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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일본사료집

다다 요자에몬이 전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에게 보낸 8월 24일자 서한

  • 발신자
    다다 요자에몬(多田与左衛門)
  • 수신자
    히라다 하야토(平田隼人)스기무라 우네메(杉村采女)히구치 사에몬(樋口左衛門)
  • 발송일
    1694년 8월 24일(음)(8월 24일)
一. 다다 요자에몬이 보낸 8월 24일자 서한을 원본은 에도로 올려보내고, 그 내용을 여기에 기록한다.
 글 올립니다. 어제 23일, 봉진연석(封進宴席)을 열기로 되어 있었는데 전날 밤부터 비가와서 연기되어 25일에 열 예정입니다.
一. 박동지와 박첨지가 매일 입관하여 재판(裁判)과 도선주(都船主)의 거처에서 용무를 협의했습니다.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밀담을 나누었지만 두 사람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저는 모든 일을 듣지 않으려 했는데 듣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일 때는 두 사람[재판과 도선주]을 통해서 두 판사의 속내를 듣고 회답하기를, “이번 일은 전부터 말했듯이 아랫사람들의 협의로 이래저래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례 때 접위관에게 모두가 말했듯이, 답서에서 울릉도라는 글자만 삭제해주면 내일이라도 받아서 귀국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울릉도를] 적은 이유를 밝혀서 답서를 주시면 지면의 내용은 좋겠지만, 에도에 문의하지 않고는 받기 어렵습니다. 접위관과 여러분들이 애써 주실 일은 초안이 조속히 내려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쓰시마 번주님은 오로지 양국에게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원하시니 어찌됐든 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에도에 보내면 쓰시마 번주님도 원하시는 방향이 있다 보니 막상 보고를 받으시고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하실 수 있으니 초안을 보내도 무익한 일이 되므로, 몇 번이든 거듭 논의를 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일입니다.”라고 말해두었습니다. 재판과 도선주는 잘라 말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의논할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유인해서 상의하는 것이 좋다는 밀담을 나누고, 그럴 생각으로 인사를 했다. 한양의 사정은 복잡하다고 하며 밀담을 나누었다. 처음에 말하기를, “사자를 다시 파견한 것이 쓰시마의 의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섬이 확실하다는 점을 자세히 적어서 보내겠습니다. 또한 서계의 내용이 나쁘다는 식으로 사자가 말하면 곤란하니 봉해서 건네주겠습니다. 그대로 받지 못하겠다면, 답서를 막부에 올려보낼 생각도 있다고 했습니다. 판사들이 하는 말은 지난번에 히라다 곤노스케, 스기무라 사토노헤이에게 전한 대로, 금년 봄에 도해했던 역관이 쓰시마에서 귀국하여 쓰시마에서 들은 내용을 자세히 한양에 보고했는데, 그렇다면 쓰시마의 의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을 확대시키면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막부에 보고하여 정말로 일이 무사히 해결되도록, 아주 좋게 작성한 서면을 보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성신(誠信)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금년으로 81년이 되는 만력(萬暦)주 001
각주 001)
만력(萬暦): 명 나라 신종(神宗)의 연호(1573~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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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에 논의하여 竹嶋를 조선의 울릉도로 정한 일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호키(伯耆)에서 붙잡힌 조선인을 송환하기 전에 말씀해주셔야 하는 것을, 그 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송환한 것이 양국을 위한 처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잠시 미루어두고 서한을 적절히 작성했습니다. 속내를 잘 아시면서 ‘一嶋二名’으로 생각된다며 또 사자를 파견하는 행위는 앞을 모르는 척 하면서 이참에 울릉도를 일본의 ‘竹嶋’로 결정지어 [막부에] 충성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력과 증거를 상세히 적어 올려서 막부가 납득한다면 성신(誠信)으로 반환해야 하지만, 현재 쓰시마의 생각을 막부에 자세히 보고하기가 어려운 괘씸한 형국입니다. 즉시 보고하고서 상담할 것입니다.”하고 했다. 그래서 이쪽에서 말한 것은, “쓰시마번이 울릉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섬 하나에 이름이 두 개 인 것처럼 들려 혼란스럽습니다. 의심스러우면 중개를 하지 않고 접수를 거절합니다.”고 자세히 말했습니다. “접위관도 잘 이해한다고 말하셨으니 보고하면 한양의 논의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성신의 마음으로 무엇이든 상의하여 어느 쪽이든 원만하게 답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조만간 한양에서 답서의 초안을 받아서 보여드리고,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면 어떻게든 고쳐야 한다고 접위관이 말했습니다. 답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막부에 올리기 적절할지 두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양 판사가 재판과 도선주에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답변하기를, “밤낮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양국에게 원만하게 해결되는 답서는 오로지 울릉도라는 글자를 삭제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는 금년 봄의 답서에 섬 하나를 둘로 만들어서 섬은 일본에 내주고, 명목(名目)만을 조선에 남기는 것입니다. 울릉도라는 글자를 삭제하고 일본의 竹嶋에 앞으로 건너가서는 안 된다라고만 적으면, 일본의 竹嶋에 조선인을 가게 했다고 조정이 생각할 것이고 섬도 명목도 조선에 있습니다. 둘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토지는 일본에 두는 것이 혼동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삭제하면 모두에서 원만한 해결이고, 사자도 조속히 귀국하여 모든 일이 좋게 해결됩니다. 이것 말고는 적당한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는 것이 양국에게 좋다고 두 분은 이해하고 있지만 섬을 나누어 답서를 작성하는 것은 두고두고 치욕이 된다고 지금 조정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섬을 나누는 것은 □□□주 002
각주 002)
본문에는 ‘先朝廷三番目之発ニ而’라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 번역을 보류하고 비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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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끝났는데, 무엇보다 이 죄로 인하여 이번에 사죄(死罪)에 처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한양에서 한 마디도 말을 꺼내는 자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작성할 것인가”하고 묻자, “어떻게든 삭제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증거를 자세히 적어 사정이 이러하므로 쓰시마 번주님이 부디 적절하게 에도에 잘 보고해주시도록 쓸 생각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좀처럼 중단되지 않습니다. 일이 커지는데 목전에서 그렇게 작성한다는 것은 성신(誠信)에 부합되는 일이므로, 혹시라도 [지난번 서계를] 돌려주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점은 생각하지 못한 일입니다. 적어도 일이 그처럼 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어찌 할 방도가 없으니 앞으로 竹嶋에 조선인을 보내지 않겠다고 좋게 작성해주면 도리어 생각이 바뀌어 성신의 마음으로 혹시 돌려주는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렇게 작성하면 정관사(正官使)도 서계를 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 사람을 보내지 않겠다고 적는 것이 울릉도라는 글자를 삭제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섬을 확실히 돌려주겠다고 어떠한 보증을 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고 인사했습니다. “어쨌든 모두가 협의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답서의 초안이 조속히 내려오도록 노력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밀담으로 나눈 대략적인 내용은 이상과 같습니다. 양 판사가 말한 대로 울릉도라는 글자를 삭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고, 우리[조선]의 섬이라는 증거를 나열한 답서가 올 것이 확실합니다. 판사의 말처럼 섬을 둘로 나누는 일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치욕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아무래도 그러한 형세로 보입니다. 금년 봄 저쪽[조선]에서 보낸 답서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금년 봄에 발급한 답서를 돌려받아서 올려보내라고 한양에서 전갈이 왔으니, 이번의 답서를 작성하는 상황을 보아 한꺼번에 해결하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 후에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물건이므로 조속히 돌려주면 됩니다. 또는 답서의 내용에 따라서는 금년 봄의 답서를 본서(本書)로 하여 2통을 막부에 올리지 않으면 안 되니, 답서가 내려올 때까지는 가지고 있겠다고 하며 건네주지 않았습니다. 쓰시마번을 배려하지 않고 답서를 어떤 식으로든 써서 만일 막부에 보고하여 난처한 상황이 일어날지 염려했던 차에 지금의 상황으로는 한숨 놓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뀔 수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 염려됩니다. 하지만 두 판사의 말대로 조선의 섬이 확실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적고, 막부에 적절히 보고해달라고 쓰는 쪽으로 거의 결정된 듯합니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글자가 좋지 않은 곳이라도 있으면, 이런 글자가 있어서 받기 어렵다고 요구할 수는 있는데, 그것도 아니라 위와 같이 적은 서면이라고 들었습니다. 글자가 (좋지 않은) 곳이 없으면, 이번에는 제가 구두로 “울릉도라는 글자를 삭제하기 어렵다면, 그 이유를 답서에 기재해주십시오.”고 전했는데, 일의 형세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거절할 수도 있으니 방심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나중에는 상관하지 않으려고 볼 일이 있다는 이유로 혹시라도 접위관이 돌아가 버리면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초안이 내려오면 에도에 문의해야 한다고 전해두고 그대로 담당하도록 말했지만, 이곳의 일이다 보니 초안이 내려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초안이 내려올 거라고 하지만 한양의 논의가 어떻게 변할까요. 답서가 내려오면 받으라 했습니다. 그때가 돼서 [우리가] 항의하면 아마도 접위관이 철수할 것입니다. 만일을 위하여 좋든 나쁘든 에도에 문의하고 싶지만, 사정이 이와 같습니다. 답서가 오면 이대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조만간 쓰시마 번주님께서 어떻게든 말씀하시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막부의 답변이 있을 거라고 해서 보류하고, 판사들이 한 말과 동일한 답서라면 받아서 귀국할 생각입니다. 이상의 상황을 前 번주님께 보고드리고, 前 번주님의 하명 및 다른 분들이 의견이 있으면 비선으로 조속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답서는 아마도 다음 달 중순 전에는 도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상, 에도 쪽은 다망할 것 같아서 보고를 삼갑니다.
8월 24일
다다 요자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님께

  • 각주 001)
    만력(萬暦): 명 나라 신종(神宗)의 연호(1573~1620). 바로가기
  • 각주 002)
    본문에는 ‘先朝廷三番目之発ニ而’라고 되어 있으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 번역을 보류하고 비워 두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다다 요자에몬, 히라다 곤노스케, 스기무라 사토노헤이, 다다 요자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
지명
에도, 울릉도, 에도, 竹嶋, 울릉도, 호키(伯耆), 울릉도, 竹嶋, 울릉도, 울릉도, 울릉도, 竹嶋, 竹嶋, 竹嶋, 울릉도, 울릉도,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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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요자에몬이 전 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에게 보낸 8월 24일자 서한 자료번호 : ud.k_0005_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