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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위관(接慰官)의 답서

 
  • 발신자접위관(接慰官)
  • 수신자소 요시쓰구(宗義倫)
  • 발송일1694년 9월 (음)
19일에 접위관이 답신을 하였는데,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을 추위가 점점 긴박해지는 계절을 맞아 그야말로 그리운 마음이 치달리던 차에 문득 편지를 받아 보니 말씀하시는 뜻이 정성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사정을 어느 정도 잘 알게 되었으니 마치 만나서 얼굴을 마주한 것 같습니다. 초고(草稿)를 보여주지 않고 직접 정서(正書)하여 보내는 것은 빈연(賓宴)에서 서로 만났을 때에 정중하게 받들었던 약속이니 규약을 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편지를 뜯어서 보고 편지의 글을 갖추어 외어보니 초고와 정본을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울릉도에 관한 일은 예조에서 지은 일로서 의리가 분명하고 조리가 있으며 말뜻이 온순하여 자상하고 소상함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공(僉公)들께서는 오히려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니 피차간에 보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까? 편지가 비록 같은 문장이라도 말은 더러 다르니, 견해가 맞지 않은 것은 흐리고 어리석어서 깨닫기 어려워서 그러는 것입니까? 대체로 서계를 보는 법은 먼저 근본되는 뜻을 찾고 난 다음에 일의 귀추를 찾아야만 바야흐로 감정에 도달하여 맥락을 관통할 수 있어서 천리(千里) 멀리 사모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문자(文字) 사이에 치우쳐 찾으면서 대의(大意)가 어디에 있는지 궁구하지 않는다면 좀스럽고 속된 선비의 말이 될 것이니 진실로 교린을 위해 사신이 명령을 받들어 응대하는 문장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서계 가운데 울릉도는 우리나라이며,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오는 사실의 자취가 또렷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대나무가 생산되는 까닭에 비록 죽도라는 칭호가 있긴 하나 그 실상은 한 섬으로서 두 가지 이름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서적이나 귀국의 눈과 귀를 통해 전해져서 속속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답서 가운데 분명하게 실려 있습니다. 울릉이라는 글자를 제거하지 않은 뜻은 자연히 그 가운데 있으니 무엇하러 번거롭게 한 글자 한 글자 답을 할 것이며 한 구절 한 구절 따져 변별하겠습니까? 이 서계를 어째서 빨리 에도에 보내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안식을 가진 이에게 질정을 구하지 않습니까? 비단 양측에 틈이 생길 염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생각컨대 반드시 칭찬의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여러 공들께서는 이것 때문에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나라의 좋은 사귐이 지금까지 백년이 되었으니, 쇠붙이와 돌로도 그 튼튼함을 비유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아교와 옻칠로도 그 단단함을 비유하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지금 몇 행의 편지 글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하여 갑자기 화근이 될 말을 하다니, 어찌 소장부(小丈夫)가 발끈 화를 내는 일과 같지 않겠습니까? 여러 공들을 위하여 취하지 않겠습니다. 귀주에서 우리나라에 바친 정성은 실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며, 비록 뜻이 맞지 않은 일이 있다 해도 막부(東武)와 관계 되는 일이어서 마음대로 처단하는 데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니, 어찌 성의가 부족하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조정에서 내려보낸 서계를 굳이 거절하고 예법을 가볍게 업신여기면서 일찍이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으니 명령을 받들어 접대하는 일이 과연 어떻게 있겠습니까? 이미 명령을 전달할 수 없고 또 명령의 결과를 보고할 수도 없으니 오래 머물러 보았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조정의 명령이 무서우니 이제 곧 계할(啟轄)할 것이고, 기한을 정하여 길을 떠나서 삼가 조정의 처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보여준 뜻이 은근하고 간절하게 결단코 답서를 받겠다고 하니, 잠시 며칠을 머무르면서 다시 전별의 연회를 기약하여 서로 만난다면 실로 매우 기쁘고 다행이겠습니다. 날을 받아서 회답을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여러 공들께서 부지런히 보여주심이 이와 같은데, 글을 얽어 계문을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계를 찬술해 내려보낸 후에 규례상 해가 되는 일이 있어서 혹시 품개(稟改)할 때에 전체 대의에 미치게 될 일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일찍이 고치기를 청하는 일이 없었고 또한 고치기를 허락했던 예도 없으니, 그 마땅히 고쳐야 할 바를 비록 이와 같이 보이셨으나 제가 사신으로서 명령을 받드는 도리로 참으로 감히 외람되게 사정을 청하여 아뢸 수는 없거늘, 하물며 고칠 수 없는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고쳐 쓰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이미 조정의 명령을 직접 받아 왔으니 지금 비록 계문을 올린다고 해도 비단 이익이 없을 뿐만이 아니고 마땅히 질책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 공들께서는 어째서 사정을 헤아려 양해해 주시지 않고 이토록 누차 말씀하십니까? 이번 서계의 회답을 받지 못한 것은, 생각컨대 조정에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하찮은 일 하나로 인한 것입니다. 여러 차례 편지를 왕복하면서 일의 이치와 체면을 크게 손상하였고, 또한 심히 지루하였으나, 모든 역사(諸史)를 베껴서 후세에 전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지금 온 회답에서는 겸하여 전후의 편지의 뜻을 뒤집었습니다. 귀주에서는 이미 이전의 서계를 보냈고 우리나라는 지금 서계를 돌려보냈으니, 일의 이치가 뚜렷한데 어찌 비루한 말을 기다려서야 알겠습니까? 나머지는 접대 의례(宴席)를 기다려 받들기로 하고, 이만 줄입니다. 갑술년(1694) 9월 일.”
 
지명
울릉도 , 울릉도 , 죽도 , 울릉 , 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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