개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남북의 큰 산’이란 북쪽의 천산산맥과 남쪽의 카라쿤룬[哈剌崑崙]․쿤룬[崑崙]․알친[阿爾金] 등의 산맥을 지칭하며, 중앙에 있는 강은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흐르는 타림강을 가리키고, 葱嶺은 파미르고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서 ‘西域’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그리고 파미르와 玉門關․陽關에 의해 둘러싸인 지역, 즉 타림분지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狹義의 西域’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西域傳」에는 파미르 以西의 여러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廣義의 西域’은 玉門關 以西의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인 셈이다. 돈황에서 파미르까지의 직선거리는 대체로 1,700km이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직선거리는 500km 정도된다. 따라서 동서 6,000리(2,400km), 남북 1,000여 리(400km)라는 기록은 실제 旅程의 거리를 측량할 때 거의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주 007)
그곳의 남산주 008은 동쪽에 금성(金城)
주 009으로 뻗어나와 한나라의 남산(南山)주 010과 맞닿아[屬]주 011있다. 그 강은 두 개의 원천이 있는데, 하나는 총령에서 나오며 또 하나는 우전(于闐)
주 012에서 나온다. 우전은 남산 아래에 있으며 그 강은 북쪽으로 흘러 총령하(葱嶺河)
주 013와 만나서, 동쪽으로 흘러 포창해(蒲昌海)로 주입된다. 포창해는 일명 염택(鹽澤)
주 014葱嶺은 파미르(Pamir). 顔注 : “『西河舊事』에 ‘葱嶺이라는 산은 높고 크며, 위에는 모든 것이 생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河舊事』는 현재 逸失된 책이다. 그런데 『水經注』(河水二)는 이 서적을 인용하면서 ‘上悉生’이 아니라 ‘上葱生’이라고 썼다. 즉 산 위에 파(葱)가 자라기 때문에 葱嶺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파미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타직(Tajik)語로 ‘세계의 기둥(pa-i mir)’이라는 설, 고대 페르시어아로 ‘太陽神의 寶座(pa-i mihr)’라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한국어 ‘파’와 ‘파미르’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입증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파미르’라는 이름이 한문자료에 처음 등장한 것은 玄奘의 『대당서역기』에 보이는 ‘波謎羅川’으로 알려져 있다.
각주 014)
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옥문·양관에서 300여 리 떨어져 있으며, 넓이와 길이[廣袤]주 015가 300리이다. 그 물은 정지해 있으며, 겨울과 여름에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그 물이] 지하로 잠행하여 남쪽으로 적석(積石)에서 용출하여 중국의 황하가 된다고 여기고 있다.주 016
蒲昌海 즉 ‘鹽澤’은 오늘날 롭 노르(Lop Nor, 羅布泊)에 해당된다. 이 호수가 ‘鹽澤’이라 불렸던 까닭은 극도의 건조함으로 인해 수중에 염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롭 노르는 지하 하도의 변경으로 말미암아 1921년 호수의 위치가 변경되었는데, 바뀌어진 오늘날의 지점이 漢代 蒲昌海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현재 玉門․陽關에서 롭 노르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250km 정도이기 때문에 300리(120km)보다는 더 먼 거리이다. 『水經注』 「河水二」에 鹽澤에 대하여 “東去玉門․陽關千三百里”라는 구절이 있어 위의 본문의 ‘三百里’라는 구절 앞에 ‘千’이 누락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1,300리일 경우 520km가 되므로 실제보다 2배 이상 먼 거리가 된다. 余太山(2005 : 62)은 『史記』 「大宛列傳」에 陽關에서 長安까지가 4,500리로 나와 있고, 『漢書』 「西域傳」에 鄯善國에서 長安까지 5,000리로 나와 있으므로, 鄯善國이 위치한 鹽澤에서 陽關까지는 500리가 되는 셈이며, 위 본문의 ‘三百里’는 ‘五百里’의 誤謬가 아닐까 추정하였다. 500리라면 200km가 되므로 실제의 거리에 상당히 부합하는 셈이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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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三十六國 : 이 같은 표현은 張騫이 西域을 다녀온 武帝時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三十六國’이라는 표현이 사료상 처음 등장한 것은 建平 4년(전3) 黃門侍郞 揚雄이 哀帝에게 올린 諫言이다(『漢書』 卷94下 「匈奴傳下」 ∶ “과거에 西域을 도모하고 車師를 견제하기 위해 城郭을 설치하여 ‘三十六國’을 都護하였습니다.”). 宣帝時인 神爵 2년(전59) 鄭吉을 西域都護로 임명하면서 漢의 서역진출과 경영이 본격화되었고, 흉노의 분열로 인해 呼韓邪單于가 漢에 入朝稱臣한 뒤 元帝 建昭 3년(전36)에는 흉노의 郅支單于가 西域都護 甘延壽와 副校尉 陳湯 등의 공격을 받아 살해되어 서역의 정세가 一轉되면서, 서역의 여러 도시들이 漢에 복속하게 된 것이다. 西域都護는 이를 계기로 각 도시국가들의 土地․山川․王侯․戶數․道里․遠近 등을 상세하게 조사하였는데, ‘三十六國’은 바로 이때 정착된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三十六國’은 위의 본문에 “모두 흉노의 서쪽, 오손의 남쪽에 있다. 남북으로 큰 산이 있고 중앙에는 강이 있는데, 동서로 6천여 리이며 남북이 천여 리이다. 동쪽으로는 한나라와 접하고 옥문과 양관에 의해 막혀 있으며, 서쪽으로는 총령(葱嶺)으로 차단되어 있다.”는 설명이 보여주듯이 기본적으로는 타림분지 연변, 즉 東투르키스탄의 도시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三十六’이라는 숫자가 정확한 實數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後漢書』 卷115 「東夷傳」에 周의 穆王에게 복속한 陸地의 “三十有六國”, 卷116 「西南夷傳」에 降附한 “三十六種” 등의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三十六’은 占星術에서 律曆의 數인 360 및 36과 연관된 것으로, 고대 중국인들의 思惟世界 속에서는 ‘多數’․‘無數’ 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던 숫자였다. 이에 관해서는 伊瀨仙太朗 (1955 : 21-37) 참조. 한편 『漢書』 「匈奴傳」에 묵특선우가 “樓蘭․烏孫․呼揭와 그 근방의 二十六國”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대체로 학자들은 ‘二十六國’을 ‘三十六國’의 오류로 보고 있다.
- 각주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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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4)
『漢書』는 여기서 ‘西域’의 지리적 개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남북의 큰 산’이란 북쪽의 천산산맥과 남쪽의 카라쿤룬[哈剌崑崙]․쿤룬[崑崙]․알친[阿爾金] 등의 산맥을 지칭하며, 중앙에 있는 강은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흐르는 타림강을 가리키고, 葱嶺은 파미르고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서 ‘西域’은 천산산맥과 곤륜산맥, 그리고 파미르와 玉門關․陽關에 의해 둘러싸인 지역, 즉 타림분지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狹義의 西域’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西域傳」에는 파미르 以西의 여러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廣義의 西域’은 玉門關 以西의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인 셈이다. 돈황에서 파미르까지의 직선거리는 대체로 1,700km이고,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직선거리는 500km 정도된다. 따라서 동서 6,000리(2,400km), 남북 1,000여 리(400km)라는 기록은 실제 旅程의 거리를 측량할 때 거의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005)
-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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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7)
葱嶺은 파미르(Pamir). 顔注 : “『西河舊事』에 ‘葱嶺이라는 산은 높고 크며, 위에는 모든 것이 생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河舊事』는 현재 逸失된 책이다. 그런데 『水經注』(河水二)는 이 서적을 인용하면서 ‘上悉生’이 아니라 ‘上葱生’이라고 썼다. 즉 산 위에 파(葱)가 자라기 때문에 葱嶺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파미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타직(Tajik)語로 ‘세계의 기둥(pa-i mir)’이라는 설, 고대 페르시어아로 ‘太陽神의 寶座(pa-i mihr)’라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한국어 ‘파’와 ‘파미르’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나 입증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파미르’라는 이름이 한문자료에 처음 등장한 것은 玄奘의 『대당서역기』에 보이는 ‘波謎羅川’으로 알려져 있다.
- 각주 008)
- 각주 009)
- 각주 010)
- 각주 011)
- 각주 012)
-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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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4)
蒲昌海 즉 ‘鹽澤’은 오늘날 롭 노르(Lop Nor, 羅布泊)에 해당된다. 이 호수가 ‘鹽澤’이라 불렸던 까닭은 극도의 건조함으로 인해 수중에 염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롭 노르는 지하 하도의 변경으로 말미암아 1921년 호수의 위치가 변경되었는데, 바뀌어진 오늘날의 지점이 漢代 蒲昌海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현재 玉門․陽關에서 롭 노르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250km 정도이기 때문에 300리(120km)보다는 더 먼 거리이다. 『水經注』 「河水二」에 鹽澤에 대하여 “東去玉門․陽關千三百里”라는 구절이 있어 위의 본문의 ‘三百里’라는 구절 앞에 ‘千’이 누락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1,300리일 경우 520km가 되므로 실제보다 2배 이상 먼 거리가 된다. 余太山(2005 : 62)은 『史記』 「大宛列傳」에 陽關에서 長安까지가 4,500리로 나와 있고, 『漢書』 「西域傳」에 鄯善國에서 長安까지 5,000리로 나와 있으므로, 鄯善國이 위치한 鹽澤에서 陽關까지는 500리가 되는 셈이며, 위 본문의 ‘三百里’는 ‘五百里’의 誤謬가 아닐까 추정하였다. 500리라면 200km가 되므로 실제의 거리에 상당히 부합하는 셈이다.
- 각주 015)
- 각주 016)
색인어
- 이름
- 효무(孝武)
- 지명
- 오손, 한나라, 총령(葱嶺), 금성(金城), 한나라, 총령, 우전(于闐), 우전, 총령하(葱嶺河), 포창해(蒲昌海), 포창해, 염택(鹽澤), 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