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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독도 일본사료집

선향사(先向使) 스즈키 가헤이지(鈴木加平次)가 귀국시 가져온 관수(館守)와 재판(裁判)의 서찰 및 각서

  • 발신자
    다카세 하치에몬(高勢八右衛門)이쿠도 로쿠에몬(幾度六右衛門)
  • 수신자
    히라다 하야토(平田隼人)스기무라 우네메(杉村采女)히구치 사에몬(樋口左衛門)다다 요자에몬(多田与左衛門)
  • 발송일
    1694년 5월 6일(음)(5월 6일)

○ 5월 15일

○ 선향사(先向使) 스즈키 가헤이지(鈴木加平次)가 귀국하였다. 관수(館守)와 재판이 보낸 서찰과 각서(覺書)를 여기에 기록한다.

 선향사(先向使) 스즈키 가헤이지가 귀국할 때 지시했습니다.
 몇 글자 올립니다.
一. 다다 요자에몬님이 도해할 것이라는 선향사의 통보에 대한 회답이 한양(都)에서 내려왔다고, 지난 5일 동래부사(東萊府使)가 훈도(訓導)를 통해서 전해 온 내용과 [그에 대한] 답변을 별지(別紙)에 적어 올립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건대 요자에몬님이 도해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곳의 일이므로 도해하신다고 해서 갑자기 일이 타결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도해하셔서 독촉하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一. 도해역관 삼사(三使)주 001
각주 001)
삼사(三使)란 문위행의 安愼徽, 朴有年, 金圖南 등 세 명을 가리킨다. 이들 3인의 역관은 쓰시마번의 신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가 처음 에도에서 쓰시마로 들어갈 때, 그리고 전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의 퇴휴를 문위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이들은 숙종 19년(1693) 10월에 사자로 임명되어 예조참의 강선의 서찰을 휴대하고 12월 3일 쓰시마 후추에 도착했다. 이들을 응접하기 위하여 왜관의 재판 다카세 하치에몬이 세 역관을 수행하고 후추로 갔다. 박동지도 이때 같이 쓰시마로 건너갔지만 쓰시마 북단의 항구까지 갔을 뿐 곧 조선으로 돌아갔다. 이들과 다카세 하치에몬이 후추에 도착한 것이 12월 3일이고, 하치에몬은 왜관에 머물고 있는 다다 요자에몬의 11월 19일자 서장을 가지고 있었다. 세 역관은 해를 넘겨서도 쓰시마 후추에 머물다가 이듬해인 1694년 3월 초순 귀국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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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모두 한양으로 올라가자 즉시 하옥되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곳[대마도]에서 설명한 다케시마(울릉도) 문제를 조선 조정에 보고 하는 일이 어려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점은 확실하지 않지만, 소식을 들어서 말씀드립니다.
一. 수역(首訳) 중에서 처리할 사람을 내려보내달라고 동래부사에게도 전달했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자(使者)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역이 내려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곧 보고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5월 6일
다카세 하치에몬
이쿠도 로쿠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
다다 요자에몬님께

구상각(口上覚)

一. 다다 요자에몬님이 도해할 것이라는 선향사의 통보에 대한 회답이 한양에서 내려왔다고 지난 5일 담당 판사(判事)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동래부사가 구두로 말한 한양의 결정이란 “요자에몬님이 참판사(參判使)로 건너온다고 들었다. 그러나 불시(不時)의 사자(使者)는 앞으로 파견해서 안 된다고 전부터 약속했던 일이다. 만일 竹嶋(울릉도) 문제로 서한(서계)을 가져온 것이라면 지난번에 일이 해결되어 사자가 답서를 받아서 귀국했으므로, 또 [사자를] 파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이번의 사자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사자를 파견하지 않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一. 우리 쪽이 동래부사에게 전하기를 “한양의 결정에 관해 전해주신 바 잘 들었습니다. 불시의 사자는 파견하지 않기로 이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참판사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자라 할지라도 보낼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이번에 논의하는 竹嶋 문제는 막부의 지시를 받아서 전하는 것이므로, 답서의 내용 중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언제든 논의하여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정을 알려올지도 모르면서 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성신(誠信)의 도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자를 받아들이고 접위관(接慰官)을 내려보내서 서한의 내용과 사자의 구두 설명을 듣고, 그런 다음에 좋다 나쁘다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자는 머지않아 파견한다고 전했습니다. 틀림없이 쓰시마(対州) 주 002
각주 002)
다이슈(對州): 쓰시마(對馬)의 별칭. (『広辞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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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출발했으리라 추정됩니다. 이 점을 동래부사에게 전하여 한양에 보고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상
5월 6일
다카세 하치에몬
이쿠도 로쿠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
다다 요자에몬님께
위 각서의 원문(本書)은 에도로 보냄.

  • 각주 001)
    삼사(三使)란 문위행의 安愼徽, 朴有年, 金圖南 등 세 명을 가리킨다. 이들 3인의 역관은 쓰시마번의 신번주 소 요시쓰구(宗義倫)가 처음 에도에서 쓰시마로 들어갈 때, 그리고 전번주 소 요시자네(宗義眞)의 퇴휴를 문위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이들은 숙종 19년(1693) 10월에 사자로 임명되어 예조참의 강선의 서찰을 휴대하고 12월 3일 쓰시마 후추에 도착했다. 이들을 응접하기 위하여 왜관의 재판 다카세 하치에몬이 세 역관을 수행하고 후추로 갔다. 박동지도 이때 같이 쓰시마로 건너갔지만 쓰시마 북단의 항구까지 갔을 뿐 곧 조선으로 돌아갔다. 이들과 다카세 하치에몬이 후추에 도착한 것이 12월 3일이고, 하치에몬은 왜관에 머물고 있는 다다 요자에몬의 11월 19일자 서장을 가지고 있었다. 세 역관은 해를 넘겨서도 쓰시마 후추에 머물다가 이듬해인 1694년 3월 초순 귀국 길에 올랐다. 바로가기
  • 각주 002)
    다이슈(對州): 쓰시마(對馬)의 별칭. (『広辞苑』)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스즈키 가헤이지(鈴木加平次), 스즈키 가헤이지, 다다 요자에몬, 요자에몬, 다카세 하치에몬, 이쿠도 로쿠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 다다 요자에몬, 다다 요자에몬, 요자에몬, 다카세 하치에몬, 이쿠도 로쿠에몬, 히라다 하야토, 스기무라 우네메, 히구치 사에몬, 다다 요자에몬
지명
다케시마(울릉도), 竹嶋(울릉도), 竹嶋, 쓰시마(対州), 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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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향사(先向使) 스즈키 가헤이지(鈴木加平次)가 귀국시 가져온 관수(館守)와 재판(裁判)의 서찰 및 각서 자료번호 : ud.k_0005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