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明州)에서 고려가 입공(入貢)했다는 보고에 대하여 황제가 비답(批答)을 내림
명주(明州)에서 고려가 입공했다고 말했다. 황제가 비답을 내려 “본주는 해도를 잘 아는 사람을 보내 그들을 안내하고, 전운사(轉運司)는 관리에게 위임하여 새로운 격식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라”라고 하였다. 고려가 나라 초기에는 모두 등주를 거쳐 내조했는데, 근년에는 항상 명주로 가는 길을 취하니 아마도 요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황제가 주현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데 전과 같지 않아 이로써 백성들을 성가시게 함을 걱정하여 격식을 세워 일체 관에서 공급하도록 명했다. 또한 조서를 내려 고려가 화언[중국어]과 통하지 않아 이익을 꾀하는 사람이 사사로이 교역함을 염려하여 소재지에서 은밀하게 억제하게 했다. 또한 인반(引伴) 예빈부사(禮賓副使)주 001 왕근초(王謹初) 등과 지명주(知明州) 이연(李綖)에게 진봉 입공한 3명의 사신 중 연인(燕人)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아뢰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